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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사의 ‘용기’를 기대한다

쿨메신저에는 각종 처리해야 할 사항이 깜박인다. 서둘러 업무포털사이트에 접속하니 긴급 공문이 ‘무언의 압박’을 한다. 교사는 교육의 민초이며 물이다. 아무리 정책이 바뀌어도 교사는 하루하루 자신의 철학과 경험을 가지고 학생과 마주한다. 행정은 효율성, 성과, 면피를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장학사들은 온갖 행정 일변도의 압력으로부터 교사들이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

"장학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요?"라고 교사들에게 묻자 "글쎄요. 그냥 뭘 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에요. 가급적이면 학교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차가운 반응이 돌아왔다.

최근 장학사들은 과거에 비해 친절하며, 겸손해졌고, 학교를 존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학사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교육현장에서 장학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각기 다양하겠지만, 본청과 지역청 장학사를 해본 경험과 교감으로서 4년여간 교육현장에서 근무하며 느낀 것을 바탕으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교육에 관한 행정보다는 교육을 위한 행정을 해주기 바란다. 현재 교육청 문화는 교육보다는 행정에 많이 치우쳐 있다. 최근 5・31교육조치이후 학교책임경영을 도입하면서 학교가 짊어진 책임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공동의 노력을 고민하기보다는 학교 간, 교사 간, 지역청 간 성과평가로 학교에 경쟁적 책무성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각종 통계자료, 설문조사, 실적자료와 보고서 제출 등의 행정 업무를 학교에 많이 요구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는 올해의 교육과정지침과 장학계획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업무관리시스템’으로 시시각각 새롭게 제시되는 정책과 긴급 사안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에는 학교폭력 온라인 설문조사로 교육부에서 지역청 평가를 하고, 본청은 지역청 국장을 평가한다고 하며, 성과상여금 및 학교 평가 지표로 응답률을 넣고 지역청 장학사들이 학교에 일일이 전화를 해서 90% 이상으로 응답률을 높이라며 사정을 했다. 또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7일 이상의 시한을 두고 공문을 발송하라는 지침이 있지만 장학사는 하루 이틀만 기한을 두는 긴급 공문을 계속 보내고, 교육부나 의회 요구라 어쩔 수 없다며 학교에 무언의 강요를 한다. 그래도 미안해하면서 사정을 하면 그나마 괜찮다. 위 기관에서 시키는 거니 내가 어찌하겠느냐며 무책임성의 답변을 하기도 한다. 비정상이 정상이 된 격이다. 행정을 위한 교육이 된 격이다. 다시 말하지만 효율성, 성과, 면피의 행정이 아니라, 진정 이 행정이 교사와 학생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지, 지장을 주지는 않는지에 대한 치밀한 고민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처음처럼’의 마음으로 장학사의 뿌리인 교사와 학교, 학생의 입장에서 행정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일하는 용기가 장학사에게는 꼭 필요하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진정성 있는 교육을 위해 자신의 삶과 철학을 투영하는 교육인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실현해야 하는 것처럼, 장학사들은 온갖 행정 일변도의 압력으로부터 교사들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주는 ‘교육현장을 지원하고 있다는 용기’로 일하기 바란다.

둘째, 교육의 가치와 사회적 역할, 역사적 인식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연구하는 자세로 업무를 추진해주기 바란다. ‘명품수업’, ‘교사가 브랜드다’, ‘3Up, Best, Top’ 등의 어느 나라 교육인지, 학교인지, 시장인지 알 수 없는 용어가 간혹 교육청의 발간자료와 공문에서 발견된다. 브랜드는 기업전략용어로 상품가치를 나타내며, 원어는 소유를 나타내기 위해 가축에 찍는 도장을 뜻하는 것이다. 교사를 가치에 따라 누구의 소유로 만들기 위한 브랜드인가? 교육의 가치, 영혼의 가치가 담긴 용어를 우리에게 전해주기 바란다. 교육청에서 잘못 사용하는 편협한 용어가 교사들을 돈의 가치로 평가하는 일이라는 문화와 착각, 오류를 줄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또 일부 교육지원청은 교감의 성과 평가 기준에 교육청 업무 지원을 점수에 넣어 평가함으로써 학교 지원보다는 교육청업무지원에 방점을 두는 평가 지표를 만들어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교육청이 학교를 관리하기 쉬운 입장에서 지표를 만들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이 학교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평가하는 지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장학사들이 만드는 용어와 지침은 그 자체가 역사이며 문화이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에 맞는 것인지, 교육이 지향하는 철학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한 혁신교육적인 마인드를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 바라며, 폭넓은 현장의 반응과 소리에 귀 기울여주기 바란다.

