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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미운 우리 새끼, 미운 우리 엄마아빠

이원우의 컬처쇼크


2016년 SBS 연예대상은 신동엽에게 돌아갔다. 그는 SBS에서 데뷔해 최고의 스타가 됐지만 SBS에서 대상을 받는 건 2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그에게 대상의 영예를 안기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지난여름부터 방송된 ‘미운 우리 새끼’다. 단연 2016년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미운 우리 새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김건모, 박수홍, 토니안, 허지웅과 같은 (노)총각 아들들의 일상생활을 카메라가 따라다닌다. 그 아들들의 나이는 생후 000개월과 같은 식으로 표현된다. 다시 말해 그들을 낳은 어머니의 시선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어머니들은 스튜디오에서 신동엽, 서장훈, 한혜진 등의 진행자들과 함께 아들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방송이라 과장된 부분도 없지는 않겠지만 때때로 상상도 하지 못한 비밀들이 드러나 어머니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예를 들어 가수 김건모는 소주병 약 300개를 집안에 모으는 모습이 드러나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그의 어머니조차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겠지만 김건모의 어머니는 “전부 다 건모가 마신 술은 아닐 것”이라며 아들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신은 ‘생후 몇 개월’이십니까

스튜디오에는 어머니들만 등장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엄마가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만 조명된다. 아무래도 자식보다는 부모(엄마)의 심리가 우선시 되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제목도 ‘미운 우리 새끼’인 거겠지만.

이 프로그램이 연예대상으로까지 연결된 정황은 전혀 놀랍지 않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 방영 이후 필자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이 커졌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커졌다기보다 디테일해졌다고 해야 하나.

생전 궁금해 한 적이 없으시던 ‘혼자 있을 때 뭐 하냐’, ‘친구들이랑 만나면 무슨 얘기 하냐’ 같은 주제로 질문을 던지시곤 했다. 그녀에겐 나 역시도 생후 406개월짜리 아들일 뿐일 터다. TV가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여전히 크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들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경악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재미라면, 시청자들이 ‘우리 아들의 경우는 어떨까’를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이 프로그램의 두 번째 묘미다. 2040 나이대의 ‘싱글남’만큼 ‘엄마’에게 연연하면서도 그들과 거리가 먼 존재는 아마 없을 것 같다.

친구들끼리는 이미 ‘상식’인 이야기들 - 어떤 연애를 해왔고 결혼에 대한 가치관은 어떠한지 등 - 을 엄마에겐 한 번도 얘기해본 적이 없다. 아들에게 엄마는 너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편하고 좋은 대화상대’이기는 힘들다.

회피의 세월이 5년, 10년 쌓이다 보면 어느새 소년(少年) 시절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진 내 모습을 고백하기란 더 어려워진다. 말마따나 몰래카메라라도 달아놓고 알아서 깨달아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 나도 짐짓 모르는 척 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전부 쏟아낼 텐데.

‘미운 우리 새끼’ 출연자 중 하나인 개그맨 박수홍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결혼불가론’을 주장하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은 상당한 울림이 있었다. 40대 중반의 아들이 현재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내용의, 어머니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고선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방송’이라는 매개로 마음껏 토해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상을 지켜본 박수홍의 모친은 “우리 아들이 내 마음을 이렇게 모른다”고 코멘트 했지만, 사실 그녀야말로 아들의 마음을 몰랐던 게 아닐까? 결혼은 아들이 하는 거지 엄마가 하는 게 아닌데 왜 아들이 결혼에 대한 철학을 수립함에 있어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단 말인가. 바로 이런 부분들이 우리 시대 아들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지점인 것이다. 

필요한 것은 ‘자식혁명’인지도

90세 아버지가 외출하는 70세 아들에게 “길 조심, 차 조심 하라”며 신신당부를 하는, 그런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부모들만 자식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자식 된 입장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누구보다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춤을 추는 걸그룹·보이그룹 멤버들에게 ‘소원’을 물어보면 하나같이 ‘엄마아빠’ 얘기를 한다. 부모님에게 ‘남부럽지 않은’ 삶을 선물해 주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그 수많은 고생에도 불구하고 성공하고 싶은 이유인 것이다.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배고픔을 모르는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 풍요의 비밀이 부모들의 고생에 있었음을 잘 알고 있을 만큼 양심적이다. 그 결과 수많은 효자 효녀들이 사회 곳곳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효심이 자식들의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부모들이 선물해 준 인생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중소기업엔 일자리가 넘치는데도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청년들은 ‘부모님이 납득할 만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강박은 취업 뿐 아니라 결혼이나 육아와 같은 일생일대의 문제들에도 전부 적용된다.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너무 좋다 보니 자식들이 한 명의 어른으로 자립을 해야 할 타이밍에도 여전히 부모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건전한 연인이나 부부관계가 성립되는 데에도 많은 애로가 따르게 된다.

연극 ‘레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들은 아버지를 넘어서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라고!”

이는 문자 그대로 부모를 죽이는 패륜적 행위를 저지르라는 뜻이 아니다. 부모세대를 넘어서야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자식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부모님이 편을 들어준다는 사실을 안다. 그 무한의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의 그림자에서 뒤늦도록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운신의 폭이 제한될 때 인생의 진폭과 변동성도 줄어든다. 그 결과가 바로 침체된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인 건 아닐까.

새해만 되면 곳곳에서 혁신이며 쇄신의 구호들이 들려오지만, 진짜 필요한 것은 그렇게 거창한 구호가 아닐지도 모른다. 국가적 변혁을 말하기 전에 가정에서의 ‘자식혁명’부터가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닭의 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운 우리 새끼’가 돼야 할 타이밍이 지금 우리 눈앞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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