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가주의 이민 사회에는 우리 2세들이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날로 높아가고 있다. 부모들의 한국에 대한 뿌리 의식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데다, 2중 언어가 가능하면 직장을 얻는데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세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한국어가 서툴다.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낮에는 한국어를 대할 기회가 거의 없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부모들은 시간이 좀 난다해도 지칠 대로 지쳐있어 자녀들과 다정스럽게 앉아 대화를 나눌 여유를 갖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학교에서 미국 친구들하고만 얘기를 할 수밖에 없어 한국어를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실정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미국의 각 한인 교회에서는 2세들을 모아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의 한국학교는 대부분 만원이다. 부모의 권유로 억지로 공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 스스로 한국학교를 택해
공부를 한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국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는 우리의 2세들을 보면 뿌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미국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내가 소속되어있는 선교회에서 모임 안내장 하나가 왔다. 모 회원 집에서 가라오께를 준비했으니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가라오께라는 것을 말만 들었지 한번도 본적이 없다. 관심도 없었고 기독교인으로 그런 것을 접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보지를 않았던 것이다. 기독교와 가라오께, 도대체 걸맞지를 않게 느껴진다.
그렇게 신앙이 돈독한 우리 회원들이 가라오께를 한다니... 마음에 좀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혼자 빠질 수도 없는 일이어서 회원 집을 방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막상 가라오께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퇴폐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큰 TV에 비디오 테입을 넣자 정겨운 한국의 풍경이 화면 가득 채워지고, 아래 면에는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 자막이 이어져 갔다. 고국을 떠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국이 저렇게 아름답고, 한국어가 저렇게 정겨운 것임을 해삼 절실하게 느꼈다. 회원들이 화면에 나오는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른다. 매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모 집사님도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른다.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나빠 보이지를 않았다.
고국에 대한 절절한 향수가 배어있는 표정이 오히려 안타까움을 일게 할 정도다. 회원들은 노래를 잘도 불러댔다. 어떻게 그 많은 노래들을 배웠는지 자막을 보지 않고도 능숙하게 불러댄다. 우리 부부만 노래도 잘 모르는 데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지를 않아 멍하니 앉아 있다. 우리 때문에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이 미안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요를 부르는 분위기가 한국 안에서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흥에 겨워서, 혹은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세상작인 분위기에 취해 부르는 것이 아니라, 고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부른다. 그 만큼 우리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민 1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을 한번도 가보지 않은 우리의 2세들도 비록 말은 서툴러도 우리의 말 우리의 정서들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 모른다.
우리 교회 목사님의 아들은
UCLA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공부하는 틈틈이 조용필의 노래를 듣고 한국의 비디오를 보는 것을
목사님은 자랑을 하신다. 목사님 아들 뿐 만이 아니라 많은 청소년, 혹은 청년들이 한국의 비디오, 혹은 노래 테입을 통해 한국어를 배우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한국어를 배워가는 과정을 보면 우스운 일이 많다. 존댓말은 말 끝에 '요'를 넣는다고 가르쳐 주면
'나 밥 먹었다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는 목사님을 가리키며 '쟤가 우리 목사님이다' 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우리도 미국에 와서 아이들에게 별의별 이상한 호칭을 다 듣게 된다. 한국에서 같으면 꾸중들을 만한 말들을 아이들은 아무에게나 해 대는
것이다.
모르고 하는 말이니 야단 칠
수도 없고...
우리 이웃에 사시는 분의 경험담을 들으며 한바탕 웃은 일이 있다. 그 분은 충청도에 살다가 2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오셨다. 아이들 셋을 두고 있는 데 모두 한국말이 서툴다. 그 동안에는 생활에 쫓겨 아이들 돌볼 겨를이 없어 한국어를 가르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요즘에 생활이 좀 펴서 엄마가 직장을 파트 타임으로만
나가고 남는 시간에 집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직접 가르친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한국어를 배울 만한 학교도 흔치를 않아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를 못했었는데 엄마가 집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주게 된 것에 대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좋은 대학에서 법학과 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착하고 성실한 두 딸은 하루가 다르게 한국말이 늘어간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계집애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조금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귀여워하는 표정으로 '지랄하네' 라는 말도 곧잘 사용한다. 아이들이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기분 나쁠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일러주었다.
엄마의 불충분한 설명은 엉뚱한
사건을 만들고 말았다. 어느 날 엄마가 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자 대뜸 "엄마 계집애야, 그러지마!" 라고 쏘아 붙였다. 엄마는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을 못할 정도였다.
하루는 손님이 있는데서 엄마에게 '지랄하네' 라고 말했다.
"아니, 너 그거 무슨 말인 줄 알고 엄마한테 하는 거냐?"
엄마가 기가 막혀서 물었다.
"기분 나쁜 행동을 하면 하는 말이라며."
"그건 심한 욕이야."
"그럼 엄마는 왜 나한테 그런 나쁜 욕을 했어?"
엄마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손님까지 잔뜩 와 있는데서 이게 무슨 망신인가. 엄마가 딸에게 계집애, 지랄하네 라는 말을 들으면서 살아가야 하다니...그러나 그런 얘기를 우리에게 한탄하듯 털어놓으면서도 별로 싫은 표정이 아니다. 한국말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배워가는 기특한 딸들을 자랑하고픈
욕심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 집 딸 아이 하나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돈을 많이 받는 미국 직장과 얼마 안돼는 한국의 은행 지사 중에서 그 학생은 임금이 낮은 한국의 은행을 선택했다. 이유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한국어를 더 많이 배우고 싶어서다. 이곳의 실정으로 보아 임금이 낮은 직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비록
아르바이트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몇 센트 싼 곳을 찾기 위해 주유소를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니는 게 이곳의 실정인데 월급의 차이가 심한 직장 중에 낮은 곳은
택한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열망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를 잘 알 수가 있다. 직장에 다니면서 한국말을 못하기 때문에 고객으로부터 모국어도 잘 모르면서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는 꾸지람을 듣곤 한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한국의 은행에서 일하잖아요."
애교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 찌푸려졌던 고객의 표정이 금새 펴지곤 한다고 한다.
"너 왜 그렇게 한국말을 배우려고 안달을 하니?"
어느 날 한국어 책에 매달려 있는 딸을 보며 엄마가 물었다.
"시집 잘 가려고."
"네 신랑도 어차피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을 얻을 것 아니니?"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영어를 모르면 어떻해. 나는 시부모님 모시고 살 거야. 결혼은 둘 이만 하는 게 아니잖아. 한국어 열심히 배워서 시부모님하고 잘 지내야지."
기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엄마뿐만이 아니다. 전해 듣는 우리들도 가슴 훈훈하기 그지없다. 평소에 보아온 그 학생의 사람됨됨이로 보아 시부모 모시고 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선다.
우리 말 사랑, 시부모 섬김, 나라 사랑하는 마음, 한국의 젊은이들에게서 살아져 가고 있는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그 학생은 어디에 그리도 곱게 간직하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