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제언·칼럼

오른 손

20여년전 일이다. 


집에서 교회까지 전동 휠체어를 이용해 가려면 20분 가량 걸린다평소에는 그렇게 교회에 가는 것이 힘들지를 않았다그러나 장애아동 반을 맡아서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사정상 아침 일찍 교회에 가는 날, 혹은 날씨가 추운 날에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교회에 가는 것이 좀 힘들다차를 이용해서 가면 5분이면 춥지 않게 편안히 갈 수 있는 거리다그러나 차를 이용하면 무거운 전동 휠체어를 가지고 가기가 어려워서 수동식 휠체어를 가지고 가야 하는 데 손에 힘이 약해 휠체어 미는 것이 시원치를 않아 아이들 가르치는 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그래서 좀 힘들더라도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아침 일찍 교회에 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 주일 아침은 유난히 추웠다다른 데는 두텁게 옷을 입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속도 방향 조절기를 조작하는 오른 손은 찬바람에 노출이 되어 있어 한참 가다보니까 손이 꽁꽁 얼어붙는다양쪽에 조절기가 달려 있으면 손을 바꿔가면서 운전을 하면 한 손씩 호주머니에 넣어가면서 운전을 하면 한결 나을 텐데, 전동 휠체어는 한쪽으로만 조절하게 되어 오른 손만 추위를 타고 있는 것이다왼손은 따뜻하게 호주머니에 들어 있고 오른 손만 고생하는 것이 문득 불공평해 보였다.


전동 휠체어를 주문할 때 휠체어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조절기를 어느 방향으로 달고 싶으냐고 물어왔다나는 서슴없이 오른 쪽이라고 대답했다나의 오른 손은 불완전하게 손가락만 조금 움직일 수 있을 뿐 다른 기능은 소아마비로 인해 거의 다 상실해 버렸다팔이 올라가지 않아 일상 생활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사람들이 악수를 청해 올 때 팔을 내밀지 못해 상대편으로 하여금 조금씩은 무안하게 만들어야 했고 글을 쓸 때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인해 왼손을 이용해야 했다.  


우리 나라 글씨는 유난히 왼손으로 쓰기가 어렵게 구조되어 있는 것 같다오른 손을 쓰지 못해 받는 불이익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오른 손 하나만 제대로 사용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오른 손이 더 불편하고 왼손은 좀 나은 편이다조절기는 조이스틱 하나만 전후좌우로 가볍게 움직여만 주면 되기 때문에 손가락 몇 개만이 움직이는 오른 손으로도 조작하는 데 전혀 불편이 없다다른 부분을 왼손을 이용해 처리하기 위해 선뜻 오른 쪽에 조절기를 부착해 달라고 말을 한 것이다오른 손으로 조작하는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고부터 생활이 훨씬 편리해 졌다.  


왼손으로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들고 원하는 좌석에 불편없이 갈 수가 있게 됐다운전도중 자유로워진 왼손으로 책장을 뒤질 수도 있고 물건들을 손쉽게 옮길 수도 있다건강한 사람들이야 그런 것들이 사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 같은 장애인에게 한 손을 좀더 편리하게 놀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 일인지 모른다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면서 내가 가진 가장 큰 기쁨은 다섯 살 짜리 아들과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백화점에서, 공원에서, 여행 중에 아들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는 희열에 가까운 기쁨이다수동 휠체어는 두 손으로 바퀴를 굴려야 하기 때문에 손잡고 걷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아들에게 아빠로서 꼭 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번쩍 안아 올려 목마도 태워주고 싶었고 함께 운동도 하고 싶었다더욱 간절한 것은 다정한 얘기를 나누며 손잡고 걷는 것이었다.  