셋째, 교육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외부의 간섭을 막아주는 교육 현장의 울타리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교육은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집단적 이익이나 기득권의 횡포, 정파적 견해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본질적 역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비교육적 간섭과 침해로부터 적극적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최일선에 있는 장학사가 해주어야 한다. 특히 공교육은 기회의 평등을 주는 과정으로 일부 집단과 기득권에 떠밀리지 않고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간을 육성해야 한다. 언젠가 학교 담장을 다 없앴다가 외부 침입자 사고가 많이 발생하자 다시 담장을 쌓고 보안관을 배치한 것처럼 교육청은 교육의 울타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언제라도 교육적 판단에서 필요하면 문을 열고 환영하되 무방비 상태로 교육을 침해하는 것(몇백 건의 교육외부기관 협조 및 보고 공문, 악의적 민원, 정규수업에 지장을 주는 업무, 명예훼손과 무고 등)을 방지하지 못한다면 학교 현장을 지원하는 장학사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교육(교권)을 보호하는 지침과 근거를 잘 알고, 적극 적용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또한 장학사들이 상부의 지시를 그대로 받아 학교로 이첩하고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입장을 외부 기관에 설득하고 교육현황을 알리는 노력을 해주기를 바란다. 국가가 어려움이 있더라도 희생을 무릅쓰고 국민을 지켜줄 때 신뢰와 믿음이 생기는 것처럼, 교육청 장학사도 학교에 지장을 초래하는 간섭과 무리한 요구로부터 학교를 지켜줄 때 그 존재가치가 있고 신뢰가 생기는 것이다.

넷째,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같은 진정성과 봉사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바란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 나온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말의 의미처럼 교육의 가장 낮은 곳, 교실 속 교사들의 입장, 어둡고 힘든 곳의 입장에서 뜨거운 열정을 발휘해주기를 바란다.

교사는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풀과 같다. 교사들은 쉽게 부러지지도 않으며 함부로 몸을 세워 드러내지도 않는다. 아무리 정책이 바뀌어도 학교는 교사 자신이 갖는 철학과 경험을 가지고 학생을 매일 마주하며 하루하루 교과와 지혜를 가르치는 삶을 이어간다. 교사는 교육의 민초이며 물이다. 이러한 교사에 대한 진정성과 존중심을 바탕으로 일하기 바란다.

장학사들이 잘못된 행정과 공문에 대한 교육현장의 이견 제시나 질문을 눈앞에서는 친절하게 듣는 척만 하고 뒤로는 이를 귀찮게 여기며, 가식적이고 중립적인 용어로 방어적, 책임 회피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당구공같이 부딪히는 만남이다. 예의와 절차에 가려진 허구는 오래가지 못한다.

머리가 하나이고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아는 것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의미라는 것처럼 머리로만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는 장학사, 현장과 직접적인 일을 하지 않고 현장의 손을 빌리고 본인은 머리만 쓰려는 행위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그 결과는 학교와의 관계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길이다. 일부 장학사들은 복잡한 업무만 생기면 학교 교감과 교사들을 불러서 일한다. 정말 불러야 할 일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업무 지원 요청을 하기 바란다. 장학사 선에서 충분히 고민하고 열정을 가지고 해도 안 되는 일에만 불러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로 업무를 추진해주기 바란다. 다름을 인정하고 화목하게 지내되 의(義)를 굽히면서까지 조직문화와 상관의 지시에 무작정 따르지 않아야 할 것이며, 아무리 필요한 것이라도 획일적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직 문화가 있으니 장학사 개인의 주장만 할 수는 없으나 화합하되 올바른 삶과 교육의 기준을 버리지 말고 소신 있게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처지에 눈이 달린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얼굴에 눈이 달린 것이 아니라 발에 눈이 달린다는 옛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많은 경우 처해진 입장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갇힌 교육청 우물 안에서 바라보는 시야는 다양한 학교와 변화하는 현장의 모습을 담기가 힘들다. 교육청에서만 보는 잣대로 학교를 일반화, 동일시하려 하고 각종 우수사례를 가지고 그대로 끼워 넣으려고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학생들마다 모두 상황이 다르듯이 학교에 대한 정책을 수행할 때 그 처지와 입장이 다름을 충분히 포용해야 할 것이다.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장학사들은 너무 바쁘게 일하다 자기들만(장학사, 교장, 교감 등)의 만남을 위주로 생각을 고정하는 경향이 있고, 교육현장과는 무관하게 피곤하게 일만하다 보람 없이 몸과 마음을 상하는 경우도 많다. 교육현장과의 진정성 있는 만남과 신뢰가 무너진 곳에서 장학사들은 존재 의미와 정체성을 잃고 흔들리는 것이다. 교육현장과의 신뢰 있는 관계성 회복을 위해 ‘다름’을 포용하면서도 올바른 사회적 인식과 책무성으로 현장 속에서 실천하며 소신 있게 일해주기를 기대한다.

본인도 장학사 시절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노력해보았지만 쏟아지는 업무와 동굴 같고 거대한 함선 같은 교육청 문화와 틀에 갇혀 순응하던 시절이 있었기에 장학사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제언을 하는 것은 장학사들에 대한 동병상련의 마음이며 행정을 맡은 교감으로서의 다짐이기도 하다. 또 장학사들 대부분이 매우 성실하며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기대를 가지고 하는 것이며, 교육청과 사회에서 이러한 장학사의 위상을 함께 정립하는 문화가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신 있게 교육의 발전을 위해 교사와 학생을 존중하며 힘들고 복잡한 많은 일을 마음고생 하며 일하고 있을 장학사들에게 힘찬 신뢰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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