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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선생님, 흥분하셨어요?


교사 경력 십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수업 중에 흥분만 하면 갑자기 적절한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아 당황하곤 한다. 5교시 수업시간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시작하는 5교시는 말 그대로 마의 시간이다. 더군다나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요즘엔 말해서 무엇하랴. 더구나 재미없는 '국어생활' 수업. 설상가상으로 맞춤법 시간이었다. 나는 칠판에 판서를 해가며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수컷을 뜻하는 접두사는 '수'로 통일한단다. 예를 들어 '숫놈'은 '수놈'으로, '숫소'는 '수소'로…."

한참 설명하고 있는데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들더니 "선생님, 어느 동물엔 '수'를 붙이고 어느 동물엔 '숫'을 붙이던데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 보니 나는 또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으래, 호, 혼란스럽지? 그렇지만 '수'에 사이시옷을 붙이는 동물은 숫양, 숫염소, 숫쥐밖에 없으니까, 이 세 개만 외우면 돼. 아참, 그렇구나. 양념쥐! 바로 양념쥐라고 외우면 되겠구나!"

이 한 마디에 꾸벅꾸벅 졸던 녀석들이 와하하 웃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있던 녀석이 대뜸 "선생님, 또 흥분하셨어요?"한다.

"왜, 내가 흥분한 것 같니?"
"그럼요, 선생님 흥분하셨으니까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왔죠?"

다음날, 옆반 수업을 들어가는데 어제 내 수업을 들었던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선생님, 양념쥐 대박이에요."
"선생님 말씀대로 하니까 너무 쉬워요. 선생님 앞으로도 자주 흥분 좀 해주세요."

녀석들의 말을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래, 앞으로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자주 흥분해 주마. 까짓 제자들을 위해서라면 내 체면쯤이야 무슨 상관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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