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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억울한 죽음, 더 이상 없기를!

아이들도 세상을 닮는다

  메뉴얼을 지켰는가?

제자 성희롱 의혹으로 조사를 받다가 스스로 삶을 접은 故송경진 교사 사건은 대한민국의 교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신고 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통한 송 교사의 진술 등 소명기회조차 없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학생들의 말만 믿고 직위해제를 한 교육청, 뒤늦게 사건의 심각성을 알고 탄원서를 제출한 학생들 주장에 경찰이 종결한 사건을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가 교육청에 징계 처분 권고 결정을 내려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 그러나 이미 송교사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몸무게도 10킬로그램 이상 빠져서 번 아웃 상태였으리라. 나라도 그런 모함을 받고 견뎌낼 수 없었으리라. 목숨으로 지킬 수밖에 없었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송교상의 죽음이 교단에 던진 충격파 또한 엄청나다. 심하게 말하면 복지부동이나 무사안일주의 갑옷을 입어야 살아낼 교단이 되었다. 제자에 대한 관심과 충고가 성희롱이 되는 세상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진실은 시간이  가면 밝혀진다지만, 이미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이 그 억울함을 죽음으로 항명했다. 그 가족의 망가져버린 삶은 누가 보상해주나. 야간자율학습을 하기 싫어서 선생님을 걸고넘어진 철없는 학생들의 말장난이 엄청난 파국을 일으킨 셈이다. 학생들의 말만 곧이곧대로 진술 받아 신고부터 한 것도 큰 잘못이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뭘 하고 있었나? 진술서를 토대로 사실 관계 확인부터 하는 게 순서인데 송교사에게 소명할 기회조치 주지 않은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가담한 학생들은 앞으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이 사건은 학생들이 선생님을 모함하여 진술서의 용어를 과도하게 어필한 점,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신고부터 감행한 동료 교사, 초기 대응을 잘못한 학교 측, 사건을 신고 받고 매뉴얼대로 처리했는지 살펴보지도 않고 직위해제부터 성급하게 내린 지역교육청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 확인을 실시하지 않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가장 큰 잘못이 있다고 본다.

이 사건을 보며 필자가 겪은 황당한 사건이 생각나서 다시 한 번 분개하는 마음이 앞서 이 글을 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누구나 날마다 크건 작건 사소한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희대의 대통령 탄핵사건을 보면서 법적인 증거 앞에서 오리발로, 비싼 변호사들의 등 뒤에 숨어서 숱한 거짓말의 향연을 보여주던 사람들. 많이 배운 자들, 고위직, 더 많이 가진 자들의 행태를 보며 분노했던 시간 덕분에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더딘 곳이 교육계인 것만 같아 답답하다.

방과 후 선생님이 욕을 했다고요?

특히 1학년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거짓말이 나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장난삼아 거짓말을 하는 시기이다. 친구들을 놀래키는 작은 장난,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깜빡 속아 넘어가는 작은 거짓말이 때론 귀여운 시기이다. 우리 반 아이가 했던 황당한 거짓말 때문에 학교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발 빠르게 대처하여 사건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일이라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초여름 어느 날 아침, 맨발로 찾아온 학부모가 대뜸 하는 말,
"선생님, 우리 00가 방과 후 교실 선생님한테 욕을 들었답니다."
"네? 차분히 말씀해 보세요. 교육청에 전화를 하거나 학교 측에 알리지 않고 담임에게 먼저 오신 것은 아주 잘하신 일입니다. 일이란 순서가 있으니까요. 뭐라고 욕했다고 하던가요?"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만."
"알겠습니다. 종이를 드릴 테니 여기에 쓰십시오."
두 문장이었다. 입에 담기도 그렇고 글로 옮기기도 부적합한 말이었다. 어린 아이가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어른들의 욕이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제가 먼저 자초지종을 파악하고 방과후 선생님께 사실 확인을 한 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알고 계십시오. 1학년 아이들은 거짓말을 많이 하는 시기란 것을요. 아주 사소한 거짓말부터 시작해서 금방 탄로 날 거짓말도 하는 시기가 1학년 시기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맞춰서 거짓말 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아직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서 말할 나이는 아니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아이말만 곧이곧대로 듣고 흥분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여 거짓말 하는 버릇을 잡아야한답니다.

"아! 그래요? 우리 아이는 평소에 거짓말 하지 않는데요."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아무튼 자세히 알아보고 오늘 중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사실이라면 그 선생님께도 응당한 조치를 해야 하고 사실이 아니라면 어머니께서도 자녀를 혼내주고 선생님께 정식으로 사과하셔야 합니다. 예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생겨서 학생들의 말만 믿고 방과후 선생님이 억울하게 바뀐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상급 학년에서 일어난 일이라 저는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미 흘러간 물이었지요. 나중에야 알려졌지요. 그 선생님이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 학생들의 말만 듣고 학부형들이 집단적으로 항의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요."
 
