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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창가에서] 퇴직 이야기

38여년을 훌쩍 넘긴 내 교직 생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 삶의 한복판을 고스란히 함께 했던 교실에서, 아이들의 함성이 가득했던 운동장에서 나는 켜켜이 쌓인 그리움을 감싸 안고 이젠 그 누군가에게 이 자리를 넘겨주고 떠나야 한다. 그것이 순리임을 알지만 울컥하는 마음이다.
 
방학 전, 교무실에서 8월중 행사 계획에 내 이름 석 자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눈길을 돌렸다. ‘정년퇴임’이라는 문구가 그리 낯설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우리 2학년 5반 아이들과의 1교시 수업을 내내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틈틈이 몰래 눈물을 훔쳐내며 모처럼 아이들에게 맘껏 자신들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간을 줬다. 아니, 내 맘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 내 소리가 잦아들길 원했다.

‘정년퇴임’ 그 낯설고 또 낯선 문구
 
하지만 나는 오래 참지 못했다. 다시 내 목소리가 커졌고, 내 욕심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다고 열정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아이들을 채근하기 바빴다. 그저 느림도, 서투름도 아이들의 또 다른 가능성 중의 일부라는 것을 헤아리지 못한 내 모습을 그날도 재연하고 말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억지’라고 여기며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하지 못했던 나의 무심함, 누에고치 같은 그 틀에서 여전히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숱한 제자들에게 되풀이 했던 그런 과오를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되는 건지.
 
물론 ‘나도 때로는 괜찮을 선생이었어’라며 스스로 살짝 토닥이고 싶었던 적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퇴직을 앞두고 보니 그런 마음도 민망할 따름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 자신이 ‘가르치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아왔던 그 긴긴 시간의 끝자락에 서고 보니, 내가 아이들을 가르친 게 아니고 아이들이 나를 이렇게 가르치고 다듬어 놓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참으로 많이 허허로웠다. 그리고 이 모순 같은 깨달음 앞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그처럼 이제 나는 풀과 나무와 새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다. 그리곤 그 곳에서 얼마간은 쉬고 싶다. 
 
나는 첫 발령지, 그 외진 곳에서 시작한 자취생활이 멀고 먼 고도에 홀로 떨어진 듯 막막해 창밖으로 스며드는 어스름이 꽤나 두려웠었다. 그런데 이제 퇴직과 함께 그 산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 같다. 미리 귀촌한 남편 덕분에. 
 
얘들아, 고맙고 미안하고 행복했다

늘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는 외할머니 내음이 묻어 있는 메꽃 길을 걸으며 몇 평 남짓 땅뙈기에 고추며 가지를 심어 자식네 갖다 주는 어미가 되고, 할머니가 될 듯 싶다.  
 
얼마 남지 않은 교직생활. 얼마나 더 큰 감사로 꾹꾹 채워 넣을 수 있을는지 고민스럽다. 생각에 생각을 덧대어 봐도 답은 하나.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과 울고 웃으면 된다. 못다한 이야기는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교실 문을 나서야겠다.
 
‘얘들아, 고마웠어. 그리고 쬐끔 미안하고 많이 행복했어.’ 이렇게 혼잣말을 되뇐다. 내 삶의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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