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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이 주는 명성이나 비판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나는 내 마음에 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필수의 수단으로 작곡했을 뿐이다.”


이 글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 그의 제자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에게 남긴 어록의 한 구절이다. 주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던 사람,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표현하고자 한 그는 9곡의 교향곡과 다수의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우리 인류에게 귀한 음악적 유산을 남겨준 공으로 악성(樂聖)으로 불리며 지금도 우리의 곁에 있다.


경계심 불러 일으키는 외모 소유자, 베토벤
이 위대한 음악가는 어떤 외모의 소유자였을까? 베토벤 생애의 기록자인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 1795~1864)는 ‘베토벤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외모를 가졌다’고 표현했다.


베토벤의 키는 기껏해야 160cm 정도였다. 체격은 땅딸막하고 굵은 골격에 튼튼했으며, 머리는 이상할 정도로 컸고 길고 단정하지 못한 회색 머리칼로 뒤덮여 있어서 어딘가 야만인 같은 인상을 주었다. 머리칼이 너무 길게 자라면 그런 인상이 더 심해지는데, 자주 그런 모습이었다. 이마는 높고 넓었으며, 작은 갈색 눈은 웃으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눈은 어느 순간 갑자기 아주 이상하게 커지고 부릅뜬 모습으로 되어 눈알을 굴리다가 번쩍거리며 빛을 발하기도 한다. 눈동자는 거의 언제나 위로 치켜뜨고 있거나 전혀 움직이지 않으며, 어떤 구상이나 생각에 사로잡힐 때는 앞쪽 한곳을 골똘하게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그의 외모는 갑자기 눈에 띌 정도로 변하며, 영감에 고취되어 위압적인 표정이 되기 때문에 작은 신체가 그의 정신만큼 거대하게 우리 앞에 군림하게 된다. 그의 입은 모양이 좋았으며, 입술은 아주 반듯하지는 않고 아랫입술이 조금 튀어나왔다. 코는 넓은 편이다. 미소를 지으면 정말로 온화하고 사랑에 가득 찬 분위기가 온 얼굴에 퍼지는데, 낯선 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 이 미소는 그들을 격려하는 특별한 선물이 된다.


