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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교사가 죽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억울한 죽음이다. 원통한 죽음이다. 교사이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교사는 부귀와 권력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명예를 먹고산다. 그 명예가 훼손되었을 때 교사는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 체벌, 따돌림, 성폭력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범죄다. 사실 여부를 떠나 교사가 이런 사건에 연루되면 그 스트레스와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누명을 쓰고 살아갈 자신이 없다’
 
부안에서 성희롱 혐의를 받던 50대 중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은 현재 우리 교사들의 교권이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내사 종결했지만 교육청 학생인권센터의 지속적인 수사와 감사로 심리적 압박을 받던 교사는 결국 8월 5일 자택 주차장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그의 호주머니에서는 A4용지 반장 크기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의 내용은 이렇다. ‘너무나 억울하다. 이런 누명을 쓰고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다. 가족 모두에게 미안하다.’
 
다리를 떨면 복이 나간다고 무릎을 치고, 반지를 빼달라고 해서 손가락을 만진 것이 돌연 성추행과 성희롱으로 둔갑되고 말았다. 아니라고 정말 그게 아니라고 제자에 대한 충고와 보살핌이었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교사의 말은 묵살됐다. 학생의 인권만 있고 교사의 인권은 없었다. 결국 교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말았다.
 
학생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장난으로 쓴 것이라고, 야자 때 서운하게 대한 것 때문에 선생님을 골탕 먹이려고 철없이 쓴 것이라고 울며불며 용서를 빌었지만 선생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허망한 노릇이다.
 
비단 이번 사건은 결코 그 교사만의 비극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소름끼친다. 필자도 올해 초 한 학부모님의 투서로 곤경을 겪은 적이 있다. 익명성을 이용해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아보지도 않고 학생의 말만 듣고 SNS에 글을 올려 주변 사람들로부터 큰 걱정을 들었다. 학부모님께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함으로써 오해가 풀렸지만,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힌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교사가 소신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될지 난감하다.
 
억울한 죽음, 다시는 없도록 해야

이번 기회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교원지위법 개정안의 통과를 간곡히 요청한다. 여론 몰이에 희생되지 않도록 교사들에 대한 권익을 명문화해 주기 바란다. 이것은 곧 수렁에 빠진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길이며 바닥까지 추락한 교사들의 사기를 다시 끌어올려 학교 현장을 더욱 건강하게 다지는 일이다.
 
유사 이래 요즘처럼 교사들의 사기가 떨어진 적도 없는 것 같다. 정부와 교육 관련 단체들은 한 교사의 희생을 교훈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대책을 강구해주길 바란다. 억울하게 목숨을 끊은 교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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