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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손가락 선인장 꽃을 보며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심한 몸살을 앓는다. 시기적으로 보면 대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3월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그냥 넘어가나 했더니 잊지 않고 미세먼지로 아쉬웠던 오월 연휴가 넘어간 후에 찾아왔다. 

사지가 쑤시고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몸살이 두통까지 동반해 엄습했다. 마치 신체 중 한 번이라도 기능을 한 부분은 일제히 다 일어나 저항의 꽃을 피워 올리는 것 같았다. 심지어 말초신경 끝부분까지 눈자위도 빠질 지경이었다. 

아! 몸이 왜 이러는 것일까?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마음만 앞서 끌려다닌 중고 몸뚱어리가 참회를 요구하는 것 같았다. 아마 이미 몇 번 과로의 신호를 보냈을 것이지만 욕심에 불통으로 일관하며 달리다가 변고를 낸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욕심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약해빠진 몸을 탓하며 고장 난 부분을 새 부품으로 교체하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을 한다. 하지만 몸은 기계가 아니므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며칠 앓고 좀 가벼워진 일요일 한낮이었다. 햇살은 담쟁이 넝쿨의 자람을 더 하고 바람은 처마 끝 풍경을 휘돌아 보라색 멀구슬 꽃잎을 일렁이며 하늘로 사라진다. 몸살 후에 맡는 오월의 냄새가 새롭고 신선했다. 기지개를 켜며 햇볕에 나선 순간 전에 보지 못한 붉은 빛으로 화사하게 송송 피어난 꽃이 시선을 끈다. 그 꽃은 손가락 모양 몸통에 수많은 가시 틈바구니에 봉오리를 만들어 중앙의 금색 암술을 중심으로 여러 수술과 꽃잎을 두르고 있었다. 이 화려한 꽃의 주인공은 손가락 선인장이었다. 아! 무관심 속에 물도 제때 얻어먹지 못하며 추운 겨울을 시름시름 몸살로 나더니만 살아있는 것만도 용하다 생각했는데 꽃까지 피우다니. 정말 끈질긴 생명력에 찬사를 보낼 일이었다.

이 손가락 선인장이 집에 온 것은 6년 전이었다. 아내가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것을 지인에게 분양받아 금 간 장독 뚜껑을 화분 삼아 심어놓았다. 처음엔 살기나 할까? 꼭 애벌레 같은 몸통에 하얀 수염이 붙어 있어 저러다 말라버리겠지 하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손가락 한 마디였던 녀석은 가족을 늘리며 이제 항아리 전체를 차지하고 가장자리 밖으로 몸통을 늘어뜨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여전히 꽃은 피우지 않아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원래 선인장이란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그래서 물도 자주 줄 필요가 없어 게으른 무관심한 사람이 키우기에는 딱 맞았다. 그렇게 하찮게 보이던 애벌레 같은 녀석의 몸통에 올 사월 말부터 혹 같은 것이 자라기 시작했는데 그게 꽃봉오리였다. 그리고 신록과 녹음으로 찬란한, 모란이 떨어져 진 지 오래된 오월 한낮에 그 붉고 화려한 개화로 내로란 듯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천대를 받았을까? 다른 화분들은 추워지면 거실에서 겨울을 지냈지만 이 녀석은 그대로 겨울을 났다. 아마 사람이라면 몸살감기를 여러 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몸살감기보다 더 아픈 것은 무관심이었으리라. 개개인이 살면서 누군가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참아왔던 무관심에 시위하듯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긴 인내와 시련 뒤에 펼쳐지는 손가락 선인장의 개화를 보며 문득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떠올린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처럼 개화는 오랜 인고의 내공이 쌓여 우주의 열림 같은 열락(悅樂)의 새로움을 보여준다.

그러면 개화에 비견해 사람의 몸살, 자동차의 정기적인 엔진오일 교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몸살을 통해 그동안 마음만 앞서 몰아세운 자신의 몸에 대한 참회의 시간을 거쳐 새롭게 한다. 그리고 정기점검을 통해 엔진 사용에 정한 한계치가 왔음을 알아 사고를 예방하며 그 시점에서 새롭게 하는 모양새로 보면 된다.

앙증맞은 손가락 선인장의 붉은 꽃을 보며 왜 퇴근 무렵엔 보이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 해답은 태양을 너무 사모해 햇볕을 받을 때만 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닫는다는 것이었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별나라 공주가 변신한 것인지 아니면 그 화려한 군무를 밝은 태양 아래서만 보여주고 싶은 당당함인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눈길을 주지 않았던 손가락 선인장의 개화가 시련 끝에 가져온 새로움이란 깨달음을 주어서 고마울 뿐이다.

몸살 후 보듬어보는 오월의 찬란한 신록의 합창이 더없이 감사하게 다가온다. 더구나 이 새로움은 지난날 불통의 아픔에 항거한 긴 겨울의 인내와 촛불 함성으로부터 시작해 장미가 한창인 계절에 핀 우리의 소중한 꽃이라 생각하니 새롭게 탄생한 정부에 새로운 기대에 움츠린 몸과 마음은 활짝 펴진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다. 장미꽃을 너무 사랑해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이 릴케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너무 조급히 취하면 자신의 단점을 지나치기 쉽다. 이 좋은 계절, 새로움이 열리는 시점에 가시에 찔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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