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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실크로드, 사막을 가르다 (1/6, 란저우를 가르는 황하)

여행지 : 베이징, 왕푸징 거리, 란저우, 백탑산공원, 황하제일교, 오천산공원
여행일 : 2011/07/15, 16




공항, 비를 머금은 뿌연 하늘이 출국장의 넓은 창에 비쳐진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각자의 비행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소풍을 떠나는 어린아이들처럼 흥겨워 보인다. 칸칸이 질러진 유리창 뒤에는 촉촉한 활주로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이번 여행은 2005년의 티베트 여행 이후로 6년만의 중국 배낭여행으로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주요 도시를 둘러본다. 중앙아시아의 타클라마칸 사막 위쪽 경계를 따라 둔황, 투루판, 쿠얼러, 카스까지 서진했다가 신장위구르의 성도, 우루무치를 통해 귀국하는 코스로 그 옛날 동양의 비단을 서역에 전했다는 실크로드(천산남로)의 주요 도시를 둘러보게 된다. 고대로부터 사막 지역을 지키고 선 오아시스 도시라는 점도 그렇고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과는 달리 이슬람 문화가 강한, 푸른 눈의 중국인이 사는 지역이라는 점이 강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곳이다.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지역이 아닌데다 다섯 명의 지인(금정전자공고 선생님 네 분과 한 명의 자녀)들과 떠나는 배낭여행인지라 나름의 준비도 많이 했다. 우선 실크로드 가이드 책(<실크로드>, 정지영, 성하출판) 한 권과 관련 여행기(<실크로드>, 정목일, 문학관), 그리고 일본 작가가 쓴 소설(<둔황>, 이노우에 야스시, 문학동네)을 읽으며 실크로드를 음미했고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눈도장도 찍어놨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 님의 말처럼 나름대로 알차게 준비했었다.

이제 저 창을 지나 중국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즐기면서,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싶다. 책과 미디어, 나의 머릿속에 그려진 타클라마칸 사막을 현실과 비교해보며 음미해보고 싶다. 가자 중국으로, 가자 실크로드로!




베이징에 내리자 ‘훅’ 하며 열기가 뜨겁게 달려든다. 한국과는 달리 비는 오지 않았지만 잔뜩 흐린 날씨 탓에 마치 황사가 잔뜩 낀 것 같다. 여기가 바로 70억 세계인구의 1/5이 살고 있는 거대한 땅덩어리구나. 막연하게 떠돌던 생각들이 넓은 공항 활주로에 내려서자 한꺼번에 몰려온다.

우리는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베이징 시내로 이동했다. 낯익은 국산 자동차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가운데 번호판이 없는 차들도 종종 보인다. 저건 뭐지? 알고 보니 번호판 발급 이전의 새 차량일 수도 있지만 교통위반을 피하기 위해 고의로 때어낸 차량도 있단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번호판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우리가 탄 택시는 호텔로 이동하는 30여분동안 단 한 번의 지시등도 넣지 않는다. 과속에 신호위반은 기본이고 급회전과 끼어들기도 예사다. 서울에 비해 부산의 교통문화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한국에 비하면 이건 완전 무법천지 수준. 중국이 베이징올림픽(2008)과 최근의 경제성장으로 많은 발전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어쩌면 교통문화 수준이 사회 전체의 문화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호텔에 짐을 풀고 왕푸징 거리를 구경했다. 몇 년 전에도 와서 구경을 해봤지만 그때보다 더 복잡해진 것 같다. 물 반 고기 반이라라더니 거리를 넘쳐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특히 꼬지를 파는 전통거리에는 인산인해를 이루며 떠밀리다시피 했다.

우리는 오리로 유명한 전취덕(全聚德)을 갈까 하다가 맞은편에 만두로 유명한 구부리(拘不理) 만두집에서 간단히 요기만 하고 서둘러 왕푸징을 빠져나왔다. 아쉬운 마음에 호텔 부근의 꼬치 전문점에서 첫날의 회포를 풀었다. 지글지글 타오르는 꼬치와 이를 진정시켜줄 술이 있으니 이것이 최고의 여행이 아니고 무엇이랴. 알싸한 고량주 향에 취해 중국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둘째 날 아침, 란저우 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역시 여기도 사람, 사람, 사람들 천지다. 이 많은 사람들이 먹고 싸고, 그리고 날아다닌다고 생각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이 많으니 뜨고 내리는 비행기 역시 많은가보다. 이륙을 위해 출발선에서 대기하는 비행기가 네 대는 더 보였다. 하늘은 넓다지만 그 입구는 여전히 미어터지는구나…

오랜 시간을 대기한 비행기는 혼잡한 지상을 벗어나자 마치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처럼 가뿐해진다. 이렇게 육중한 쇳덩어리가 수천 미터를 날아오른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중력과 양력의 골치아픈 원리는 푸른 하늘 속으로 흩어져버렸다.

