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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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부장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늦은 밤에 전화 드려서 쉬고 계시는데 방해가 안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00년 11월 초 늦은 밤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같이 근무한 적은 없지만 과학관련 단체의 활동 등을 하며 평소 잘 알고 있던 인근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다.

 

"내년에 학교 옮기시지요? 지금 있는 학교에 그대로 초빙으로 남으시려고 하는지요? 우리 학교에 오셔서 같이 좋은 학교를 만들어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이미 그 학교의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답변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소규모 학교에 학생 생활지도나 학습지도가 다소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선생님들이 그다지 선호하는 학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뒤 교장 선생님과의 몇차례 만남을 인연으로 나는 그 학교의 2학년 부장과 담임으로 근무하게 됐다. 교장 선생님은 기존의 학생부를 폐지하고 학년 중심 체제로 전환해 학교폭력, 인성, 학습지도 등을 담당하게 했다. 학기 초부터 일부의 학생들은 나에게 많은 할 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철호(가명)야, 자세 좀 바로 앉아서 있어야지." 자세를 교정해주려고 등을 받쳐줬다. 그러자 철호는 "샘, 저를 치신거네요"라며 무척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가만히 놓아 두었으면 하는 반응을 보였다.


"정우(가명)야, 수업 중에 어디 가니?"물었더니 "화장실 갈려고요. 그럼, 그냥 옷에다 묻힐까요?"라고 막무가내 나가서는 수업 끝나기 직전에 들어오기도 했다.

 

"소희(가명)야, 영어시간(수준별 이동)에 왜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니?"라고 했더니 "수업이 싫어서요"라며 무표정한 얼굴이다.

 

"가현(가명)아, 어제는 청소 당번인데 무슨 일 때문에 청소 안하고 갔니?"라고 묻자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요. PC방에 가기로 했어요"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지연(가명)아, 입술 화장 좀 하지 말고 치마 좀 너무 짧게 입지 않고 다녀"라고 주의를 주자 매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3월에 만난 일부 학생들의 기본 생활은 중학교 2학년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것을 잘 모르고 행동하는 경향이 많아 보였다. 정말로 할 일이 많아 보였다. 이런 와중에 학생들의 사소한 싸움과 아이들 싸움에 끼어든 학부모들의 의견 대립까지 정말 대처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정말로 내가 학교를 잘못 온 걸까, 다른 선호 학교도 많이 있는데 그리로 갈걸 그랬나?’수많은 생각으로 혼란에 빠지게 됐다. 주로 행정부서의 부장만 맡아 오다 몇 년 만에 담임을 맡아서 내가 부족한 것일까? 아님 여태까지 걸어온 교직 생활 중 학생지도가 잘못 것일까? 등 생각이 많았다.

정말로 3~5월은 꿈에서도 학생들의 문제 행동이 나타나 자다가 깰 정도였다. 일부 선생님들은 낮선 이방인으로 온 사람으로 여기거나 전입하자마자 중책 아닌 중책을 맡은 것에 대한 걱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내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조금씩 다가가자라고 마음을 굳게 먹고 학생들과 공감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잠만 자고 있던 동우(가명)에게 우연한 기회에 팔씨름을 하자고 했다. 나를 만만히 보았는지 비웃으며 흔쾌히 제안을 받아줬다.

 

덩치는 나보다 컸고 친구들 사이에서 힘 좀 쓴다고 하는 학생이었다. 주변 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동우를 일방적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나의 3:0 승리로 끝났다. 예상 외의 결과에 아이들은 놀란 눈치였다. 나를 만만히 보지 않는 시선까지 느껴졌다. 약간 당황해하는 동우에게 "동우야, 이 기회에 우리 팀을 나누어 축구게임 해볼까?" 또 다른 제안을 했다. 그러자 동우는 운동은 자신 있다며 자기가 팀을 구성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Blue Team(몸집이 작은 학생으로 구성)과 Red Team으로 나눠 방과 후에 축구게임을 했다. 첫 게임에서는 서로 기선을 잡고자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Red Team은 무참히 5:0으로 패배를 당하게 됐다. 하늘이 도왔는지 내 옛날 축구 실력이 발휘돼 2골을 먼저 넣게 돼 학생들 모두가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몸을 부딪치며 한바탕 뛰고 나니 그렇게 거칠어 보이고 멀게만 느껴졌던 아이들과의 거리도 가까워진 듯했다. 땀방울을 흘리는 얼굴에서는 수업시간에 볼 수 없었던 순수함마저 볼 수 있었다. 게임이 끝난 후 피자와 음료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교과 시간에 보였던 지치고 반항적인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이 밝고 명랑한 모습이었다.

 

"애들아, 오늘 너희들 표정이 밝으니까 선생님 마음이 매우 좋다"고 말하자 한 학생이 "선생님, 우리 앞으로도 계속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때를 이용해 나는 아이들에게 조건을 걸었다.

 

"내 나이 50이 넘어 너희들과 운동하는데 선생님 소원 하나 들어 줄 수 있냐?"라고 물었다. 소원으로 내건 건 바로 지각, 무단 결과,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학교생활 잘하기 개인 서약서를 작성하고 아침 일찍 따뜻한 등굣길 맞이 행사에 참여하면 나도 함께하겠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모두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우리는 Blue Team과 Red Team으로 나눠 많은 활동을 했다. 그것이 학교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여학생팀도 구성해 농구와 피구 등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로 삼았다. 각반 담임들까지 동참해 반별 학교폭력예방 활동이 원활이 진행됐다.

 

이같은 활동이 관내 경찰서에 알려져 우수한 사례라고 경찰 서장이 직접 방문해 학생들을 격려한 일도 있었다. 일정량의 음식과 음료, 축구공 등을 선물하며 같이 방문한 경찰관들과 축구 게임도 하고 음식도 나눠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학생들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친밀감이 생기면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는 뛰어와서 도와주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훈계를 해도 예전과는 다르게 친근한 반응이 돌아왔다. 지난해 2학년부에서 11월까지 단 한건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렸을 뿐 징계도 없었다. 학교 차원에서는 큰 변화였고 정말 고무적인 일이었다.

 

몸으로 같이 뛰면서 학생들에게 다가갔더니 이제는 학생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학생지도는 머리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아직 방심은 금물이다.

 

텅빈 5층. 2학년부실에서 늦게까지 남아 미처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보노라니 멀리 보이는 도봉산의 붉은 단풍들이 오늘따라 아름답다. 내일도 우리 학생들이 건강하고 알찬 학교생활을 하기를 기도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감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도의 정신으로 묵묵히 헌신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실 것이다. 단풍보다 붉은 그 열정에 마음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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