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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행복을 만드는 오늘의 의미

지난해 팔월, 말복을 지났지만, 태양은 대지를 불태울 기세였다. 며칠 전부터 천정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그래서 위층 화장실 바닥을 해부하기로 했다. 해머 드릴의 진동과 파열음이 더위를 더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비지땀을 흘리는 아저씨를 보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덥고 힘들지요?” 냉수 한 병을 내밀자 “이게 원래 제 일인데요.” 감사를 표한다.

산다는 것! 어쩌면 지금이라는 여러 형태가 씨줄과 날줄로 오늘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지금 최선을 다하면 행복은 가까이서 미소를 짓지만, 게으름은 수시로 고개를 내밀어 행복을 밀어내기 일쑤다. 이런 지금의 소중함을 되새김해준 책이 바로 정호승의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 준 한마디’였다.
 
이 월말이었다. 치매로 어머니를 여의고 십오 년 동안 홀로 지내시던 아버지께서 아흔을 눈앞에 두고 뇌출혈과 신장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장례 기간 내내 주말도 없이 종종걸음친 상흔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하지만 그 후 찾아온 허전함은 우울증을 동반하여 마음의 근간을 흔들기도 했다. 이런 흔들림을 잠재우고 마음을 다독여 준 책이 바로 정호승의 산문집이다.

이 책이 던져준 치유의 깨달음은 두 가지다. 그 첫 번째 속삭임은 ‘미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에 나오는 세 나무 이야기다. 산속에서 자라고 있는 세 그루 나무는 각자 보석함과 세상을 돌아다니는 커다란 배,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게 자라 신께 영광을 드리는 나무가 되는 소원을 갖고 있다. 그런데 보석함이 되기를 원했던 나무는 마구간 여물통으로, 아름다운 보석상자가 되기를 원했던 나무는 어부가 타는 작은 배로, 신께 영광을 드리고 싶어 한 나무는 잘려 통나무 더미에 던져져 낙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림이란 시간이 흐른 후 여물통은 메시아를 담은 보물 상자로, 작은 고깃배는 갈릴리 호수에서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낚싯배로, 통나무 더미에 던져진 나무는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히는 십자가로 구세주를 모시는 영광을 입게 됐다.

흔히 현재는 미래로 가는 과정이고 징검다리라고 한다. 생전에 어머니께서는 욕망이 많을수록 근심 또한 많아진다 하시며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되새겨보면 이 말은 다가오지도 않은 걱정을 가불해서 안절부절못하는 일이 참 어리석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항상 걱정하며 산다. ‘카드결제 날이 언제지, 무슨 약속을 했더라, 결혼기념일이 얼마 안 남았네…….’ 등 뒤에 일어날 일들을 가불하여 걱정하는 생각의 노예가 된다. 이런 잘못을 고치는 처방은 바로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미래를 가불해서 살면 미래 또한 그만큼 줄어드는 미래는 선택의 마약이다.’라는 구절이었다.

두 번째 두드림은 ‘지금이 바로 그때다.’였다. 여기에서 강조한 지금의 의미란 무엇일까? 정호승 시인은 노모께서 병들었을 때 소금 부족이란 진단을 받고 소금을 드시고 나았다고 한다. 그래서 노모를 살린 소금이 제일 귀한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소금도 황금도 아닌 지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에 공감을 더하는 것은 현재의 순간을 신나게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법정 스님은 '인생이란 기차는 왕복승차권이 필요치 않으며 지금이 바로 그때이며 삶은 미래가 아니니 매 순간의 쌓임이 소중함을 두고 세월을 깁고 생애를 이루며 진정한 행복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을 꿈꾼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지금에 욕망을 덧씌워 순간의 행복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함경에서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며 한번 지나간 것은 이미 버려진 것이므로 현재의 일을 자세히 잘 살피고 익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금과옥조의 글을 읽으면서도 지천명을 바라보는 시점에 할 일을 자주 미루며 아직 급하지 않네, 이건 내일 해야지 하며 얼버무리는 자신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지금의 최선! 참 중요한 말이다. 과거는 구체성을 지닌 유형의 존재지만 미래는 구체성이 없는 무형의 존재이다. 내 인생에서 수없이 많은 오늘도 마지막이 될 수 있으며 삶은 모든 순간이 첫 순간이고 마지막 순간이며 유일한 순간임을 알아야 한다.

추사 김정희는 한일자를 십 년 쓰면 붓끝에서 강물이 흐른다고 하였고 칠십 평생 벼루 열 장을 밑창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한다. 이는 미래를 끌어당겨 걱정하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이제 초복을 지났다. 아직 불볕더위가 남았지만, 중복과 말복을 넘기고 처서에 접어들면 가을의 전령사들이 서늘함을 쓰다듬을 것이다. 한 권의 책! 어려울 때, 위로가 받고 싶을 때 제일 가까이서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행복 이야기가 이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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