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생각을 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누군가가 정해주는 하나의 답을 좇는데 익숙한 ‘정답사회’이다. 개인이 창조적으로 생각해낸 ‘좋은 답(Good Answer)’을 찾기보다는 윗사람이 정해주는 답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가 불러주는 정답을 받아쓰는 문화가 발달했다.

이런 모습은 관료사회에서도 나타난다. 얼굴을 마주보고 소신껏 대화하는 토론이 아니라 얼굴을 숙인 채 메모하기에 바쁜 모습이 공직사회에 퍼져 있다고 한다. 청와대 회의도 가끔 이같은 영상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수동적으로 읽고 듣고 쓰는 데는 익숙하지만 능동적으로 고민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습관이 부족했기 때문인 듯하다.

대표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국제행사에서 대통령이 창조경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 그들은 창조경제를 나와 우리 조직에 필요한 혁신이 무엇인지 각자 고민하고, 자발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창조경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며 대통령과 정부에 자꾸 정답을 내놓으라고 한다. 우리는 왜 ‘좋은 답’을 고민하지 않고 위에서 정해준 답만을 ‘정답’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왜 다양한 답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답만을 찾으려 할까?

대표적으로 학교 교육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국의 수백만 학생은 오로지 교육부와 선생님이 정해주는 답만을 맞히는 교육을 받는다. 흥부는 착한 사람, 놀부는 욕심쟁이라 외워야 한다. 만일 흥부는 게으르고 놀부는 자립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자신이 생각하는 창조적인 답을 쓴다면,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고 좋은 대학에도 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창조적인 DNA는 학창 시절부터 억제되어 왔다.

한 교수가 대학에서 첫 학기 강의를 들은 신입생들이 써내는 수강기를 받았다. 신입생들이 대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를 알기 위한 것이다 .19살짜리 신입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슨 고민거리들을 갖고 있었을까? 가장 놀라운 것은 한국에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올 때까지, 더 정확히는 대학에 들어와 그 강의를 듣게 되기까지 “한 번도 ‘생각’이란 것을 해본 일이 없었다”고 고백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루 종일 생각하면서 사는 동물인데 생각이란 건 해본 일이 없다니? 학생들의 말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우리 머리로 찾아내 본 일이 없고 어떤 질문에 대한 해답이나 응답을 우리 머리로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 한국 교육의 실상을 아는 사람들은 이런 고백의 진실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와 한국기자들에게 질문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질문하는 기자가 나오지 않으니 중국 기자가 질문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정답 문화는 우리 사회에 여러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첫째,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맞춤형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완성차 강국이지만, 개조차 산업은 후진국 수준이라고 한다. 공장에서 만든 똑같은 음료는 많지만, 나만의 음료를 만들 수 있는 가루음료는 드물다. 나만의 체형과 스타일에 맞는 맞춤복보다 표준 크기로 만들어 놓은 기성복에 내 몸을 맞추는 것에 익숙한 지 오래다.

둘째, 새로운 직업이나 업종을 찾기보다 남들 따라 하는 데 익숙하다. 좀 된다 싶어 너도나도 치킨집을 열다 보니 과다경쟁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에는 3만 개의 직업이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1만 개의 직업밖에 없다고 한다. 기존의 직업만 찾다 보니 우리는 2만 개의 직업을 잃어버린 셈이다.

셋째, 우수한 인재는 많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아직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남들과는 다른 연구가 필요하지만 우리에겐 이것이 익숙지 않은 탓이다. 반면 창조적인 교육 방식으로 유명한 유대인은 인구가 13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전체 수상자의 20%가 넘는 178명을 배출했다.

넷째, 문제가 생기면 남 탓을 한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고, 안전문화를 확산하는 것도 국가가 답을 주고 해결해 주길 기다린다. 경제를 살리는 것도 ‘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나’고, 안전을 지키는 것도 ‘나’라는 적극적인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후진국의 틀을 벗어나는 데는 남이 갔던 길을 쫓아가는 팔로어십 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21세기 선진대국이 되려면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창조적인 길을 만들어 가는 리더십(leadership)이 있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창조적인 플레이를 할 때 승리가 다가오는 것이지, 남들과 같은 뻔한 플레이로는 결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이제 바꿔야 한다. 하나의 정답을 찾는 문화에서 벗어나 각자가 좋은 답을 만드는 문화로 바꿔야 한다. 스스로 학습을 주도하고,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며,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토론식 회의를 해보는 것이다. 교육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 쯤은 심각하게 질문을 해야 한다. 나는 왜 학교엘 다니는가, 다른 사람은 왜 대학에 가려고 발버둥치는가?를. 그리고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왜 타인의 고통에 반응해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우리 사회는 왜 이런 꼴로 돌아가는가,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내 삶을 이끄는 가치는 무엇일 수 있는가, 삶의 의미는 어디서 얻고 목적은 어디서 구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정답이 없으므로 자신이 규정하고 자신이 풀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정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입식 교육, 질문이 없는 교육으로는 순응하는 인간밖에 기르지 못한다. 순응형 인간은 산업사회의 역군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21세기 디지털사회 정보화사회의 창의적 인재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구약의 하나님 말고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들은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고 당부한다.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는 특별관리 대상이다. 교사의 관심을 끈다. 이스라엘 학생들은 3색연필을 사용한다는 것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검정색은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을 기록하고, 붉은색은 중요한 내용에 밑줄을 긋는 용도로 사용하고, 파란색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 질문할 내용을 표시하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중등교육 6년 동안 정답찾기 훈련만 받다가 대학에 간 질문이 없는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교사나 부모님 같은 윗사람이 정해준 하나의 답이 아니라 개개인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각자가 갖는 수많은 좋은 답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하나의 답만 기다리는 사회보다 여러 개의 좋은 답을 창조하는 사회,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