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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국외 독립운동유적지 답사기

보훈교육연구원 주최로 국외독립운동유적지 답사를 다녀왔다. 인천공항을 떠나 도착한 곳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공항이다. 우스리스크 최재형 선생의 옛집과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遺墟碑)를 참배한 후 1935년에서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전까지 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했던 고려사범대학건물을 보았다. 


우스리스크에는 옛 주택들이 많이 남아있었고 농사짓기 좋은 땅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러시아의 우호적인 태도와 이상설 선생의 외교력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정착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됐다고 한다.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어와 연해주 한인사회의 중심지였던 신한촌과 극동대 한국어과 등을 둘러보았다. 중국과의 국경지대인 크라스키노에서는 항일투쟁을 위해 단지동맹을 결행한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12인을 추모하는 단지 동맹비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겨눈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러시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갔을 때는 두만강이 보였다.  강 너머로 보이는 마을이 북한이었다. 강폭이 좁은 만큼 마음도 아팠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우리나라라니…

지금 이 순간에도 배가 고파 죽음을 각오하고 저 강을 넘고자 마음을 먹는 북한 주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을 따라 이동해 용정에 도착해서 김약연 등 4개 가문이 이주해 형성한 정착촌인 명동촌, 한인사회의 지도자로 평생을 교육에 힘쓰신 김약연 선생의 뜻이 담겨있는 명동학교,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용정중학교 등을 둘러보았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도 한인촌이 많았던 곳이지만 1937년 강제이주 되면서 한인들이 살지 못해서인지 그 흔적만 있고 숨결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었던 반면 중국 만주지역은 지금도 한인들이 살고 있어서 옛 독립운동의 흔적에서 그들의 숨결까지도 전해지는 듯했다. 

이번 탐방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 가던 중 청산리 전투가 있었던 지역으로 향했다. 청산리 전투는 북로군정서 군을 이끈 김좌진과 홍범도 부대가 함께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대첩이다. 청산리 대첩 기념비는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볼 수 있었는데, 전투에서 희생된 독립군들을 생각하며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생각하면서 올라갔다. 

높은 산들이 주변에 많았는데, 이런 지형을 잘 알고 있던 대승을 거둔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이  자랑스러웠다. 드디어 한민족의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됐고, 단군이 탄생했다는 백두산으로 향했다. 백두산에 도착하니 중국식 명칭인 장백산으로 입구팻말, 기념품, 셔틀티켓, 기념엽서 등이 만들어져 있어 아쉬웠다.

눈앞에 펼쳐진 백두산 천지와 폭포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 장관이 내 마음에 짧은 시간 동안 들어오기에는 벅찼고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다음에 올 때는 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이라는 팻말을 지나 백두산 천지행 티켓을 사서 바위 위에 앉아 천천히 절경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음 탐방지는 만주에서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이 벌인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고 큰 승리를 한 봉오동전투 승전지였다. 네 시간을 이동해 하얼빈에 도착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가 100여 년 전 의거를 일으킨 역사적 장소다. 

하얼빈은 지금까지의 중국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벤츠, 아우디 등 고급 승용차가 다니고, 고층 빌딩에 명품관, 백화점 등이 즐비했다. 하얼빈은 작은 어촌에 불과했으나 1903년 중동철도가 개통되면서 러시아인과 중국인이 급증하고 거대도시로 성장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만주 지배의 거점이자 동양의 모스크바로 건설된 계획도시였다. 또한 20세기 전반 러시아뿐 아니라 영국, 미국,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전이 펼쳐져 동양의 파리로 불렸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하얼빈의 건물은 러시아의 건물과 아주 닮아있었다. 웅장하면서도 장식이 화려했다. 안중근 의사 친필 유묵비인 ‘청초당’ 앞에서 동양평화를 지키고 민족 독립을 위해 싸운 그분의 업적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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