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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사자성어로 교육읽기> 신언서판(身言書判)

자녀교육에 유난히 관심이 많으셨던 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필자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신언서판’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줄곧 일깨우셨다. 그리고 그 네 가지 덕목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셨다. ‘신(身)’은 몸가짐을 단정히 하는 것이고, ‘언(言)’은 말을 겸손하면서도 조리 있게 하는 것이며, ‘서(書)’는 글씨를 정성을 다해 반듯하게 쓰는 것이고, ‘판(判)’은 매사에 분명한 판단력을 가지고 행해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서는 스스로도 이 덕목들을 무척 엄격히 실천하고 계셨다. 원래 풍채도 좋으셨지만, 단정한 한복차림에 언제나 등을 꼿꼿이 편 채 앉으셨고, 어떤 경우에도 곁눈질을 하거나 남의 말을 엿듣는 일이 없으셨다. 나직한 목소리로 담소하기를 즐기셨지만, 당신이 말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하기를 더 좋아하셨다. 글씨를 쓰실 때는 아무리 하찮은 내용이라도 흘려 쓰는 법이 없이 정자(正字)로 또박또박 쓰셨다. 바쁜 농사철에도 손에서 놓지 않으셨던 책과 신문은 친지·주민들의 대소사를 상담해주는 남다른 판단력의 원천이 되었고….

슬하의 우리 여섯 남매는 성장하면서 변함없이 한결같은 모습을 지키시는 아버지를 사뭇 어려워했지만,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 앞에서 우리는 조그만 일탈도 꿈꿀 수 없었으며 항상 자신의 말과 행동거지를 돌아봐야 했으니 그 이상의 교육이 있을 수 없었다. 우리 남매 중 다수가 교육 가족의 일원이 돼 학생들에게 ‘단정한 언행’, ‘반듯한 필체’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분명 아버지의 영향이다.

후일 찾아보니, ‘신언서판’이란 말은 중국 당나라 때의 인재 전형 방식에서 유래했다. ‘당서(唐書)-선거지(選擧志)’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무릇 사람을 고르는 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이니, 풍채가 늠름해야 하고, 둘째는 말이니, 말이 조리 있고 정직해야 하며, 셋째는 글씨니, 해서(楷書) 글씨는 아름다움을 다해야 하고, 넷째는 판단이니,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凡擇人之法有四, 一曰身, 言體貌豊偉 二曰言, 言言辭辯正, 三曰書, 言楷法?美, 四曰判, 言文理優長.]’ 첫 조건이 아버지 말씀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해석의 다양성에서도 기인하거니와 볼품없는 체격을 타고난 필자에 대한 나름의 배려셨으리라.

비 오는 가을밤, 지난날의 편지들을 들추던 중 한 자, 한 자에 정성을 기울여 쓰신 아버지의 필적(筆跡)을 보면서 새삼스레 당신 평생의 가르침 ‘신언서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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