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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어느 재일동포 할머니의 기억

성서를 가슴에 안고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시는 할머니, 김달룡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 코스 안에서 수많은 인연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의 연속이다. 이제는 아득한 옛 추억담이 됐지만 차근차근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다. 기억은 소중하지만 이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래서 생각을 더듬어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나의 교직 생활은 일본 생활이 거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처음 시작이 젊은 시절의 기억인지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 차이가 컸던 1987년 9월말 경, 일본의 생활을 힘들기도 했지만 호기심 충만이었다. 다행히 이곳에서 일본인 교수 몇 분과 펜팔을 한 덕분에 그 분들을 통해 일본에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매일 일본어만을 반복하는 생활은 상당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공부하기로 작정하고 일본에 온 이상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매일 주어진 과제도 해야하고 지리도 파악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필수적인 언어를 배움으로 삶에서 소통은 큰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닦은 일본어는 내가 훗날 일본에서 생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도구가 됐다. 1년 6개월의 공부는 한국의 교육과 일본의 교육을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을 열어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재일동포요 일본인이다. 한국에서 보는 재일 동포는 대부분이 잘 살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분의 삶은 다양하다. 출발부터가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어떤 이는 강제로 끌려와 정착했고, 또 어떤 분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아 이곳에 왔다. 아무 판단력도 없던 처녀시절에 일본 땅을 밟아 지금까지 생을 이어가고 있다.


1994년 10월 구마모토로 이사해 한국교회를 찾았다. 이곳에서 할머니는 집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이든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노래를 통해 옛 정서를 회복하도록 했다. 이렇게 3년 반의 시간을 동포들과 함께 했다.  이후 퇴임을 하고 20여년 전 근무하면서 마음속에 남았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이용해 구마모토를 찾았다. 비행 중 제공한 냉수 한 잔을 마시는 사이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92세를 맞이하신 할머니가 마중을 나오신 것이다. 자신의 몸도 가누시기 어려운데 이렇게 구마모토에서 공항까지 나오신 것을 보니 눈물이 날 정도였다.


몸은 나이가 들어서 야위였지만 대화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이분은 처녀 때 고향을 떠나 모진 세월을 견디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녀들 뒷바라지 하고, 삶을 유지하는 것 조차 힘드셨을텐데 오늘까지 건장하신 모습을 보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비결은 성서를 교과서로 삼고 매일 아침 세계, 아시아, 일본, 한국을 가슴에 안고 한 시간 정도 기도시간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자녀들에게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재산도 유산으로 남기지 못했노라 후회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아들이 내가 지금 여기에 건강하게 살아있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에는 깨닫지 못해 행하지 못한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재일동포들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힘이 없고 배우지 못해 좋은 직업은 가질수도 없었고, 상황을  몰라서 어려웠던 삶을 살았지만 아직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동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교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 땅에 살면서도 일본을 원망하지 않고 일본이 더 잘 되기를 바라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모습이 대단하다. 그러나 상당수의 재일동포들은 이제 나이가 들어 지난 삶의 기억들을 되살리지 못한 나이든 분들을 만나면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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