베이징을 벗어나자 들과 숲이 어우러진 대지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내륙 중심주 들어갈수록 푸른색 녹지보다는 누런 황토색 황무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아마도 여기가 고비사막 어디쯤 되지 싶다.

사막, 점점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 불모의 땅. 줄기차게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로 빚어진 이상기후는 푸른 자연마저 탈색시켜 버렸다. 허연 버짐처럼 휘날리는 모래사막은 영양실조에 걸린 피부병처럼 지구를 뒤덮고 있었다.



란저우, 이곳은 중국 대륙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로 실크로드와 입구이자 황하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우리가 란저우에서 처음으로 찾은 백탑산공원 앞에도 누런 황화를 볼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의 유순한 강과는 달리 누런 황토물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마치 황금 비단이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 같았다.

우리는 백탑산공원을 둘러보려고 했지만 공사로 인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공원 맞은편에 설치된 케이블카(30元)를 타고 산 위로 올라보기로 했다. 황하에서 제일 먼저 놓였다는 황하제일교(본래 이름은 중산교)를 통해 황하를 건너 케이블카를 타니 란저우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를 관통하는 황화와 대비된 백탑사의 청색 기와가 더욱 푸르게 빛났고 도시의 상징처럼 버티고 선 백탑도 보인다. 발 아래 황하에서는 모터보트나 양가죽으로 만든 뗏목을 탄다. 하지만 ‘황토물=구정물’이라는 내 선입관 때문인지 좀 이색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작 케이블카를 타고 도착하자 백련사도, 백탑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란저우에서 유명한 라미엔(라면, 拉面)을 먹어보기로 했다. 우리가 찾는 라면집은 이미 문을 닫았다고 해서 근처 잘한다는 집을 수소문해 들어갔다. 30분 이상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먹을 수 있었는데 양고기로 국물을 내고 고추기름으로 간을 맞춰 그런지 상당히 얼큰하고 맛있었다. 물론 독특한 향채 냄새와 꼬들꼬들한 면발이 특이하긴 했지만… 참, 향채(고수)란 우리 음식에 들어가는 대파처럼 중국음식에 흔히 쓰이는 식재료로 오래된 걸레(?)에서 나는 독특한 향을 낸다. 아무튼 큼직하게 썰어진 양고기가 들어간 국물이 진국이었다.

오후에 찾은 곳은 오천산공원, 하지만 원래는 오천산 공원 뒤로 보이는 란산공원(2192m)을 목적으로 갔었다. 산 정상부에 위치한 그곳으로 오르는 절벽길이 인상 깊었다는 일행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기대를 했었지만 오천산공원 주변의 정리공사로 인해 란산공원까지 가려던 처음의 계획을 접어야 했다. (아니면 란산공원의 입구를 잘못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공사로 어수선한 오천산공원과 란산공원으로 이어진 케이블카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필 우리가 찾는 두 곳 모두 공사 중일게 뭐람! 조금 김이 빠져버린 느낌이었지만 이런 맛으로 배낭을 짊어지고 사막을 찾지 않았던가. 다리가 무거워질수록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 대한 기대는 더 커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둔황으로 가는 야간열차(침대차, 4인1실,400元)를 타기 위해 란저우 역에 도착했다. 열차시간이 조금 남은 우리는 역 앞 광장의 빈자리를 골라 엉덩이를 붙였다. 중국의 역 대합실은 표와 짐을 검사한 후 들어가도록 되어 있어 아무나 들어가서 쉴 수 있는 우리의 역과는 조금 달랐다.

햇볕을 피하자 오늘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다. 하지만 몸의 피로보다는 목의 갈증이 더 심했다. 차(茶) 문화가 발달한 중국은 차든 뭐든 다 끓여 먹거나 상온에서 먹었기에 상점에 파는 물이나 맥주 역시 상온에 진열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천에 물이 널렸다지만 쩍쩍 갈리지는 목구멍에선 시원한 냉수만 찾았다.

그때, 인근 시장을 뒤져 냉장 보관된 물과 맥주를 들고 오는 두 특공대원(?)이 보였다! 오, 구세주여, 신의 부활을 맞이하듯 여느 때보다 반갑게 일행을, 아니 맥주(^^)를 맞이한다. 퐁,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리고 각자의 종이컵이 하얀 성수로 채워진다. 카~ 이 맛에 산다! 최고의 시원함으로 목구멍에 낀 더위를 씻어 내렸다.

해가 중천에 뜬 오후 10시(베이징과 같은 시간을 쓰기 때문에 서쪽으로 갈수록 시간 차이가 크게 난다), 둔황으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에어컨이 빵빵한 침대칸에 들어서니 오늘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다. 한국에서가 가져온 즉석비빔밥과 란저우에서 준비한 과일과 컵라면으로 요기를 마치고 자리 눕는다. 흔들거리는 열차에서의 꿈은 얼마나 흔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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