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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런 아이는 없습니다"

교실 안에 괴물이 있다. 학생의 모습으로 아이들 속에 앉아 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눈치를 본다. 아이가 언제 괴물의 본색을 드러내고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장된 이야기 같지만 과장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어떤 아이는 분명 괴물처럼 보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뭇사람을 괴롭히고 상처 입히곤 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그 아이들의 처음 또한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누구보다 소중한 한 가정의 아이였을 것이다. 해맑은 미소로 엄마와 아빠를 행복하게 했던 평범하고 귀여운 아이였을 것이다. 어떻게 된 걸까. 그 귀엽던 아이가 왜 지금과 같은 괴물로 변할 걸까.

아무도 모르게, 아이가 괴물이 되기까지
승민(가명)이 아버지는 매우 엄격한 교육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아이가 자신의 방식대로 모든 걸 해내길 원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승민이에게 숙제를 내주었고, 퇴근 후에는 검사하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술에 취해 새벽에 귀한 날에도 어김이 없었다. 승민이는 숙제 검사를 통과해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준에 맞게 숙제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성에 차지 않는 승민이의 숙제는 무자비한 폭행으로 이어졌다. 승민이는 노력했다. 아버지의 기준에 맞춰 잘 해보려고.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그러나 아이의 노력은 번번이 허사였다. 그럴싸한 거짓말도 방어막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은 아이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턱뼈가 부러졌다. 폭력 앞에서 아이는 몸을 웅크리는 거 외에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이의 몸은 자랐고, 6학년이 된 승민이의 덩치는 아주 커졌다. 승민이의 가출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다. 하지만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승민이에게는 더 심한 폭력이 가해졌고, 그 폭력을 피하기 위한 승민이의 가출 또한 더욱 잦아졌다. 그렇게 거리로 나온 승민이는 더 이상 앳된 모습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분노로 가득 찬 학교폭력의 주범, 악의 축이 되어 있었다. 집과 학교 대신 경찰서와 법원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다니던 학교에서는 강제전학이 되는 등 언론에서 보도하는 괴물 같은 청소년으로 자라 있었다.

현태(가명)가 어릴 적, 엄마는 집을 나갔다. 술에 절어 허구한 날 주먹을 휘두르는 아빠를 견디다 못해 나갔다. 그렇게 집에는 아빠와 누나, 어린 현태가 남았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버지의 폭력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래서 현태도 집을 나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출을 했고, 자연스레 비행청소년 형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때 소년원에 가게 됐다. 남의 집 옥상에서 자다가 너무 추운 나머지 빨랫줄에 걸려 있는 옷을 태워 불을 쬐었고, 현태는 방화범이 되었다. 어린 현태는 그게 그리도 큰 죄라고 생각지 않았다. 아이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재판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 현태의 재판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현태는 자신이 재판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그래서 재판정에서조차 평소대로 막말을 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모습을 본 법원은 현태의 행동을 정신적인 문제로 인한 방화로 판단했고, 현태는 결국 치료감호 소년원에 최연소 위탁생으로 보내졌다.

소년원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아는 동네 형들이 이미 들어와 있었고, 형들로부터 보호도 받았다. 하지만 현태의 마음속에는 억울함이 차올랐다. ‘엄마는 왜 나를 버리고 도망갔는가?’, ‘아빠는 왜 술을 먹고 누나와 자신을 그리도 때렸는가?’ 현태는 분노로 똘똘 뭉친 아이가 되어 소년원을 나왔다. 눈에 거슬리면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싸웠다. 억울함이 느껴지는 상황에선 더욱더 잔인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또 한 명의 아이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 괴물이 되어갔다.

부모에게 학대받았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괴물이 되는 건 아니다. 모든 비행청소년과 위기의 아이들이 직접적인 폭력으로 인해 괴물이 된 것 역시 아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괴물인 아이는 없다. 단 한 명도 원래 ‘그런’ 아이는 없다. 괴물이 된 아이들의 삶 속에는 아이를 괴물로 만든 환경이 자리해 있고, 아이는 다만 처해질 뿐 스스로 선택하고 바꾸어갈 만한 힘을 지니지 못했다. 그 힘이 어른인 우리에게 있다. 괴물의 죄를 묻고, 그리된 아이를 탓하며, 괴물이라 낙인찍고 묶어두는 대신 괴물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묻고, 상처를 다독이며, 아이가 잃어버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우리가 도울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의 시작, 어떻게 이 아이들을 바라볼 것인가
● 나쁜 아이 VS 아픈 아이
이 아이들을 나쁜 아이로 바라본다면 버릇을 고치려 하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격리 혹은 추방(?) 조치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아프고 상처받은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치료와 회복의 방법을 찾을 것이다. 아픔과 상처 속에서 몸부림치며, 그 표현을 비행으로 하는 거라고 여기며 아이를 보듬어 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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