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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듬이 들에 선 남해아이들



화전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세 번째 탐방 학습 『섬진강 체험길 걷기와 토지 문학관 둘러보기』가 시월 한 가운데에서 열린다.

가을비 그친 다음 날 파란 하늘을 보듬은 하동 평사리 무듬이 들판의 짙은 겨자색 가을이 남해 아이들의 가슴에 가을동화로 물들기 시작한다.

섬진강을 따라 오른다. 무듬이 황금 들판엔 말라져 가는 콩 이파리가 바람에 수런거리고 곳곳엔 바람의 흔적이 실루엣으로 남아있다. 무엇을 새기려고 했을까? 물결치듯 그리움은 ‘우우우~’ 가을로 익어간다. 이 평사리 들판에 아이들의 웃음은 청아하게 날아올라 구름에 스며 하얀 문장을 새긴다.

남해아이들! 섬이며 마늘농사에 바쁜 남해에서 넘실거리는 넓은 가을 들판을 보고 거닐기는 어려운 일이다. 시선을 발끝에서 위로 옮기면 진한 노랑, 군청색 산, 코발트블루 하늘과 하얀 구름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자리 잡는다. 가을 햇볕 아래 넉넉함이 아이들의 얼굴에 배어난다. 그늘이 없다. 공부, 학원, 스마트폰에 시달린 몸과 눈이 숨표와 쉼표를 찍는다. 넓은 들길은 엄마의 품 안이다

형제봉을 바라보며 부부송과 동정호를 지나는 동안 아이들의 걸음은 느려진다. 소금기 머금은 바람에 익숙해진 후각은 지리산 자락에서 풀어내는 산바람과 에돌아 감는 섬진강 바람을 낯설게 만난다. 눈은 더 풍요로워 진다. 태양을 등지고 들판을 보면 역광일 때와 또 다른 부드러운 노란 물결이 진하게 발목을 잡는다. 가을 들판이 물든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시를 쓰기 시작한다. 친구끼리 도란도란 가을 이야기도 나누고 유리알보다 투명한 물길도 보고 앞서가는 친구의 어깨도 건드려 본다. 빠름이 잦아드니 모든 게 여유롭고 행복하다. 오늘 아이들은 무듬이 들 가을 무대에 주연이 된다.

허수아비가 늘어선 들길을 지난다. 익살스러운 표정을 보며 까르르 웃는 웃음이 옥구슬처럼 메아리친다. 샹그릴라가 따로 있을까? 조금 더 가을 들판을 거닐고 싶지만 아쉬움을 달래며 박경리문학관으로 향한다. 이제 낮은 곳에서 젖은 마음을 높은 곳에서 조망하며 달래고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경사진 길 양옆에는 배꼽부터 붉게 번져가는 대봉감이 주렁주렁 반기고 있다. 주여 가을 햇살을 더 놓아 주소서 떫은맛에 단맛이 깃들 수 있도록! 릴케의 가을날이 발효로 일어서고 한창이었던 코스모스는 씨앗이 여물고 아직 지지 않은 몇 송이는 떠나는 가을 하늘을 부여잡고 한들거린다.

우리 아이들 마음이 참 예쁘다. 구부러진 허리에 홍시 감 함지를 들고 가는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준다. 한 녀석은 떨 채를 든다. 잠시 뒤 풍겨오는 단내와 시큼함. 할머니가 주셨다며 홍시 감을 먹으며 걸어오고 있다. 그래 저 모습이 시골 아이 모습이다.

이틀 전 일이 떠오른다.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텃밭에 심은 목화에서 어린 다래를 따왔다. 이미 벌어진 다래에서 솜도 뽑았다. 다래가 이런 맛이라며 맛을 보자고 했다. 어린 다래 속살을 잎에 넣자 달착지근하면서도 약간 떫은맛이 유년의 기억을 불러온다. 하지만 아이들은 금세 뱉어버리며 이게 무슨 맛이냐 한다. 먹거리 많고 인공 감미료에 길든 요즘 아이들의 입맛이 안타까웠다. 이제 이런 기억은 영원히 잊힐 것이다. 설령 이뿐일까? 소설 토지 1부 2권에 간난 할멈의 장례식 날 열두 상두꾼이 멘 상여의 상두채에 올라서서 앞소리 하는 서서방의 상두가도 들을 수 없다. “어하넘 어하넘/ 어나라 남천 어하넘~” 시대의 조류에 따라 삶이 변하는 것을 어찌 탓하랴만 도시화와 간편함, 빠름을 추구하다 보니 장례식장 이용이 일상화되었고 상엿소리는 단지 채록된 글과 녹음을 통하여 들을 수 있다.

박경리문학관과 최참판댁에서도 가을은 진하게 배어난다. 느림을 추구하는 취지에 맞게 아이들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넘나든다. 최참판댁 사랑채 담에 기대니 무덤이 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넓게 보려면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여유를 가져야 한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의 말이 의미 있게 다가선다. 아직 아이들에게는 걸맞지 않지만 토지를 탈고하기까지 이십육 년 쉼 없이 달려온 작가의 고통이 그대로 묻어있다.
푸기 어린아이들은 별당, 안채, 사랑채를 거닐며 소설 속 배경에 빠진다. 안채에서 사랑채로 통하는 담장 가에 물들기 시작하는 주홍빛 감잎이 주름진 기와지붕 용마루 뒤 솟아난 미루나무 꼭대기 뒤로 물러선 파란 잉크 빛 하늘에 대비되어 아련한 문신으로 남는다.

앞날은 이 아이들의 무대이다. 가까이 보면 빨라지고 수평선과 지평선보고 달리면 너른 마음이 된다. 이 마음은 서로를 감싸주고 보듬게 한다. 이게 느림의 미학으로 만나는 길 위의 인문학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바래길, 산길, 무듬이 들길을 걸은 기억이 남해 아이들의 마음을 넓게 하고 빠름과 느림이 필요한 순간을 아는 비교의 감성으로 싹이 트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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