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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대학(大學)>에서 탕(湯)임금은 세숫대야에 새기길(盤銘) ‘苟日新日日新又日新(탕지반명왈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이라고 적어놓고 매일 세수를 하면서, 보고 또 보며 “어제와 같은 오늘이 돼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변증법적인 발전을 꿈꾼다

새롭다는 의미의 新을 파자하면 “立(설립)+木(나무)+斤(도끼)”로서 도끼로 나무를 잘라내어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심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新은 기존에 있었던 것을 뿌리 채 뽑아서 없애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革新(혁신)의 革은 가죽을 벗긴다는 의미이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같다면 새로워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만물은 유전한다(panta rhei , 萬物流轉). 변증법을 가장 잘 표현한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는 현상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불이 그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새로워져야 한다. 새롭다는 것은 발전한다는 것이다. 변증법은 새로운 것으로의 발전이다. 따라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진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는 세상을 잃은 자이다. 이 세상이 나의 것이기에 나는 주체자로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항상 변화를 해야 하고 그래서 새로운 내 세계를 구축해야한다. 따라서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다. 세상은 무수히 서로 대립되는 갈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자식간의 대립, 부부간의 대립, 교사와 학생 간 갈등…. 대립은 새로운 발전을 유도한다. 대립이 없는 국가, 사회, 가정은 독재를 만들어 낸다. 독재는 발전이 없다. 그래서 그 구성은 모두가 비루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제행무상과 현존재에 대한 긍정
세상에 늘 같은 것은 없다(諸行無常).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기에 괴로워하는 것(一切皆苦)이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초인(超人, Übermensch)을 이야기 한다. 초인은 과거의 퇴색된 나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영혼이며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며 새로워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존재이다. 변화시켜 새롭게 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이다. 현재의 모순되는 것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고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나 현존재 자신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 즉 현존재에 대한 긍정의 생각인 ‘아모르 파티(Amor fati)’가 이루어 져야한다. fati는 운명 즉, 우리의 삶이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지 않고 미래가 있을 수 없다. 현재에 대한 올바른 직시가 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미래의 풍요로운 삶의 씨앗이 된다. 오늘이 지나간 어제(yesterday)는 역사가 되고 미래(tomorrow)는 알 수 없어 미스터리지만, 오늘은 나에게 선물(a gift)이기에 오늘을 ‘present’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는 미래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에 따르면 지금 나는 미래 무엇이 될 무한한 가능성(가능태, dynamis)을 지닌 존재인 현실태(energeia)이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현실태이다. 그 현재를 어떻게 영위하고 새롭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에 나타날 가능태로서의 나의 모습은 크게 달라져 있게 된다. 변화될 가능성을 갖고 있기에 새로운 내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기에 우리 인간은 위대하다. 이러한 생각을 갖고 삶을 살아갈 때 완전한 나인 완전태(entelecheia)를 내안에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위대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새로움을 갈구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는 모순을 갖고 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이다. 새로운 자아에서 또 다른 나를 찾는 눈을 가질 때 나는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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