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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위하여

‘낭만’이라는 말이 급격히 사라져 가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이 말은 사용 빈도가 높은 일상어였다.

대개는 ‘젊음’이라는 말에 자동적으로 따라 붙거나, ‘대학생활’이라는 말에도 어김없이 따라 붙던 말이다. 한국전쟁 뒤의 그 고단하고도 궁핍한 삶이 지천이던 때에 오히려 ‘낭만’이란 말이 넘쳐났다는 것은 좀 의아해 보이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낭만은 곤핍한 현실을 극복해 가도록 하는 정신 에너지의 일면을 안으로 간직하고 있다.

01
가수 최백호가 1995년에 발표하여 대중들에게 큰 감응을 불러일으킨 노래에 ‘낭만에 대하여’가 있다.
중년 이후의 세대에게는 소위 ‘노래방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노래이다. 나를 포함하여 낭만을 간직해 보았던 사람이라면, 각별한 친화감을 가지고 부르는 노래이다. 그러나 이 노래야말로 낭만 자체를 노래한다기보다는, 잃어버린 낭만, 지금은 부재(不在)하는 낭만, 회복하기 어려운 낭만을 노래하고 있다. 가사가 그것을 웅변한다. 감성의 절절함이 배어 있는 2절 대목을 그대로 옮겨 본다.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슬픈 뱃고동 소리를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가버린 세월이 서글 퍼지는/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 마는/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다시 못을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작사와 작곡을 모두 가수 본인이 하였다. 이 노래를 지을 무렵 가수 최백호의 나이가 대략 마흔 중반이다. 청춘의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낭만 감각을 몽땅 잃어버린 늙은 나이도 아니다. 낭만의 원숙한 경지를 그윽하게 체득하고 있을 나이라 할 수 있다. 이 노래를 두고, 앞에서 ‘지금은 부재(不在)하는 낭만’에 대한 아쉬움을 잘 담아낸 노래라고 했지만, 사실 낭만이야말로 ‘부재하는 것에 대한 동경과 간구를 온몸으로 추구하려는 정신’인지도 모른다. 현존(現存)하는 현실을 절절히 담아낸다면 그것이 어디 낭만에 어울리는 것이 되겠는가. 그래서 이 노래는 낭만에 대한 강한 환기(喚起)를 대중들에게 대령시키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는 대중들 사이에서 ‘낭만’이란 말이 서서히 사라져 갈 무렵에 나온 노래이다. 대중들이 이 노래를 좋아하는 현상에 대해서 대중문화론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면, 낭만의 소실점이 드러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마음으로 이 노래가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열정과 꿈이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뜻한다.

