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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다

취업 시즌이 다가 왔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이 언제라고 마음 편했을까만 명문대 학생이라도 열 군데 가까이 지원해야 취업이 될까 말까 한 각박한 현실이우리 앞에 놓여 있다. 중위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러다 인생의 낙오자가 될까 가슴 졸이며 수십 장의 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쓴다. 얼마 전 한 학생이 이렇게 하면서까지 번듯한 직장에 꼭 다녀야 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렇다. 성서 창세기에서 인간을 규정한 것이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이다. 이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인생의 바다는 더 넓다. 큰 풍랑이 일고 있다. 젊은 시절에 인생의 그물을 잘 만들기 위하여 땀이 필요하다. 그것이 공부였다. 그러나 잘 못하면 이런 준비가 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행복과 출세는 다른 게 아니냐,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안 되느냐?"고 비장하게 물었다. 십 년 전만 같았으면 당당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꿈을 좇아 살라고. 예순을 넘은 나는 꿈을 좇아 사는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차마 그러라고 용기를 북돋워줄 수 없었다. 꿈을 좇다 낙오자가 되거나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살아보니 꿈을 좇으며 산다고 행복한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먹어야 살고, 입어야 살고, 집이 있어야 사는, 물질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육신적인 존재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게다가 부모가 되면 가정과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책임까지 혹처럼 달라붙는다.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힘들고 괴롭다고 갖다 버릴 수도 없는 혹이다. 한 존재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혹이지만 사람은 또 그 혹으로 인해 성숙해지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어떤 삶을 선택하든 공과 과가 있다. 알고나니 학생들에게 뭐라 해줄 말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생각한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합하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이 농사일 하는 것을 보면서 자라났다. 봄이면 씨를 뿌려 여름 내 땀 흘려 가꾸고, 가을이면 수확하고 겨울이면 내년을 기약하며 땅을 쉬게 하고 농군들은 숨을 고르는, 순환을 보며 자랐다. 정성을 기울인 만큼 작물들은 풍성하게 자랐고 땅은 비옥해졌다. 때로 가뭄이나 홍수, 태풍이 휩쓸고 갈때도 있었다. 큰 태풍으로 식량 조달이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자연재해를 이겨내는 것도, 견뎌내는 것도 크게 보면 노력의 일부일 뿐이다. 뜻을 품고 그 뜻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삶은 절대 인간을 배신하지않는다는 내 긍정적인 마인드는 땅으로부터, 농부인 내 부모와 이웃들로부터 연유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대개의 삶이 이럴 거라 믿었다. 아니, 삶이란 이러해야 한다고 믿었다. 최근에 무심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어느 해녀의 말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나를 사로잡은 할머니 해녀의 말은 이러했다. “바다가 친정어매보다 낫수다.” 친정어머니는 돈 달라는 자식에게 몇 번 돈을 주고 이내 타박하지만 바다는 끝도 없이 베풀어준다는 것이다. 언제든 들어만 가면 완성품을 내어주는 바다와 노력한 만큼 내어주는 땅의 차이를 그날 다시금 생각했다. 바다와 땅의 차이는 그뿐 아니다. 친정어머니보다 따스하게 모든 것을 내어주지만 때로 목숨을 앗아갈 만큼 비정한 것이 바다다.

바다의 방식도 땅의 방식도 우리가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인생은 바라는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법칙대로 된다. 이 세상에 절대적이며 유일한 답은 없다. 이 법칙을 하나하나 발견하여 나의 방향을 내가 잡아야 한다. 남에게 핑계를 댈 필요는 없다. 어느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남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이 불안하여 보통의 직장인으로, 보통의 아버지로 사는 것도, 그 길이 답답하여 불안하게 꿈을 좇으며 사는 것도, 그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다만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다를 뿐이다. 땅을 선택하는 자는 씨를 뿌리고 가꾸는 노력을 해야 하며, 바다를 선택하는 자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거친 풍랑과 늘 싸워야하는 것이다.

이제 세상 속으로 나가야 할 젊은이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세상이 그렇게 쉽게 우리 모두에게 원하는 삶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앞서 가고 누군가는 뒤처지고 누군가는 전혀 다른 길을 갈지도 모른다. 어떤 삶에든 고통은 따르겠지만, 최선을 다한다면 어떤 삶이든 고귀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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