그날 필자는 즉시 학교 측에 알리고 방과후 선생님을 만나 직접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 선생님은 학생들의 신망을 받고 있고 아이들도 매우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일이 꼬여서 선생님이 바뀔 경우, 그 선생님도 함들 것이고 수업을 받아온 아이들에게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발 빠른 대처가 필요했다. 욕설이 적힌 쪽지를 본 선생님은 너무 놀라고 황당하다면서 억울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님, 먼저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먼저 오셔서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으셨다면 꼼짝없이 해명할 겨를도 없이 사건에 휘말릴 뻔 했으니까요. 그 아이는 말도 없고 조용한 아이였는데 어떻게 제가 하지도 않은 그런 욕을 했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까요? 하늘에 맹세코 저는 그런 욕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수업 중에 제가 그 말을 했다는데 제가 했다면 들은 아이들이 있을 겁니다. 저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인데 그런 욕을 할 리도 없고 평소에도 욕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

그러면서 눈물을 보이는 방과후 선생님의 모습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공부나 활동을 시키는 선생님의 한 쪽만을 보고 애꿎은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이나 말을 선생님 핑계를 대며 거짓말 하는 일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선생님의 눈빛과 눈물의 항변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확신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증언에 힘이 실렸다. "선생님, 00는 거짓말 잘해요!" 그 한마디.

그리고 당사자인 아이를 조용히 다른 곳으로 불러서 물었다. 먼저 아이가 놀라거나 불안해하지 않도록 일상적인 대화를 했다. 학교생활에 힘든 일은 없는지, 친구들과 힘든 일은 없는지, 방과후 프로그램 시간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 간접적으로 접근했다. 평소에 아이 엄마가 도시에서 살다가 여러 군데 학교를 알아보고 우리 학교를 찾아 일부러 입학시킬 만큼 학교교육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아이가 학교생활을 즐겁고 재미있어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터라 예상 밖의 상황에 놀란 건 나였다. 사건 수습도 중요했지만 재발방지에 더 무게를 두고 접근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 곤란해서 욕이 적힌 쪽지를 보여주었다.  아이는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조치 잊은 듯했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욕을 들었는지 설명도 하지 못했고 자기가 그런 욕을 정말 들었는지조차도 대답을 못했다. 한 선생님의 인생이 걸린 문제였기에, 방과후 프로그램에 대한 재조정에, 인력 수급 문제까지 걸린 문제였기에 나는 심각했는데, 정작 아이는 멀뚱멀뚱 해서 다시 한 번 놀랐다. 상황인식이 안 되는 어린 아이를 다그치는 일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잘 생각해보고 생각나는 대로 엄마나 선생님께 말해 달라"고 부탁하고 마무리 지었다.

그래서 함께 방과후 수업을 받는 다른 아이들을 상대로 한 사람씩 물었다. 그 선생님이 평소에 욕을 하시는지, 혹시라도 심한 말을 하시는지 보다 더 좋은 학습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해 그냥 알아보는 거라고. 그런데 단 한 아이도 그 선생님에 대해 서운함을 표하거나 더욱이 욕하는 일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이들은 오히려 그 선생님을 걱정했다. 그리고는 그 아이가 거짓말을 잘한다고 했다. 장난 수준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이나 담임 선생님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거짓말을 하는 아이. 자기는 장난삼아 그런 말을 한 번 해본 건데 부모님은 놀랐고 일은 크게 번질 뻔 했으니 본인도 놀랐으리라.

아이들은 금방 잊어버린다. 어제 일도 제대로 시간대별로 말하지 못하는 게 1학년 아이임을 감안하면 제대로 기억조차 못하는 게 정상일지도 모른다. 워낙 책을 많이 보고 상상의 세계에서 사는 아이라서 엉뚱발랄한 생각도 잘하는 아이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어디서 들은 욕이 신기해서 한 번 말해 볼 수도 있었거나 부모님을 놀래키려고 했을 수도 있다.

결국 다음 날 아이 엄마를 다시 학교로 오게 해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학부모님은 아이를 데리고 방과후 선생님께 정식으로 사과했고 아이도 반성하는 일로 마무리 지었다. 우리 반에서는 '거짓말'을 주제로 특별수업을 하는 것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예방약도 투여했다. 거짓말이 얼마나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세상, 그런 사람이 되려고 공부를 하고 좋은 책을 읽는 거라고.

아직도 그날의 해프닝을 이해하기 힘든 게 솔직한 고백이다. 그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고 방과후 교실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니니. 진실은 그 아이와 그 선생님 밖에 모른다. 다른 아이들의 증언과 그 선생님의 눈물의 항변으로 불완전한 매듭을 지었으므로. 정작 더 놀란 것은 필자를 그렇게 동분서주하게 한 주인공은 그날 이후로도 아주 유쾌발랄하게 즐거운 1학년 생활을 하고 있으니, 1학년 아이들의 정신세계가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그 일로 1학년 아이들의 심리 파악을 위해 심리학책을 더 들추게 되었으니 교직은 평생 공부해야 하는 자리가 맞다. 하마터면 한 선생님의 일자리가 날아갈 뻔했던 거짓말 사건으로 2017년을 액땜한 후 즐거운 일만 가득한 학교가 되었다. 앞으로 교직 과목으로 검사 공부도 변호사 공부도 교양과목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워낙 학교에서 생기는 사건들이 다양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기존의 교직 과목 이수는 교단에 설 자격만 주는 것이다. 교직에 뜻을 둔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선 날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뛰는 아이들 위에 날으는 선생님이 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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