음악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교향곡 5번, <운명>

보통 음악 애호가들에게 가장 유명한 교향곡 다섯 곡을 들어보라고 하면 그 대답 가운데 베토벤이 쓴 네 곡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바로 교향곡 제3번 <영웅>, 교향곡 제5번 <운명>, 교향곡 제6번 <전원>, 교향곡 제9번 <합창>이다. 이중 그래도 사람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1808년에 완성된 교향곡 제5번일 것이다. 베토벤은 5번 교향곡을 1804년부터 작곡하기 시작했다. 스케치는 이미 1803년에 하고 있었고, 1805년에도 계속 작곡을 하고 있었지만, 당시 베토벤은 요제피네 폰 다임 백작 미망인과 사랑이 강렬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교향곡과 같은 격렬한 투쟁과 승리를 노래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아서 좀 더 부드러운 작품에 이끌리게 되고 교향곡의 작곡을 중단하게 된다.
연애 곡선이 내리막을 그리게 되면서 점차 격정적인 음악으로 다시 방향을 선회한 베토벤은 1807년 영웅의 투쟁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동시에 그린 <코리올란> 서곡을 내놓는다. 이 두 요소는 이후 베토벤의 음악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같은 사정으로 교향곡 제5번은 1807년에야 다시 작곡이 재개되기 시작하며, 1808년에 완성된다. 시기가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을 빼앗은 ‘틸지트 조약’의 수립과 맞물려 있어서 당시 독어권 지역에서 강성했던 게르만 민족주의의 영향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곡을 공동으로 헌정 받은 로브코비츠 공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은 베토벤의 중요한 귀족 후원자들이었는데 이들이 반프랑스파였던 것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제5번 교향곡이 <운명> 교향곡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은 곡 처음에 나오는 네 음의 동기를 가리켜 베토벤이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고 했다는 제자 쉰들러의 말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첫 동기를 ‘운명의 동기’로 부르게 된다. ‘따따따딴?, 침묵, 따따따딴?’ 이것은 엄밀하게 곡조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간결한 아이디어에서 첫 악장의 놀랄만한 분량이 도출되며, 그 주제는 나중에 3악장 스케르초와 피날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모든 악장에 모습을 바꾸며 나타나는 ‘운명의 동기’
<운명> 교향곡은 긴밀한 긴장을 보여주며 조그마한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운명의 동기’는 모든 악장에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며 전체를 통일한다. 그러나 이 ‘운명의 동기’는 베토벤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그 이전의 여러 작곡가의 작품에서 운명적인 것을 나타내는 부분에서 자주 사용된 바 있었다. 수난곡·오라토리오·오페라에서 그런 경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베토벤 이후, 슈베르트의 가곡·바그너나 베르디의 오페라·브람스의 가곡·그 외의 다른 음악에서 이와 유사한 동기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동기를 <운명> 교향곡만큼 잘 활용하고 있는 작품은 없다. 가슴 울렁거리는 흥분과 모험을 느끼게 해주는 음악을 꼽으라면 교향곡 제5번이 단연 최고이다.
2차 대전 이후 만하임악파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이 악파와 베토벤과의 연관성이 크게 주목되었다. 특히 만하임악파의 대표자 요한 슈타미츠(Johann Wenzel Anton Stamitz, 1717~1757)의 작품4의 제3곡 C단조의 3중주곡과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과의 유사성으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여기에 ‘운명의 동기’가 있으며, 베토벤의 스케르초에서 보이는 진행이 단편적으로 슈타미츠의 작품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을 연상시키는 <운명> 교향곡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에서 우리는 C단조라는 조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 조성은 베토벤이 특히 선호하던 것으로, C단조로 된 그의 작품은 <운명>이나 <비창>과 연관된 성격을 지니며 그 밖에도 열정적·정력적·투쟁적인 것을 나타낸다. 이 교향곡의 경우에는 빈의 부패한 사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감정과 자신과 사회와의 투쟁에 대한 의지가 불타고 있다. 비극적 외모로 시작하는 이 곡은 이제까지 구성된 작품 가운데 가장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작품이다. 베토벤이 단조 조성을 처음 사용한 교향곡이기도 한데, 교향곡 제3번 <영웅>만큼은 아니지만 여기서도 고전 교향곡의 틀을 상당히 많이 깨뜨렸고 ‘간단한 재료로 최고의 효과를 노린다’는 원칙을 거의 완벽히 발휘시켜 본격적인 낭만주의 교향곡의 시작을 알렸다고 평하는 이들도 많다.
초연 당시 이 교향곡에 대한 비평은 교향곡 제3번과 마찬가지로 ‘너무 길고 복잡한 곡’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굉장한 남성적인 이미지와 군사적인 승리감 등이 반영된 탓에 대중적으로는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 반프랑스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은 오히려 프랑스 청중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아마 강한 승리감을 안겨주는 4악장 때문에 프랑스의 승승장구를 연상한 청중들도 있었던 모양인데, 파리에서 처음 공연되었을 때 한 혁명 노병이 4악장 시작 부분에서 “이건 황제다! 황제 만세!”라고 외쳤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에도 이 곡은 전쟁과 관련되어 자주 인용되거나 연주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연합국인 미국과 영국에서도 적국의 작곡가가 작곡한 이 곡을 애용했다. 연합국은 곡을 시작하는 첫 네 음의 리듬이 모스 부호로 V 즉, Victory의 첫 글자를 나타낸다고 해서 승리의 기원 표시로 여겼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유럽전 승리의 날이었던 V-E데이에 열린 축하음악회에서는 이 곡이, 태평양전 승리의 날이었던 V-J데이 음악회에서는 교향곡 제3번이 메인 프로그램으로 연주되었다.
녹음 역사에서도 꽤 중요한 이정표를 남겼는데, 교향곡으로서는 처음으로 전곡이 제대로 녹음되었다는 기록이다. 1913년 11월에 아르투르 니키슈 지휘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영국 그라모폰(현 EMI)에 녹음한 음반으로, 지금도 EMI와 도이체 그라모폰 등의 CD 복각판으로 들어볼 수 있는데 폭우 속에서 녹음한 듯 심한 잡음과 빈약한 소리 때문에 감상용으로는 추천할만하지 못하다.
프랑스의 작가 발자크는 교향곡 제5번 <운명>을 들은 뒤 선언했다. “베토벤은 내게 질투심을 불러일으킨 유일한 인물이다. 이 남자에게는 신과 같은 힘이 있다! 우리 작가들이 써온 것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지만, 베토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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