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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창가에서> 교사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보건교사로 학교 현장의 첫 발을 내딛었던 12년 전 일이다. 쉬는 시간에 몰려든 아이들이 워낙 소란스러워 정신없는 가운데, 내 머릿속에 정적을 가져오는 한 마디가 들렸다.

학생 사고·죽음 겪으며 트라우마

“선생님, 너무 힘드시죠?”

어찌 보면 흔한 말 한마디 같지만, 학생들이 자신보다 힘 있고 권위 있는 어른을 헤아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작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고3이었던 그 아이는 그 후 얼마 마주치지 못했는데, 그로부터 1년 후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다.

한 선생님이 침통한 표정으로 졸업생의 장례식에 간다고 하는데, 그 졸업생이 바로 그 아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상냥하고 남을 돌아볼 줄 알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은 꽤 컸기에, ‘대체 왜’라는 분노 섞인 의문만을 남겨줬다. 이후 “선생님 힘드시죠?”라고 말하는 학생만 봐도 화들짝 놀라고, 그 말 뒤에 실린 모습을 살피려는 강박증까지 생겼다.

사실 많은 교사들이 제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소아청소년의 주요사망원인에서 알 수 있듯 그 죽음의 형태는 자살, 사고사가 주를 이룬다. 이는 사별의 충격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작년과 올해 연이어 학교현장에서 벌어지는 참극의 중심에서 교사는 상처를 입은 당사자이자, 상처를 입은 학생과 학부모를 달래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자신의 상처는 미처 돌아볼 새 없이. 어쩌면 자신의 상처를 돌아볼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교육현장에서 위기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가령 학생이 심각한 외상을 입은 경우 교사는 ‘응급처치의 의무를 지닌 선생님’이기도 하지만, 응급상황에 대해 ‘슬퍼하고 경악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실제로 여태껏 학교현장에서 학생이 이런 상황에 처했을 경우 침착하게 대응하는 담임교사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이는 교사가 응급상황에 대한 전문훈련이 부족함에 따른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학생의 상태에 대해 응급전문가로서 바라보는 시각보다 ‘내 아이’, ‘우리 학생’이라는 감정의 동요가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대상자와 장기간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드문 소방관, 의료진, 승무원 등의 경우와는 다르다. 한 학생을 1년간 ‘맡아서 기른다’고 생각하는 교사와는 접근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내 상처 감춰야 할 그 이름 ‘선생님’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참다운 교사란 스스로 다리가 돼 학생들이 건널 수 있게 안내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쉽게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학생들 스스로 다리를 만들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사가 스스로 다리가 될 수 없는 순간, 교사는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채, 그리고 스스로 격려 받지 못한 채 다리가 되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 교사의 참 본분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교사를 교사되게 한다는 것은, 교사가 교사될 수 있게 해주는 여건 또한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교사는 가르치는 기계도, 감정이 없는 냉혈한도 아니다. 더 이상 무한 책임이란 미명하에 돌봄의 권리를 박탈당한 존재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 교육 현장에서 교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선이 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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