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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어머니의 집밥 같은 책

한 권으로 즐기는 지식 여행서

배우는 사람을 위한 지식 가게

 

다산 정약용은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지혜와 근면과 고요함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혜롭지 못하면 굳센 것을 뚫지 못하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을 쌓을 수 없으며, 고요하지 않으면 정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배우는 사람을 위한 지식 가게다.

 

이 책의 저자 채사장은 "정보가 폐품처럼 쌓여가는 시대다.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이 사람의 행동을 제약할 정도다. 그래서 가게를 열었다. 널려 있는 정보들 중에서 반드시 알아야 알 가장 가치 있는 지식만을 선별해서 쉽고 단순하게 손질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진열했다 "고 지식 가게를 연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오래 전 인류의 수명에 비해 몇 배나 더 오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간적으로는 같은 장소에 살고 있지만 시간적으로는 집약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정보를 얻는 방법은 극히 피상적이거나 단편적인 지식을 얻고 살면서 내가 얻은 지식이 인스턴트 음식처럼 영양가는 적고 비만과 질병에 이르게 하는 건 아닌지 두려울 때가 많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마치 어머니가 해주시던 집밥을 먹는 느낌 같은! 그러면서도 귀한 손님으로 초대돼 품격 있는 정통 요리를 대접 받는 듯한 친절함과 세심함을 담은 지식 가게 주인의 정성에 놀라게 된다.

 

어렵고 딱딱한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갈무리하고 간단한 그림으로 친절하게 짚어주며 인문학의 초보자를 배려해 준다. 작가의 접시 위에 오색으로 깔끔하게 진열된 지식이라는 음식을 먹으려면 상당한 예의가 필요한 책이다. 최고의 손님은 맛깔스럽게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하나도 남김없이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잘 먹고 정중한 감사를 잊지 않아야 품격 있는 손님이 될 수 있다.

 

 소통을 위한 오색 반찬 가게(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이 지식 가게에 찾아온 필자는 강의실을 찾은 학생처럼 적을 준비를 하고, 내 생각을 군데군데 적어 놓으며 작가와 무언의 대화를 준비했다. 이 책은 세상에 널려 있는 인문학 책 속에서 품격을 드러낸 책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바쳐서 일구어낸 작가의 노고를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마구 읽어 나갈 수 없는 책의 품격에 감동했고 감사했다.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라는 인문학의 기둥은 인체의 뼈대처럼 삶의 영양소이면서도 재미있게 읽기 어려운 주제였다.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매우 진지하게, 몰입해서 읽지 않으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어야 할 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세상의 때가 많이 낀 내 두뇌의 한계와 지식의 넓이에 실망하면서도 다시 채우는 기쁨이 컸다. 아니, 시간의 더께만큼 이해하기 쉬워진 것에 놀라기도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 순간들이 행복했다.

 

근대를 끝내고 현대 포스트모던의 탄생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준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다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려 한다면, 질문하라."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인간은 평생 진리를 탐구하는 존재다. 필자 역시 젊은 시절에는 절대적 진리관에 따라 종교를 향한 믿음으로 내 인생에 대한 불확실성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편으로 삼았다. 초월적인 존재,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확신하고 살던 시간들은 행복했다. 나의 이성보다는 우월한 존재에게 나의 모든 것을 의탁하며 보낸 시간들이 참으로 길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위한 손길을 예비해 두고 있다는 믿음은 나를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젊은 날의 나는 진리에 대한 절대주의에 안주하고 신에 의지해 편안했다.

 

지금은 상대주의를 지나 회의주의에 가까워서 니체를 존경하고 그의 책들을 곁에 두고 사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삶의 주인은 오직 '나'라는 자각으로 생각하는 삶,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을 고민하며 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의탁하거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삶의 자세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 책에 최고의 오색 반찬으로 등장하는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는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라는 멋진 접시에 따로따로 담긴 것 같지만 결국은 한 테이블에 올라온 '인간의 삶'에 관한 화두다. 다루는 방법과 접근하는 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주제들이 촘촘히 얽혀 있다. 겨울방학을 닫고 교실에 들어갈 심호흡에 도움이 되어준 책이다.

 

<채사장 지음/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16,000원/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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