전동휠체어를 갖게 되면서 그 꿈이 이루어졌다처음 백화점에서 아들의 따뜻한 손을 잡고 걸었을 때의 그 감격이 가시지를 않는다그 기쁨은 요즘에도 계속되고 있다틈만 나면 아들과 손을 잡고 걷는 것이다전동 휠체어가 준 큰 기쁨 중의 하나다그런 편안함을 제공해 주던 오른 손이 아침 찬바람으로 인해 그날은 유난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나는 생각다 못해 오른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몸을 한편으로 기울인 불편한 상태로 왼손을 이용해 운전을 해보았다그러나 쉽게 운전이 되어지지를 않는다


휠체어가 가는 방향이 고르지를 않고 전혀 생각지 않은 방향으로 비켜나가곤 한다차도 한편을 이용해 가고 있었던 만큼 잘못하면 교통사고의 위험도 있겠다 싶어 운전을 포기하고 잠시 손을 녹였다다시 오른 손을 꺼내 운전을 했다휠체어가 그렇게 잘 나갈 수가 없다나는 새삼 대견스러운 마음으로 오른 손을 내려다보았다그래, 너도 너에 꼭 맞는 할 일이 있었구나아들아이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기쁨, 성경책을 들고 갈 수 있는 기쁨, 두 다리 멀쩡한 사람이 피곤해 하는 넓은 백화점 쇼핑 때도 피곤함 없이 조금도 지치지 않고 다닐 수 있었던 것들, 그런 모든 것들이 너의 도움 없이는 힘들었을 거라는 사실을 이제야 절감한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또 다른 기쁨 하나가 고개를 든다교회의 장애인 반에 있는 아이들도 마치 내 오른 손처럼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능해 보여도 이 사회의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 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사실 우리 장애인 반의 아이들과 가까이하면서 마음이 적잖이 무거웠다이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한인간으로서의 역할 면에서 떳떳한 자리 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은 때로 내게 아픔이상의 무게를 실어주곤 했던 것이다왜 이렇게 태어나야 했는가이 아이들로 인해 겪는 부모들의 그 처절한 아픔의 의미는 무엇인가그리고 이 아이들은 사회에 어떻게 적응해 나갈 것인가?  


열정에 비해 효과는 지극히 낮은 교사들의 뜨거운 가르침의 의미는 무엇인가무엇하나 명확한 답이 없으면서 장애아동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위선, 혹은 무위의 작태인 것처럼 느껴지는 때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다른 것은 몰라도 이 아이들의 삶의 의미 하나만이라도 명확히 알고 일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런 내게 하나님은 시린 오른 손을 통해 귀한 깨달음을 주신 것이다문득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이 세상은 가진 자들이 득세하는 곳이다권세를 같고, 명예를 갖고, 돈을 같고 높은 지식을 갖는 그런 사람들만이 우러러 보이고 그 외의 사람들은 무능해 보이는 곳이 세상이다사랑이나 따뜻한 마음 같은 것들은 잠시 좋아 보이기는 해도 그다지 가치가 있어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그런 편협된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 장애인 반의 아이들은 마냥 무능해 보일 수밖에 없다마냥 무가치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편협된 생각을 버리고 조금만 크게 마음의 눈을 떠본다면 세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되는 단순구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정신에 부담을 줄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왔고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삶을 조금 편하게 살 수 있는 '얻음'때문에 혈안이 되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삶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다만 너무 경황이 없어서 그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너무 미숙하다앞서 열거한 것들을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을 고정시키고 사는 삶은 불행한 삶임에 틀림없다세상은 그 이상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좁은 시각으로 하나님의 제일 귀한 창조물인 장애인반 아이들에게 삶의 가치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댄 스스로가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사실 주변의 장애 아동과 부모들을 보면서 눈물겹도록 감동 받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교실에 도착하면 몸이 불편한 나를 돕겠다고 가방에서 준비물들을 꺼내주던 바울이의 그 따뜻한 마음, 누구보다도 다정한 음성을 가지고 있는 세라의 사랑의 말들, 전신이 굳어있는 어린 대영이를 간호하느라 몇 년을 밤잠을 설치면서도 항상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 위대한 두분 부모님의 사랑그런 것들을 명예, 권세, 혹은 돈 몇 푼과 비교할 수 있을지아직도 하찮은 것들에 너무 큰 비중을 두고 있는 편협된 눈을 가진 나와 세상 사람들에게 그런 위대한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세상에 우리반 아이들을 주셨는지도 모른다그 동안 내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발견하지 못했던 오른 손의 가치가 이제 부각되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세상의 편협된 의식을 깨고 너희들이 주는 그 사랑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는 때가 속히 오기를 기도해 본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