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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며칠 전 처음으로 제자의 주례를 집전했다. 주례를 서기에 필자는 아직 나이도 젊고, 사회적 지위는 물론 부와 명예 또한 없는 그저 평범한 교사인지라 여러 차례 고사했지만 제자의 간곡한 부탁에 승낙하고 말았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주례란 것이 신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집전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신랑을 필자만큼 잘 아는 사람은 아마 신랑의 부모님과 신랑의 죽마고우들을 빼곤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그나마 위안이 됐다. 더구나 이번에 결혼하는 제자는 필자가 고등학교에서 3년 간 담임을 하면서 아꼈던 학생으로 인품이나 성격 등 그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건실한 학생이었다. 두뇌가 명석해 공부를 잘했고, 감성이 풍부해 글도 아주 잘 썼던 학생이라 전국 말하기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성격도 다정다감해 주변엔 늘 친구들이 많았다. 이렇게 훌륭한 제자의 주례를 선다는 것이 한편으론 자랑스러웠다.

 

사람이 살면서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가문을 이어간다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고, 나아가 국가를 존립하게 하는 막중대사인데, 그 첫 출발이 바로 결혼이며 그 결혼식을 집전하는 사람이 바로 주례인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갑자기 부담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필자가 과연 성스러운 주례를 설 만큼 모범적으로 결혼생활을 영위했는가? 그동안 제자에게 자랑스러울 만큼 성실하게 살아왔는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며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하지만 매양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우선 준비해야할 것이 주례사였다. 먼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러 주례사들을 읽어보았지만 천편일률적이고 따분한 내용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내 생각대로 내 방식대로 주례사를 직접 작성해 연습해 보았다. 가족들 앞에서 읽어주니 너무 긴 것 같다며 줄이라고 했다. 다시 몇 날 며칠을 숙고해서 마침내 3분 정도의 분량으로 줄여 다시 읽어주니 그제야 마음에 든단다.

 

다음으로 남들은 어떻게 주례를 집전하는지 직접 보고 배웠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토요일 오후, 근처 예식장을 찾아 주례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요즘은 주례 없는 결혼식을 꽤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찾은 예식장에도 주례 없이 신랑 신부 아버지가 나와 각자의 자녀들에게 편지를 낭독하는 것으로 주례사를 대신하는 집이 있었다. 이 방법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필자가 참고한 결혼식은 기독교식이라 예배와 주례사가 연이어 있어 시간도 너무 많이 걸리고 지루했다. 주례사가 길어지자 하객들도 여기저기에서 딴짓을 하거나 잡담으로 일관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마음속으로 주례사를 짧게 줄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례사를 미리 보고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 30분 일찍 식장에 도착해 신랑 신부와 양가 혼주들을 만나 뵙고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다. 신랑 아버님은 필자에게 너무 수고를 끼쳤다며 미안해했다. 필자는 신랑 측에 정성스럽게 마련한 축의금을 전달하고 신랑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해줬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하객과 주례 선생님께서는 식장에 입장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한 다음 주례석에 앉았다. 이윽고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주례선생님께서는 등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객 여러분께서는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례 순서는 식장 측에서 미리 제공해준 계획서대로 진행하면 되기 때문에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신랑 입장, 신부 입장, 혼인서약, 성혼선언문 낭독, 주례사, 신부 댁 부모님께 인사, 신랑 댁 부모님께 인사, 내빈께 인사, 신랑 친구들의 축가, 신랑 신부 퇴장 순이었다. 시간은 약 30분 정도 소요됐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례의 주례사로 필자는 하객들에 대한 인사와 신랑 신부에 대한 진심어린 축하. 그리고 평소 좋아하는 춘향전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냈다.

 

“이몽룡은 춘향과 결혼한 후에 이조판서, 호조판서,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 다 지내고, 퇴임한 후에는 정렬부인과 더불어 백 년 동락할 새, 슬하에 삼남삼녀를 두었으니, 모두가 총명하여 그 부친을 압도하고 일품 관직이 대대로 이어져 만세토록 유전하더라. 춘향전의 이 구절처럼 여기 신랑 신부 또한 승승장구하시고, 아들딸 낳아 건강하게 키우시고, 가족 모두 행복하게 만수무강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며, 이만 주례사를 맺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례사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큰 실수 없이 무사히 주례사를 마무리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식이 끝난 후, 결혼식에 참석했던 제자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힘들고 긴장된 하루였지만 신랑 신부의 행복한 출발에 스승으로서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됐다는 생각에 마음은 구름처럼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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