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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참 나쁜 담임 업무배제

필자는 1년 만에 학교를 다시 옮기게 되었다. 오래 전 경기도에서 도간교류할 때 빼곤 32년 교직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절실한 까닭이 있는 이동이었다.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수업말고 딱히 할 일이 없어서라고 하면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필자는 교직 대부분을 학생들 글쓰기와 학교신문⋅교지 지도교사로 근무했다. 최근엔 그런 열정과 학생지도 봉사의 공적을 인정받아 제25회 남강교육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과 기쁨도 맛보게 되었다. 이를테면 교육상 수상에 빛나는 특기⋅적성교사로서의 존재감을 찾고자 1년 만에 학교를 옮기게 된 셈이다.

그러나 새로 간 학교에서 60줄에 접어든 내게 맡겨진 업무는 한 마디로 황당 그 자체이다. 32년 만에 거의 처음인 일들이 대부분이어서다. 업무분장표에 보면 교무기획부의 ‘장학/홍보/학부모계’이다. 세부 실천내용은 자그만치 13가지나 된다. 좀 지루하겠지만, 일일이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교직원협의록 작성, 장학생 선발 및 심의회 운영, 학교홍보 계획 수립 및 추진, 보도자료 수집 및 발송, 행사사진 촬영, 에너지 절약(학생 및 교사), 안전교육⋅홍보, 재난훈련교육(전교생 대상), 학부모 관련, 학부모회 조직 운영, 다문화가정 관리, 국제이해교육, 교육복지 및 탈북학생지도, 농산어촌교육발전 특별법 등이다.

알고 보니 ‘담임 업무배제’라는 공문 때문 그리된 것이란다. 그럴망정 설마 도교육청이 가장 나이 많은 원로교사에게 일을 몽땅 맡기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탁상행정식으로 툭 내부치듯 ‘담임 업무배제’ 공문을 내려보낸 교육청이나 그걸 곧이곧대로 시행, 원로교사 대접은커녕 신규때보다도 더 많은 업무를 준 학교 모두 도대체 납득되지 않는다.

급한 대로 몇 군데 고교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봤다. 담임한다고 업무가 전혀 부여되지 않은 학교는 없다.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학교현실이고, 그래서 탁상행정이다. 그렇기에 정부에서 담임들에게 담임수당을 준다. 부장들에게도 부장수당을 준다. 성과급 평가 항목 등에서도 담임이나 부장우대 조항이 있다.

터진 입이라고 툭하면 교사업무 경감 어쩌고 해대는 교육당국의 ‘수사놀음’의 허구성을 직접 만난 듯하여 씁쓸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나이 먹었다고 수업외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도교사 표창 등으로 장관을 비롯 교육감도 인정한 내 특기 살릴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13가지 실천내용을 보면 과연 대한민국 교사가 해야 할 일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들도 있다. ‘에너지 절약’⋅‘안전교육’⋅‘재난훈련교육’ 등이 그것이다. 다른 학교에 근무하면서는 그런 일한 교사를 본 적이 없다. 이쯤되면 아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업무분장이라해도 과장이 아닐 듯하다.

‘학부모회조직 운영’도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담임 말도 별 ‘끗발’이 없는 세태의 학부모들을 일개 비담임교사가 어떻게 만나 교유하고 회까지 만들어 운영하라는 것인가. 말인지 막걸리인지 당초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다문화가정 관리’, ‘국제이해교육’, ‘탈북학생지도’ 등도 ‘장학/홍보계’가 맡을 일은 아닌 걸로 생각된다.

이런 업무분장이 황당한 이유는 더 있다. 전입시 내게는 담임희망 유무를 아예 묻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곧 정년퇴직이니 배려차원에서 빼준 것이라 이해하고 싶지만, 뒤통수 친 듯한 업무분장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지난 해 이 학교에 와서 학교신문, 글쓰기 지도 같은 걸 하다 퇴직했으면 좋겠다는 뜻도 내비친 바 있어 더욱 그렇다.

교육관련 칼럼을 수백 편 써왔지만,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지금 그딴 걸 배워가며 한 30년 더 ‘해먹는다면’ 모를까, 마침 하기 싫은 걸 억지로 맡으며 선생을 해야 할 만큼 궁한 처지도 아니다. 절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설마 이런 이유로 명퇴신청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줄, 진짜로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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