02
 ‘낭만(浪漫)’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감정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적 상태. 또는 그런 심리 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로 설명되어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좋은 뜻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이 뜻풀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대체로 낭만주의자의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낭만은 ‘낭만주의(浪漫主義)’ 사조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낭만주의라는 말이 있음으로 해서 ‘낭만’이라는 말이 일반어로 등장할 수 있었다. 적어도 한자문화권인 동양에서는 그러하다. 낭만주의는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발달했던 문학과 예술의한 사조(思潮)이다. 자유로운 공상의 세계를 동경하며 정서, 감정, 개성 등을 중요시하는 사조인 것이다. 낭만주의를 원래 영어로는 ‘Romanticism’이라 일컬었다. 아마 도 낭만적 자질이나 성향이 남유럽 라틴계 종족의 기질에 잘 드러났던 것에 연유하여 ‘Romanticism’이라는 명명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말을 한자 문화권에서 받아들이면서, 처음에는 ‘Roman’이라는 음을 살려 ‘로만주의(魯漫主義)’로 표기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낭만주의(浪漫主義)’와 경합하다가 밀려나게 되었다. ‘낭(浪)’은 ‘물결이 일렁거린다.’는 뜻이고, ‘만(漫)’은 ‘질펀하게 넘쳐흐른다.’는 뜻이다. 개성의 솟구침을 자유분방하게 표방하는 낭만주의 본성에 어울리는 말 같기도 하다. 낭만주의와 대비되는 반대 성향을 무어라고 말하면 좋을까. 딱히 맞아 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주의(realism)’가 여기에 해당할 법하다. 낭만주의와 기계적인 대비를 시키면, 현실주의는 ‘이상이나 관념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이라는 뜻풀이가 적절하다. 그러나 현실주의의 가치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현실주의를 그렇게 말하기보다는 이렇게 말한다. “현실주의는 이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이상의 실현을 기다리는 태도이다.” 그러니까 현실주의자들에게도 이상이나 낭만은 부정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03
 ‘낭만’이라는 말이 급격히 사라져 가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이 말은 사용 빈도가 높은 일상어였다. 대개는 ‘젊음’이라는 말에 자동적으로 따라 붙거나, ‘대학생활’이라는 말에도 어김없이 따라 붙던 말이다. 한국전쟁 뒤의 그 고단하고도 궁핍한 삶이 지천이던 때에 오히려 ‘낭만’이란 말이 넘쳐났다는 것은, 좀 의아해 보이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낭만은 곤핍한 현실을 극복해 가도록 하는 정신 에너지의 일면을 안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낭만성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드러내고 자아를 더 자유로우면서도 더 정체감있게 구현하려는 의지와 힘의 근본이 된다. 19세기 독일의 시인이며 철학자이었던 프리드리히 폰 슐레겔(Friedrich von Schlegel, 1772-1829)은 낭만주의 예술비평가로서도 유명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내면에는 무한으로 솟구치고 싶은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 있다. 인간은 하나의 개체호서의 비좁은 굴레를 박차고 나가고 싶어 하는 열에 들뜬 갈망이 있다. 슐레겔은 이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낭만성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런점에서 낭만은 가짜의 가치들에 저항하고 순정한 인간 본연의 가치들을 추구하게 하는 정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근래 수 년 동안 인터넷에 널리 소통되었던 글 하나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 건너의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우주(宇宙)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世界)는 잃어버렸고, 공기(空氣) 정화기(淨化器)는 갖고 있지만, 영혼(靈魂)은 더 오염(汚染)되었고, 원자(原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偏見)을 부수지는 못한다. 집은 커 졌지만, 가족은 줄어들었고,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졌고,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자유(自由)는 더 늘었지만, 열정(熱情)은 더 줄어들었다. 1999년 4월 2일 미국 콜로라도의 리틀톤(littleton) 시의 컬럼비안 고등학교에서 따돌림을 겪던 학생 두 명이 총기를 난사하여 동료 학생 12명과 교사 2명을 살해하고, 본인들은 자살하였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호주 콴타스(Quantas) 항공의 CEO이었던 제프 딕슨(Geoff Dixon, 1940~ )이 인터넷에 <우리 시대의 역설(The Paradox of our Time)>이라는 글을 올렸는데,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원래는 시애틀의 교회 목사인 밥 무어헤드(Bob Moorehead)의 방송 설교 내용에 있던 것이라 한다. 또 한편으로는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에 있는 내용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글에 여러 사람들이 자신이 느끼는 우리 시대의 역설을 하나씩 더하여 인터넷에서 소통함으로써, 인류적 공감을 더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상실한 열정과 사랑의 낭만성을 각성할 수 있게 한다. 어디에도 낭만을 구가하는 노래를 발견하기 어렵다. 낭만을 향하는 삶이 소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과 효율성의 이름으로 낭만의 열정은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낭만은 존재가 행복해지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공동체에게도 낭만은 필요하다. 오늘날 선생님들의 낭만성은 어디쯤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박인기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국어 교육을 전공한 교육학박사다. 한국교육방송프로듀서, 한국교육개발연구원을 지냈으며 한국독서학회 회장을 역임. 현재는 경인교육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교육론>, <교사와 책>, <국어교육과 미디어 텍스트>, <스토리텔링과 수업기술>, <교과는 진화하는가> 등의 저서와 산문집 <송정의 환>, <사계의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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