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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발전에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선생님이 선생으로, 가르치는 일이 선생질로 비하되어 존경과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일까? 요즘 학교는 ‘너무 힘들다’는 선생님들로 가득하다. 심지어 ‘왜 선생님이 되었을까’ 후회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발전 뒤에는 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세상’을 꿈꾸며 헌신한 선생님들이 있었다.

과거의 대한민국은 아프리카의 이름 모를 나라와 다름없는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나라였다. 부존자원도 없는 대한민국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국가 발전에 필요한 ‘사람’이었으며, ‘인재 양성’은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규모 15위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천이 ‘교육의 힘’이었음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교육의 중심에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대한민국 발전에 헌신한 대한민국 교사들의 발자취를 좇아가 보자.

1945년~1950년대 _ 대한민국 교육제도의 근간을 세우다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의 바람과는 달리 시행된 미군정 시기에는 일제 잔재 불식, 한국어 교육 자료 마련, 교육제도의 민주화가 급선무로 이루어졌다. 당시 선생님들은 우리말과 문화를 바로잡기, 민주교육의 기틀 세우기, 일제강점기에 피폐된 농촌 계몽, 궁핍한 사회의 재건활동 등에 앞장섰다.

1947년 100여 명의 교육자가 창립한 대한교육연합회(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전신)는 새로운 교육제도와 교육내용을 정립하고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민주교육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1949년 정부는 교육법을 공포하고,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삼았으며, 6-3-3-4 단선형 학제를 도입하는 등 오늘날 교육제도의 근간이 되는 교육이념, 교육목적, 교과내용, 교육방법 등을 정립하였다.

1950년대의 우리나라 생활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35년간 일제의 수탈, 해방,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온 국토가 황폐해지고, 남한에서만 1,996,000여 명의 사상자와 22,437개소의 학교와 주요 건물이 피해를 당했고, 한국교육은 또다시 퇴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사들은 전쟁 중에도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다. 판자나 천막으로 지은 가교실, 노천 교실, 피난 특설 학교에서 전시 교재와 교과서를 발간·배부하고 피난 학생을 지도하였다.

1959년에는 의무무상교육으로 시행해온 초등교육에 3,558,142명이 취학하여 취학률이 96%에 이르렀고, 교원과 교실 부족이 심화되었다. 학생 수용인원을 학급당 60명 이하로 규정하였으나 ‘유명무실’이었다. 결국 선생님들은 콩나물시루와 같은 교실에서, 무더위, 맹추위, 박봉을 견디며 학생들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1960~1970년대 _ 오늘날 산업 발전에 핵심적 인력을 키워내다
1960년대에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가진 것이라곤 사람밖에 없었다. 한 선생님이 한 반에 60여 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여름에는 비지땀을 흘리고, 겨울에는 난롯불을 피우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행됨에 따라, 실업학교가 설립되었다. 선생님들은 국가 발전에 필요한 전문 기술인 배출에 힘썼고, 이렇게 양성된 산업 인력들은 오늘날 산업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1970년대에는 일부 교사들이 임금이 더 높은 기업체로 떠나기도 했으나, 절대다수의 선생님들은 박봉과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열과 성을 다하여 인재교육에 힘썼다. 또한 학문중심주의와 같은 새로운 교육 사조를 받아들여 학생들 교육에 힘쓰는 한편 당시 시작된 새마을교육에 앞장서 가난했던 농산어촌이 잘 사는 동네로 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80년대 _ 민주화와 함께 학교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다
1980년대는 정치적, 경제적인 큰 변화가 있었다. 군부세력에 의한 5공화국이 시작되었고, 대학가에 학생운동이 빈발하고, 이데올로기 갈등이 표출되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설립되고, 그 활동이 법으로 보장되기도 하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표방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학교 조직의 민주화, 수업 방법 개선, 학생 개성 존중, 교육계 부조리 척결 등 학교 문화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_ 교직에 대한 불신과 교실붕괴가 심화된 서글픈 시기
1990년대에 이르러 21세기를 대비한 교육개혁의 하나로 정보화, 영어교육이 강조되었다. 많은 선생님이 정보화교육 등에 헌신하여, 오늘날의 인터넷 강국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획일적인 교육과정 적용에서 벗어나 학생의 적성, 능력, 진로를 고려한 교육 내용과 방법의 다양화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교직에 대한 불신, 경시 풍조가 심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1999년에는 교원 정년 단축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고, 교실(학교) 붕괴로 불리는 현상들이 빈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교사 경시 풍조와 열악한 근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학생 교육을 위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교단을 지켰다. 학교급별 취학률은 계속 증가하였고, 선생님들은 산업 발전에 필요한 우수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길러냈다. 그 결과 1인당 GDP가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2000년대 이후 _ 학교 현장으로 쏟아져 들어온 다양한 교육정책
본격적인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학생 수 감소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농산어촌 지역 학교들의 통폐합이 진행되었다. 또한 세계화 물결이 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수시 개정 및 개편, 안전교육, 역사교육, 행복교육, 한자교육, 자유학기제, 돌봄교실, 진로교육, 학교폭력예방교육, 방과후학교 강화, 무상급식, 보건교육, ICT 교육, SW 교육 등 다양한 교육 정책들이 학교 현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결국 이 모든 것들 또한 선생님들이 풀어야 할 과제로 넘겨졌으나, 선생님들의 처우개선이나 업무 경감은 수준은 미미하였다. 무엇보다도 교권침해 사례가 늘어나 선생님들의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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