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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이라는 말 속에 숨겨진 그들의 속마음

‘왜 자퇴했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그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유 없는 자퇴는 없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을 뿐. 학교밖청소년들 중 학교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청소년들이 ‘순간의 선택’으로 학교를 떠나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도록 그들을 따뜻한 시선과 마음으로 품어주자.

“왜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니?”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 처음 온 청소년들에게 항상 하는 질문이다. 그럼 늘 “그냥”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들에게 그냥이라는 대답은 가장 편한 답이다. 어른들이 자신들에게 다시 물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꾸준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을 하게 되면 항상 속마음이 나온다. “그때, 그 순간만 참았으면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 텐데….” 혹은 “그때 엄마가 나에게 한 번만 의견을 물어봐 줬다면 그렇게 집을 나가지 않았을 텐데….” 등 후회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혼자서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다 제대로 사고 친 아이
재작년 센터를 오게 된 유식(가명) 이는 학교에서 공부를 제법 하는 우등생이었다. 학업성적 유지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부모님은 걱정하실 것 같아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고, 선생님은 가볍게 여겼기에 속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결국 늘어나는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지나가던 초등학생을 성추행하는 사고를 쳤다. 법원에서 수강명령을 받은 유식이는 하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수강명령이 끝난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지만 한번 사고를 치고 자퇴한 학생을 보는 학교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그래서 결국 또다시 자퇴를 하고 말았다.

“같은 반 친구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도, 이렇게 된 상황도 짜증나고 화가 나는데 선생님들의 반응은 더 짜증 났어요, ‘왜 자퇴했냐’며 아이들 앞에서 대놓고 물어보시는 선생님, 그리고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감시의 눈으로 보는 선생님들…. 그런 눈빛이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학교에 가기 싫고 그러다 보니 또 자퇴하게 되더라고요.”

헛소문으로 힘들어하다가 자퇴한 아이
레즈비언이라는 헛소문으로 힘들어하다가 자퇴를 한 사례도 있었다. 이 여학생은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친구들도 싫었지만, 그런 소문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대처하는 선생님들에게 더 큰 실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학업중단을 결정하면서 선생님과 상담을 했어요. 처음에는 저를 위로해주셨지만, 결국엔 ‘너도 잘못이 있으니까 친구들이 왕따시키는 게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친구들은 장난으로 하는 건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 솔직히 저는 제가 잘못했다기보다는 그저 사교적이지 못할 뿐이거든요. 제가 남을 때린 것도, 공부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다만 그냥 친구들이 놀릴 때 웃어넘기지 못하고 화를 낸다거나 울어 버린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한 건가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데…. 최대한 참은 건데….”

일방적인 어머니의 태도가 싫어 가출하며 방황하는 아이
수정(가명)이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아버지와 같이 살았지만 아버지의 재혼으로 어머니에게 오게 되었다. 어머니는 남자친구가 자주 바뀌었고, 그럴 때마다 이사를 가는 등 생활환경이 변했다. 잦은 환경변화는 수정이에게 스트레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는 일방적으로 울산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야기를 전달받은 수정이는 가출을 해 버렸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탓인지 학교에서는 연락도 오지 않았고, 그렇게 학교밖청소년이 되었다. 가출 이후 방황하였으나 지금은 학교밖센터로 연계되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으며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또한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때 엄마가 나에게 설명을 해줬다면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을 거예요. 이사나 전학을 갈 때 맨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엄마가 싫었어요. 뭐, 엄마도 부끄러웠겠죠. 맨날 남자친구가 바뀌고 그러니까. 지금도 그렇고…. 그래도 제가 바보도 아니고, 설명을 해주면 이해라도 할 건데. 진짜 짜증났어요. 친구도 못 사귀고….”

나에게 상처 준 그들이기에 ‘미안함’은 없다
그렇다면 왜 학교밖청소년들은 그 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하지 못할까? 그들의 대답은 비슷하다. 학교에 다니면서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다른 집 아이들은 공부만 잘하고 말만 잘 듣는데 왜 너만 문제냐’며 혼난다. 이해를 받기 위해 한 말이 공감이 아닌 꾸중으로 끝나게 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이 지속해서 반복된다면 이들처럼 이야기하고 싶어지지 않을 것이다. 고민을 털어놔 봤자 해결되는 일은 없고, 꾸중만 듣고, 스트레스만 쌓이다 결국 본인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실망할 일을 하면서도 무섭거나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도 자신에게 상처를 많이 줬기 때문이다.

“미안하냐고요? 아뇨, 하나도 안 미안해요. 뭐 잘 해준 거 있다고. 차라리 친구들이 걱정을 더 많이 해주지. 그것들(부모님이나 학교)은 자기들 쪽팔리거나 아니면 쌤들은 교장이 뭐라 하니까 자기 편하려고 하는 거 다 보여요. 그냥 서로 안 보는 게 편하니까 자퇴하는 거죠. 자퇴시켜주면서 ‘자퇴 기회 준 걸 다행으로 알라’고 하면 웃기지도 않아요”

어르고 달래다 끝내 내뱉는 한마디 “난 무슨 죄니?”
학교밖청소년을 상담하다 보면 이렇게 일방적인 혹은 지극히 개인적 편견에 똘똘 뭉쳐 대화가 힘든 경우가 많다. 일반적·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범위의 사고를 가진 청소년들도 있다. 우선 어르고 달랜다. 그리고 끝에 한마디 한다. “내가 뭔 죄를 지었기에 너한테 이렇게 저자세여야 되는데? 나는 무슨 죄니?” 그럼 피식 웃는다.

이렇게 되면 기본적으로 나를 적대시하지 않게 된다. 조언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선 어른이고 상담자이지만 그런 건 학교밖청소년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른이라서, 선생님이니까, 부모니까, 청소년에게 좋은 결과를 주는 일이니까, 무조건 말을 들으라고 한다면 반발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소한 이유나 감정적인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면 된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큰 문제는 같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물건을 훔쳤을 때, 아르바이트하다가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등 대처 방법을 알아보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때 스스로의 자존감이 올라가고 상담자에 대한 믿음도 커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포터가 되어줄 때 청소년들의 신뢰가 형성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필요한(학교밖청소년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이 가능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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