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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는 왜 인기 가수 그 이상일까

최근 서태지가 오랜만에 가요계에 복귀하면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문화대통령이란 말을 듣는 가수는 오직 서태지뿐이다. 서태지는 어떻게 일반적인 인기 가수 그 이상의 존재가 됐을까?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는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서태지가 나타나기 전까지 우리 가요와 팝음악 사이엔 현저한 질적 차이가 있어서, 클럽에서 전주만 듣고도 가요와 팝송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가요의 사운드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가 바로 서태지다. 서태지 이후론 가사를 듣지 않으면 가요와 팝송을 구분할 수 없게 됐다. 발라드와 트로트, 포크 등이 주도하던 가요계에 미국식 힙합과 댄스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서태지가 나타나기 전까진, 부드러운 영어에 비해 한국어는 딱딱하게 끊어지기 때문에 랩이 불가능하다고들 했었다. 그러나 서태지는 <난 알아요>를 통해 한국형 랩을 성공시켰고 이후엔 모두가 따라하게 됐다. 힙합, 댄스음악에 비주류였던 록음악을 섞은 것도 서태지의 독특한 성취였다. 서태지 이후로 한동안 댄스음악 간주에 록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기존 언론 시스템에 당당히 목소리를 냈던 서태지
워낙 혁신적인 음악이었기 때문에 기존 음악인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타났을 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갈구하던 10~20대는 서태지를 영웅으로 받아들였다. 서태지는 음악적 혁신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가사를 통해서도 10~20대의 마음을 대변했다. 1990년대는 신세대 문화가 나타나던 시기였다. 이때 나타난 신세대는 배고픔과 정치적 억압을 모르는 첫 세대였다.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의 과실을 누린 세대였던 것이다. 이들은 자유분방했고, 서구적이었으며, 소비 지향적이고, 개성을 중시했다. 이들의 등장은 기성세대에게 충격이었고, 그래서 ‘엑스세대’, ‘오렌지족’ 등의 세대담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서태지는 바로 엑스세대의 영웅으로 등극했기 때문에 단순한 인기 가수의 차원이 아닌 신세대의 표상이자, 한 시대의 상징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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