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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느리게 걷는 일본 소도시 여행, 산인(山陰)의 봄

세계로 떠난 남녀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에서 도착지 날씨를 알려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웃 나라니 새삼 놀랍지는 않지만, 생각보다도 일본은 훨씬 더 가까웠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공항 천장을 가득 메운 요괴 그림들이 먼저 우리를 반긴다. 현란하게 채색된 애니메이션의 향연에 놀라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번에는 공항 한 면을 가득 메운 유리창이 눈에 띈다. 스테인드글라스 형식의 애니메이션이 한가득이다. 가히 요괴 공항으로 불릴만하다.

 사카이미나토 시  요괴 만화의 고향

공항 곳곳에 배치된 요괴 그림은 바로 요괴 만화의 거장,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의 대표작인 ‘게게게의 기타로(ゲゲゲの鬼太郎)’의 캐릭터들이다. 곳곳에 숨은 요괴 그림은 지방도시의 작은 공항에 불과한 요나고(米子) 공항을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 각인시킨다.



공항에서부터 고조된 가슴은 요괴 열차에 올라 사카이미나토 시(境港市)의 요괴 마을에 도착하면서 그야말로 뻥 터질 만큼 부풀어 올랐다. 외눈을 달고 달리는 택시들, 기괴한 웃음으로 여행자를 맞이하는 이정표들, 요괴 모양 얼굴로 만들어진 빵들. 발길 닿는 곳마다 마주치는 익살스런 요괴들 때문에 미소와 탄성을 멈출 수 없다. 철들지 않는 남편, 애니메이션에 환장하는 아내. 우리에게 이보다 안성맞춤인 여행지가 또 있을까?


 오모리 은광 마을  도시와 공생하는 시골 

웬만큼 일본 여행을 다녀본 사람에게도 ‘산인(山陰)’은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일본 허리 윗부분에 자리 잡은, 바다와 인접한 주고쿠( 中国) 지방의 시마네 현(島根県)과 돗토리 현(鳥取県)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고층빌딩 대신 자연주의를 실천하는 고즈넉한 마을이 있고, 넘치는 인파 대신 850여 년의 역사를 품은 산속 온천이 있기에 슬로우 힐링 여행에 제격이다.

요괴 마을에서 한껏 고조된 여행은 산인 서쪽에 위치한 은광 마을인 오모리(大森)의 이와미 긴잔(石見銀山)으로 향하면서 차츰 안정을 찾았다. 400여 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오모리 마을은 시마네 현 오다 시(大田市)의 산악에 위치한 역사적인 은광 마을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영광과 함께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쇠락의 길을 걸은 불우한 역사도 갖고 있다.

이곳을 부활시켜 사람들의 발길을 향하게 한 데는 나카무라 도시로(中村俊郎) 사장과 마쓰바 토미(松場登美) 여사의 역할이 컸다. 의족이나 의수 같은 신체보정기기로 유명한 마을 기업인 ‘나카무라 브레이스’의 나카무라 사장은 물심양면으로 마을 재건에 힘을 보탰다.

마쓰바 토미 여사는 패션·잡화 브랜드 군겐도(群言堂) 본점을 이곳에 두고 있다. 그녀가 만든 작품 하나하나에서 자연에 순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카페 한쪽에 자리 잡은 옷과 가방, 소품, 도자기 등의 작품들은 모두 미감이 뛰어나고, 단순한 디자인에 담긴 넘치는 세련미는 발길을 고이 잡았다.

‘자세히 봐야 예쁘다’는 말이 어울리는 마을. 조용히, 천천히, 그리고 유심히 거리를 걷다 보면 자판기 하나 허투루 두지 않고 거리의 경관과 어울리는 옷을 입혀놓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에 도시와 공생하는 시골 생활에 매료된 사람들이 속속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독일의 제과 명장인 히다카 씨 부부는 도쿄의 제과점을 닫고 마을로 들어왔다. 이탈리아 커피 명가 칼리아리의 일본 본점도 나카무라 브레이스사 건너편에 있다. 그야말로 딱 살고 싶은 마을이다.



 아카가와라 마을  전통이 숨쉬는 골목

시마네에 오모리 마을이 있다면 돗토리의 구라요 시(倉吉市)에는 시라카베도조 군(白壁土蔵群) 아카가와라(赤瓦) 마을이 있다. 시라카베도조는 하얀 벽 창고, 아카가와라는 붉은 기와를 뜻한다. 에도와 메이지 시대를 거치며 수로를 따라 들어선 전통 가옥들이 잘 보존된 고즈넉한 거리다.


