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3 (금)

  • -동두천 26.7℃
  • -강릉 22.9℃
  • 서울 26.1℃
  • 대전 24.3℃
  • 대구 25.4℃
  • 울산 26.2℃
  • 박무광주 29.2℃
  • 구름많음부산 29.5℃
  • -고창 26.8℃
  • 흐림제주 33.6℃
  • -강화 25.4℃
  • -보은 21.9℃
  • -금산 25.8℃
  • -강진군 30.1℃
  • -경주시 24.9℃
  • -거제 29.9℃

문화·탐방

평소 TV를 즐겨보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추석특선영화 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말할 나위 없이 추석특선영화가 평소 즐겨보는 이런저런 프로들과 중복편성되어 있어서다. 같은 특선영화라도 다른 채널과 겹쳐있어 무엇을 봐야 할지 골라 보기가 꽤 어려워 때아닌 고민에 빠져들게 되어서다.

‘장수상회’(감독 강제규)는 그런 어려움을 말끔히 가시게 한 안성맞춤의 추석특선 TV영화(SBS 10월 3일 10시 40분)였다. 1시간 빨리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KBS 2TV)가 시작돼 사실상 겹친 셈이 됐지만, ‘장수상회’와 비교할 바 아니었다. 강우석과 함께 한국영화계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과시한 강제규 감독의 작품이어서다.

2015년 4월 9일 개봉한 ‘장수상회’는 강제규 감독이 ‘마이웨이’ 참패 이후 4년 만에 연출한 영화다. 먼저 평론집 ‘영화, 사람을 홀리다’(201쪽)를 통해 ‘마이웨이’ 개봉 즈음으로 잠깐 돌아가보자. 2011년 12월 21일 아주 ‘센 놈’이 나타났다. 300억 원을 들였다는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정식 인증을 못받아 ‘설’로 떠도는 것과 달리 순제작비만 280억 원을 투입한, 그러니까 한국 영화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를 쏟아부은 대작 ‘마이웨이’가 뚜껑을 연 것.

‘마이웨이’ 이전까지 최대 제작비라는 180억 원의 대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김지운 감독)보다 무려 100억 원을 더 투입한 ‘마이웨이’는, 그러나 214만 2670명 동원에 그쳤다. 손익분기점인 1000만 명은커녕 그 5분의 1정도의 관객에 그쳐 흥행 참패한 것이다.

영화계의 충격은 컸다. 충격이 컸던 것은 1996년 ‘은행나무 침대’를 시작으로 1999년 ‘쉬리’를 거쳐 2004년 1174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강제규 감독의 명성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에도 흥행 3위(‘아바타’부터 치면 4위)에 올라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감독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 강제규 감독이 순제작비 37억 원의 소박한 영화 ‘장수상회’로 돌아온 것이다. ‘장수상회’의 관객 수는 116만 6049명이다. 제작비 대비 ‘마이웨이’보다는 낫지만,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다. 180만 명쯤인 손익분기점에도 미치지 못한 숫자이니까. 강우석처럼 정녕 강제규 감독의 시대도 가버리고만 것일까?

그러나 ‘장수상회’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의미있는 영화이다. 70대 김성칠(박근형)과 임금님(윤여정)이 그들이다. 내 기억으론 70대 노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는 ‘죽어도 좋아’(2002년)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년) 정도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480만 명 남짓한, 믿기지 않는 관객을 동원했다. 그것들 공통점은 다큐영화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관심을 끌만한 영화인 셈인데, 116만 명은 조금 끌다가 만 모양새라 할 수 있다. 강감독의 흥행실패와 다르게 이후 두 배우는 영화의 주연으로 당당히 나서게 된다. 2016년 박근형의 ‘그랜드파더’와 윤여정의 ‘죽여주는 여자’가 그것이다. ‘죽여주는 여자’의 경우 12만 1452명 동원으로 성공한 독립영화가 되었으니 그 감회가 오죽할까.

알고 보면 ‘장수상회’는 ‘치매 아버지 구출작전’ 영화이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고약한 노인네가 앞집으로 이사 온 할머니와 연애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던 관객들이 깜박 속은, 반전이 허를 찌르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일상적 디테일과 리얼한 현실의 촘촘한 묘사가 박진감을 한껏 안겨준다. 효도라든가 가족의 의미가 비교적 잘 그려져 있다.

성칠이 민정(한지민)을 향해 “니가 내 딸이지. 그런데 악착스럽게 기억하려는데 기억이 안나”하는 데서 뭔가 뭉클함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재미있고 유쾌하게 볼 명절용 영화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로코에서 갑자기 사회극으로 바뀐 모양새인데, 결국 치매며 췌장암 말기 등 죽음과 가까운 우울하고 심각한 이야기라서다.

그런 반전이 외롭고 쓸쓸한 노인의 여생(餘生)을 하필 사랑의 포로로 만드냐는 불만을 가시게 하지만, 다소 의아하게 느낀 점은 여전히 남는다. 가령 박양(황우슬혜)이 조폭소녀들로부터 장수(조진웅)의 딸 아영(문가영)을 구해내는 갑작스런 코믹모드가 그렇다. 70세 버스기사(백일섭) 에피소드가 주는 유머와 다르게 전체구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 느낌이다.

특별출연한 임하룡의 해병대 출신이면서 맛이 살짝 간 캐릭터는 상징성이 크지만,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에서 슬퍼하는 김성칠 모습 역시 좀 아니지 싶다. 아영 구하기 에피소드와 다르게 그의 갑작스런 죽음 장면이 분명 필요하긴 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잘 챙긴 일상적 리얼리티에 균열이 좀 생기는 듯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