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화)

  • 구름많음동두천 10.1℃
  • 구름조금강릉 10.4℃
  • 연무서울 9.8℃
  • 구름많음대전 11.7℃
  • 구름많음대구 14.4℃
  • 흐림울산 14.8℃
  • 흐림광주 10.9℃
  • 구름조금부산 14.7℃
  • 구름조금고창 10.8℃
  • 맑음제주 15.4℃
  • 맑음강화 8.9℃
  • 구름많음보은 10.4℃
  • 구름많음금산 10.0℃
  • 구름많음강진군 12.5℃
  • 흐림경주시 14.7℃
  • 구름조금거제 14.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제언·칼럼

그 많던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 아는 70대 중반의 지인 한분이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가 겪은 얘기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는 시간대라 버스 안이 붐볐는데, 평소 오래 서 있으면 허리가 아파오곤 하는 몸이어서 앉아갈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미 노약자석까지도 아이들이 차지하고 앉아 있기에 할 수 없이 뒤쪽으로 비집고 들어가 손잡이에 의존해서 비틀거리는 몸을 버티고 있었다. 예의바르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아이들이라면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드려야 도리건만, 친구들끼리 키득거리며 장난치거나 각자 핸드폰 게임에만 열중하지 옆에 누가 타고 있는지 따위엔 전혀 괘념하지를 않더란다.


손자뻘 아이들의 버릇없음을 보며 느끼는 서운한 마음을 꾹꾹 짓눌러가며,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서 집 앞 정거장이 가까워지기만을 기다리는데, 이럴 수가! 바로 앞쪽 자리에 앉아 있는 두 학생의 태도가 도저히 꼴로는 볼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남녀공학의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사이로 가까워 보이는 남녀학생 둘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는데 치마 입은 여학생이 그 남학생의 무릎에 보란 듯이 걸터앉아 있는 것만도 볼썽사나운 광경인데, 죽고 못 사는 눈빛으로 서로를 빤히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진한 포옹을 했다가 얼굴을 감쌌다가를 쉴 새 없이 반복하는 게 아닌가.


남녀 간의 애정표현이 주변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만큼 자유로워진 요즘 시대에 구시대 유물에 불과한 남녀칠세부동석을 들먹이다가는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구닥다리로 외면당하기 쉽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꼴불견 상황을 그냥 못 본 체 하고 버스를 내릴까하다가, 아무리 제멋에 사는 세상이라지만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생활에서 최소한 지켜야 할 금도가 있을 터인데, 나라의 미래라고 하는 저 어린 것들이 어찌 저럴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끝내 한마디 뱉고 말았다 한다.


네 이놈들! 이게 무슨 짓들이냐. 아무리 좋은 사랑표현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마땅하거늘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버스 안에서 이게 무슨 가당치 않은 행동이냐. 네 부모가 그리 가르치더냐, 아니면 학교에서 그리 배웠느냐?”


호령하듯 꾸짖는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던지, 버스 안에 타고 있던 모든 승객들의 놀란 시선이 한꺼번에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끼는 한편으로는 얼마나 가슴이 졸여오던지. 혹시라도 벌떡 일어나서 멱살 잡고 당신이 뭔데 지랄이야!” 라며 힘센 주먹이라도 날리면 어쩔 것인가. 맞아죽는 수밖에. 그 순간 엄습해오는 긴장과 두려움에 머리끝이 쭈뼛 섰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그 문제의 남녀 학생들이 자기들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조금은 알았던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이내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만 서둘러 정류장에 내려 쏜살같이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집으로 돌아와 그날 겪은 얘기를 가족들에게 했더니, 위험을 무릅쓰고 학생들의 잘못을 꾸짖은 데 대해 잘한 일이라며 칭찬을 해주는 사람은 몇 안 되고, 힘 약한 노인네가 괜한 일에 끼어들어 봉변을 당했으면 어쩔 뻔 했겠느냐며 그저 별일 없이 끝난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며 가족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라는 것이다. 누구에게 그 무슨 찬사나 받으려고 의협심을 발휘한 것은 아니지만, 바르게 키웠다고 믿었던 자신의 가족들마저 이기적인 세태에 오염됐다 생각하니 서운하고 씁쓸한 생각이 들어 속상한 마음을 며칠을 두고 당신 혼자서 달랬다고 한다.


필자가 이 얘기를 전해 들으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그 상황에서 노인이 보여준 행동 은 우리 중의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참으로 용기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모두에게 그것이 용기 아닌 쓸데없는 호기나 만용쯤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도덕과 사회통념에 비추어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불의와 부정, 부도덕 앞에서는 마땅히 분개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올바른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열에 아홉은 자신들의 개인적 안위만을 걱정하고 혹시 모를 후환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잘못된 상황을 외면하거나 방관해버림으로써 이 땅의 사회적 정의와 도덕이 절멸해 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어찌될까. 경제적 번영 속에서 물질의 풍요를 제아무리 많이 누린다한들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지옥 같은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예전 같으면 부유하건 가난하건 간에 어느 집안에나 그 집의 정신적 기둥이 되는 어른이 있어서, 바른 삶을 살아가는 도덕적 규범의 본보기가 되고 그것이 저마다의 가풍으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운데,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배우며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가정교육이 살아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단순히 밖에 나가 돈이나 벌어 오는 도구적 인간으로 전락한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에서 부모로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물려줄 정신세계가 과연 눈곱만큼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라도 제 역할과 구실을 다해 가정의 부재를 매워주면 좋으련만, 학교는 오히려 한 술 더 뜬다고나 할까. 입시위주 교육의 굴레를 그 무슨 역사적 사명인 양 보듬은 채, 교육의 본질과 거리가 먼 지식전달에 급급한, 혼이 없는 교육을 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결국 내 집 자식이나 남의 집 자식이나,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 인간으로 함부로 자랄밖에.


다양한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져 복잡한 갈등 체계를 이루는 현대사회가 보다 건강하게 움직이려면 공존적 존재로서 모두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핵심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공동선이라는 이름으로 개념화 한다면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한 것은 다름 아닌 효와 예라 할 것이다. 효와 예가 없는 인간다운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길은 하나밖에 없다. 집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인간됨의 바른 품성을 길러주는 인성교육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 예전에 그 많던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쩌다 한 말씀만 하셔도 삶의 나침반이 되고 천금처럼 무겁게 들리던 어른들의 말씀이 오늘따라 그립고 또 그립다. 허튼 짓 하다가도 정신이 번쩍 차려지고 흐트러진 옷매무새 바로잡게 만들던 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너무 듣고 싶다. 어찌된 세상인지, 아무도 어른을 어른으로 섬겨주지 않아서 어른다운 어른들이 어디론가 깊이깊이 숨어버린 것이라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는 세상이 다시 와야 한다. 도덕과 윤리가 죽어가는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힐 자 오로지 어른들이기에, 갈 곳 몰라 하는 아이들 앞에 든든한 삶의 지도자가 되어주고 본받고 싶은 모범전형이 되어주는 어른,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욕을 먹더라도 나무랄 것은 나무라고 혼낼 것은 혼내주는 그런 참 어른이 많아졌으면 정말 좋겠다. 전상훈 시인·교육칼럼니스트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