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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관하여

일제강점기 기간 동안 일본인들이 우리 국민들에게 입힌 피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언젠가 용서는 할 수 있겠지만 결코 우리 가슴 속에서 지워낼 수 없다. 왜냐하면 생생한 역사적 사실이기때문이다.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식민지 시대의 우리 국민들의 애환을 소설로 담아낸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은 전장의 상황이 어려워지자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을 징용해 갔다.

첫째는 건달패인 낭인들을 이용하여 인신매매를 강행했다. 낭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몇 푼의 전도금을 주면서 일본게 가면 돈벌이가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꾀어싿. '모집'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끌고 간 낭인들은 탄광이나 광산, 철도공사 같은 데다 팔아넘겼다. 낭인들이 받은 돈은 끌려간 사람들의 임금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들은 몇 년 동안 감시 속에서 골빠지게 일만 하고 빈털터리로 고향에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더 수두룩하다.

두 번째는 관에서 알선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일본의 국익 군수 산업체서 필요한 조선인 노무자들을 관의 행정계통을 따라 조달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행정절차 때문에 노무자 조달이 3개월 이상씩 걸렸다. 전쟁은 자꾸 확대되어 가고, 석탄 생산이며 군사시설 같은 것은 하루가 급한데 3개월이란 너무나 긴 기간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노무자 징용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행했다. (67~68)

강제 징용 당한 노무자들은 일본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근대산업시설에서 육제적,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 전쟁 물자를 대기 위한 탄광에서, 비행장에서 일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지시마 열도 여러 섬에서 죽은 노무자들만 4천여 명이라고 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자기네 근대산업시설을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일본인들의 행동을 볼 때 그들의 앞으로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군용위안소'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만주를 침략한 직후인 1931년이었다. 그때는 유곽에서 몸을 팔던 여자들을 모아 데려간 것이었다. 그런데 매춘부가 아닌 일반 처녀들 100여 명으로 일본군이 '육군위안소'를 직영으로 개설한 것은 중일전쟁이 터진 다음해인 1938년이었다. 이때부터 일본군은 일본의 낭인패거리들과 조선의 친일파 매춘업자들을 동원해 '돈벌이 좋은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 '여점원을 하면 돈도 벌고 공부를 할 수 있다', '간호부는 사람 대접받고 돈도 많이 벌고, 의사하고 결혼도 할 수 있다' 이런 거짓말을 꾸며대서 사기극을 벌이며 처년들을 군용위안부로 끌어갔다. 그러다가 1941년 7월 조선총독부와 일본군은 직접 나서서 1만여 명의 처녀들을 종군위안부로 끌어가려고 전국적으로 '여자사냥'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경찰과 형사들이 처녀들의 납치에 앞장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낭인들과 매춘업자들의 각종 사기극과 경찰이 자행하는 납치극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속에서 일본 육군성과 해군성은 진주만 기습 직후인 1941년 12월 말에 태평양 전쟁의 전선 전역에 걸쳐 '기지위안소' 개설을 명령했다. 그리고 일본군은 조선여자들의 인원 수를 '물품대장'에 올려놓고 '물품'으로 '배급'했다.

이때부터 총독부에서는 근로정신대로 위장된 종군위안부들을 손쉽게 끌어가기 위해서 친일파 지식인들과 문인들을 동원했다. 그들은 순회강연을 하고 잡지에 글을 쓰고 해서 총독부가 원하는 만큼 조선여성들을 종군위안부나 근로정신대로 끌어가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239)

일제는 160여만 명을 강제징용했고, 30여만 명의 여자들을 위안부와 정신대로 끌어갔고, 4,500여 명의 학도병을 포함해 징병으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이들은 40여만 명이었다.(283)

앞으로 우리 나라를 이끌어갈 주역이 될 청소년들이 우리의 근현대사 속에서 일제강점기 즉 식민시기에 일어난 일본의 만행에 대해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히 기록된 여러 문학들을 가까이 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져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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