회반죽을 바른 흰 벽에 검게 그을린 삼나무 판자를 덧대고, 지붕에 빨간 기와를 얹은 창고들은 소소한 즐길 거리로 넘쳐난다. 액을 쫓는다는 하코타(はこた) 인형의 얼굴을 직접 그려보기도 하고, 도자기나 연을 만들어 보는 체험도 했다.

체험을 끝내고 돌아서자 작은 붕어빵집이 보였다. 요네자와 붕어빵(米澤たいやき店). 꼭 먹어봐야 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붕어빵이 맛있어야 붕어빵이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주인이 굽는 붕어빵 틀이 신기하다. 빵 한 개를 만들 수 있는 수제 틀이 여러 개 놓여있고, 하나하나 살펴가며 빵을 만드는 게 말 그대로 장인의 손길이 묻어있는 듯했다. 맛은? 합격점이다. 쫀득한 담백함을 선사하는 반죽이 얇은 피를 형성하고, 가벼운 단맛을 담은 단팥이 속을 가득 채웠다.

다음 행선지는 ‘맷돌 커피’로 유명한 카페 구라(久楽). 요즘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찾기 힘든 맷돌로 간 고운 원두의 향과 맛을 담아낸 커피 한 잔과 함께 나오는 단팥 한 종지. 시럽 대신 단팥으로 단맛을 첨가하라는데, 커피와 단팥의 조화라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단팥 한 수저를 커피에 넣어 한 모금 마셔보니 의외로 은은한 단맛이 느껴진다. 조금 전에 산 수제 붕어빵, 창밖으로 보이는 고즈넉한 골목 풍경, 그리고 맷돌 커피 한 잔은 오후의 티타임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돗토리 사구  미니 사막과 바다의 만남

이튿날 사구(沙丘)로 향했다. 돗토리의 사구는 산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 일본에서 사구라니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이다. 16km에 달하는 광활한 사구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발이 푹푹 빠지며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는 게 진짜 모래 언덕이다. 그 아래에 작은 오아시스까지 있는, 영락없는 미니 사막이다. 한참 동안 모래 언덕을 기어오르자 두 눈에 다 담을 수도 없는 드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사막과 바다의 만남이다. 몇 만 년의 긴 세월 동안 거친 파도와 북서 계절풍이 만들어낸 자연의 작품 그 자체다.



 미사사 온천   피로가 풀리는 넉넉한 인심

신나게 뛰어놀며 즐겁게 지낸 여행의 피로를 풀 시간. 미사사(三朝) 온천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기서 아침을 세 번 맞으면 병이 낫는다”고 해서 미사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850년의 역사가 말하듯 몸에 좋은 라돈 성분을 품은 명탕으로, 해발 900m의 미토쿠산(三徳山)으로 둘러싸인 산중에는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기 위해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조용히 흐르는 실개천 위로 살포시 얹힌 다리 위에 무료 족욕탕이 있다. 흐르는 물소리와 눈앞에 펼쳐진 산세를 보며 즐기는 족욕이라니….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베푸는 후한 인심에 마음의 피로가 먼저 풀린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조용한 산골 마을의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고풍스러운 료칸(旅館)의 온천에 몸을 담근다. 피로가 풀리듯이 사그라드는 여행의 추억이 노곤하게 온 마음을 감쌌다. 즐거웠던 기억이 마음속 가득히 녹아든 채 한껏 부드러워진 몸과 함께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다. 




 세 단어로 알아보는 일본 산인


1. 미즈키 시게루


2차 세계대전에서 왼팔을 잃어, 한쪽 팔로 만화가 생활을 시작했다. 전쟁에서 겪은 악몽과도 같았던 현실이 그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한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을 받던 그는 2015년 11월 유명을 달리해 이제는 그의 고향에 세워진 동상으로만 그를 만날 수 있다.


2. 사카이미나토 시


인구 3만 5000명에 불과했던 작은 도시, 사카이미나토 시는 전형적인 쇠락한 지방도시였다. 1993년 시청 직원이었던 구로메 도모노리(黑目友則)가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 캐릭터들로 이뤄진 요괴 동상을 설치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요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반대에 부딪혔다. 어렵사리 설치된 23개의 동상이 파손되거나 손실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미즈키 시게루가 고향의 발전을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캐릭터 저작권을 무상 양도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된 요괴 마을은 현재 매년 20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다.


3. 산인 가는 길


주 3회(화·금·일) 운항하는 에어서울을 타고 요나고 공항에 닿거나, 오후 6시에 동해항을 출발해 다음날 오전 9시에 사카이미나토 항에 입항하는 DBS크루즈를 이용한다. 시마네, 돗토리 현은 여권을 소지한 외국인에게 30~50%의 입장료 할인 혜택을 준다. 마쓰에 호리카와(松江堀川) 유람선, 아다치(足立) 미술관 등 주요 관광지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어 꼭 챙겨다니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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