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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의 방정식

과거의 ‘벌’은 가혹하다 못해 엽기적이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등장하는 상상의 벌도, 우리 조상들의 육시(戮屍)와 같은 현실의 벌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늘날 문명사회에서는 가혹한 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신체에 가하는 벌은 금기시된다. 벌이 없다면 죄도 사라질까? 벌로써 죄를 씻어낼 수 있을까? 벌과 죄를 묶는 틀 안에 ‘용서’라는 변수를 넣어 보면 어떨까?

01
단테의 <신곡(神曲)>은 쉬 접해지지 않는 고전이다. 문화사적으로는 르네상스의 새벽을 열게 한 작품이다. 단테의 <신곡>을 이런 정도의 지식으로 기억하기만 해도, 그 교양은 돋보인다. 돋보이려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기에는 이런 지적 허영심으로 독서 의욕을 자극할 필요가 있다. 허영심의 또 다른 면모가 곧 ‘강력한 동기 개발’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신곡>은 책을 들자마자 몰입하여 정신없이 읽게 되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작품의 배경이며, 문화사적 맥락이며, 내용의 종교적 우의(寓意), 사건의 상징성 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 방학에 어떤 독서교육 프로그램에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단테의 <신곡>을 읽고 독서 토론하는 훈련을 해 보았다.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효과를 주려면, 이 책을 어떤 관심의 코드로 읽어야 할지 정하는 것도 중요했다. 무수히 많은 의미의 코드들이 이 작품에 잠복해 있으나, 그걸 다 건드리지 말고 좀 단순히 접근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이 작품을 통해서 ‘벌(罰)’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고전을 아이들과 더불어 읽을 때는 가급적 특정 관심거리(topic)를 설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읽어내는 지도 전략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면 무언가 난해한 것을 모두 파악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완전독서’ 내지는 ‘학문지식중심의 독서’가 주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고전 독서에 대해서 부드러운 친화감과 말랑말랑한 재미를 가질 수 있다.

단테의 <신곡>은 인간이 벌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상상력이 총집결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신곡>에 등장하는 벌은 이 세상에서의 벌이 아니고, 저 세상에서의 벌이다. 여기에 나오는 벌들은 현세에서 겪는 벌이 아닌, 현세를 초월하는 벌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벌은 신(神)의 섭리에 의한 것이므로 그 벌의 정당성에 대해서 대체로 받아들인다. 작품 중에서 죄를 지어 형벌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인물들도 벌을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후회는 있을지언정 벌에 대한 부정이나 저항은 없다. 작품을 읽는 독자의 마음도 그러하다. 그러니까 이 작품을 읽고 있는 동안, 여기서 묘사되는 벌의 비현실성을 현실적인 것으로 번역하여 읽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벌에 대한 진지한 명상이 가능해진다.

02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등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단테는 이 세상에서의 목적과 저 세상에서의 목적이 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현세에서의 행복을 위해서는 윤리적이고 지적인 미덕이 명하는 대로 살아야 하며, 이는 천국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기독교 계율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과 상통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상상력을 지옥과 연옥과 천국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펼쳐 놓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옥편(地獄篇)에서는 이 세상에서 지은 죄로 인해 각종 벌을 받는 영혼의 군상들이 얼마나 엽기적인 고통과 공포와 두려움에 처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예를 들면 제 3지옥에서는 탐욕과 분노의 죄를 지은 이들이 고통의 벌을 당한다. 눈과 비와 우박이 저주처럼 줄기차게 쏟아져, 어둡고 악취 나는 더러운 진흙의 늪에서 고통을 당한다. 머리가 셋이나 달리고 꼬리가 뱀의 형상을 한 괴물 케르베로스가 그 지옥을 벗어나려는 탐욕의 망령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씹어 삼키는 장면을 보여 준다. 탐욕이란 악마와 악취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 그럴수록 헤어날 수 없는 것, 벗어나려고 할 때는 이미 끔찍한 파멸의 죽음을 만나는 것, 탐욕과 분노의 속성이 지옥의 벌로 현신해 있는 것이다.

제 4지옥은 인색한 자와 방탕한 망령이 벌을 받는 곳이다. 수많은 무리가 세찬 물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떠내려가며 고함을 질러대고 우글거리는데, 그 험한 지옥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색했던 망령들과 방탕했던 망령들이 두 패로 나뉘어 무거운 금화 주머니를 가슴으로 굴려서 옮기는 일을 무한정 반복하며 서로 욕하고 싸운다. 인색함과 방탕함이 모두 돈의 노예로 인해서 생기는 죄임을 이 벌이 입증한다.

또 어느 지옥에서는 몸뚱이가 여러 갈래로 찢겨진 망령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서로 격렬하게 싸우는 벌을 받는다. 마호메트의 망령도 이 지옥에 와 있다.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몸이 찢어져 있고, 내장까지 갈기갈기 찢어져 덜렁거린다. 이 지옥에서는 온갖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죄를 지은 망령들이 고통받는다. 그래서 그 형벌이 모두 찢어지고 갈라지고 쪼개어진 육신을 갖도록 되어 있다. 어떤 망령은 목 없는 몸뚱이로 나타나서 무한정 걸어간다. 자신의 떨어진 머리채를 초롱불인 양 높이 들고 걸어간다. 젊은 헨리 왕에게 사악한 암시를 주어서 제 아비를 모반하게 만든 ‘벨트란드 보론이노’라는 자의 망령이다.

위조한 사람들에 대한 벌도 무섭다. 연금술사라고 속여서 금화를 위조했던 망령들은 페스트나 문둥병에 걸려 고통받도록 한다. 재판에서 위증한 사람들의 벌도 가혹하다. 격노에 가득 차서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도록 한다. <신곡>에서 보여주는 가장 깊은 지옥은 ‘배반의 죄’를 지은 망령들이 있는 곳이다. 신을 배반하고 악마 편으로 가버린 ‘타락한 천사들,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 등이 모두 이 지옥에 있다. 차가운 얼음 옷에 갇혀서 고통받으며 거인 악마 루시펠에게 무참하게 뜯어 먹힌다. 이런 벌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계속된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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