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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그렇게 풀 수밖에 없었나, '여교사'

새해 벽두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다. 1월 4일 개봉한 ‘여교사’(감독 김태용)다. ‘여교사’는 한국일보에 따르면 “제목만으로 ‘문제작’이란 소리를 들었다. 노골적으로 성을 앞세운 마케팅이 눈총을 받았고, 여성혐오 정서를 자극하며 성차별적 시각을 부추긴다는 오해도 샀다. ‘여교사’는 그렇게 개봉 전부터 이슈 메이커가 됐다.”(2017.1.18.)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주인공 박효주 역 김하늘이 “제목만 보고 영화가 야하게 보여지는 게 정말 싫었다”(앞의 한국일보)고 말했을까. 효주는 서울의 어느 사립남자고등학교 기간제 교사이다. 아다시피 기간제 교사는 비정규직이다. 지난 해 기준 전국에서 4만 1000여 명의 기간제 교사가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교사의 10분의 1 수준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하필 전체 교사의 10분의 1 수준인 기간제 여교사였기에 기대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약속’이라든가 ‘카트’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려낸 사회성 영화로서의 기대감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일정 부분은 기간제 교사의 고단한 현실이 그려져 뭔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긴 한다.

가령 교감의 “정교사 되기 전까진 결혼 생각 접어요. 그건 철없는 생각”이라거나 어느 학생으로부터 듣는 “정식 선생도 아닌게” 등이 그렇다. 기간제 교사의 고단한 현실은 낙하산식으로 부임한 추혜영(유인영)의 정교사 발령에서 절정을 이룬다. 혜영은 다름 아닌 이사장 딸이고, 효주는 그 자리 0순위 후보였다는 점에서다.

당연히 효주는 분노하고 뒤틀린다. 혜영이 제자 재하(이원근)와 섹스하는 걸 보고난 후 효주는 더욱 기세등등해진다. 효주는 임시 담임을 빌미로 재하를 챙긴다. 콩쿠르 입상까지 하게 하고, 섹스를 나누는 등 혜영에 대한 복수가 펼쳐진다. 그런데 그것은 정교사 혜영의 계략이다. 재하는 혜영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렇게만 전개됐어도 사회성 영화로서의 기대감은 나름 충족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효주가 재하를 제자 아닌 일개 남자로 사랑하게된 것이다. 관객은 갑자기 뒤죽박죽 혼란에 빠지고 만다. 학생들이 창문을 통해 쳐다보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혜영에게 무릎까지 꿇고 비는 효주와 겹쳐져서다.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은 결국 효주가 혜영을 죽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도대체 무얼 말하고자 하는 영화인지 알 수가 없다. ‘베테랑’⋅‘부당거래’ 등을 제작한 영화사 외유내강의 작품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이다. 손익분기점이 고작 50만 명에 불과한데도 겨우 11만 명 남짓 동원한 관객 수 역시 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것이 사랑만 아니라면 그런대로 건질만한 것도 있다. 정교사 혜영의 패악질이다. 약혼자까지 있는 혜영이 재하와 놀아난 건 “핏덩일 어떻게 사랑해. 잘 때나 좋은거지” 때문이다. 사실은 이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혜영이 무슨 50대 돈 많은 유한마담 아줌마도 아니고 약혼자가 있는 아직 처녀라서다.

그러니까 엔조이로 재하를 갖고 논 건데, 효주는 이 말에 열받아 혜영을 죽여버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재하를 살해현장인 혜영 집으로 불러 확인까지 하고 있다. 혜영이 죽을 짓을 한 건 맞지만, 그러나 이건 좀 아니지 싶다. 어쨌든 효주는 10년 넘게 사귄 동거남 표상우(이희준)가 말한 “저렇게 어린애랑? 미친 년” 그대로다.

기간제 교사로서 겪는 모든 현실적 굴욕은 어디로 보내고, 효주를 치정에 눈먼 살인자로 내몰려고 외유내강 제작사는 이 영화를 만든 것일까. 설마 살인자 효주를 통해 기간제 교사의 고단한 현실을 고발하려 한 것일까. 상상조차 안 되는 스토리에 그렇게 풀 수밖에 없었나 하는 당연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의문이 더 있다. 10대 고교생을 너무 어른화시킨 점이다. 가령 효주에게 고마워하는 아버지에게 “걱정마. 받기만 하는 건 아냐”라고 말하는 재하가 과연 고3 남학생인지. 재하의 적극적⋅능동적 섹스 신은 그야말로 가관이라 할만하다. 처음 혜영과의 섹스 신도 그렇지만, 효주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효주가 리드해야 더 리얼리티가 살지 않나.

백번 양보해 제자에게 사랑에 빠진 캐릭터를 이해한다고 해도 의문이 남는다. 사랑에 빠져드는 효주가 화학교육과 출신이어서다. 글쎄 나만의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 이과(理科) 출신의 사고(思考)는 효주처럼 어린 제자를 사랑할 수 있는 등 결코 형이상학적이지 않다. 영화의 흥행실패에 안도하긴 영화평론집 10권을 내는 동안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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