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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피노키오의 편지 2

6학년이 되어서 반장으로 임명이 되고 앞장을 서서 학급일을 처리해 가고 효자가 되었다고

6학년 때에도 우리는 반을 다시 나누지도 않고, 담임선생님도 다시 우리를 맡으시게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저 말썽꾸러기들을 아주 맡아서 졸업을 시켜야겠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교장선생님께 우리 선생님은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고 합니다.

“교장선생님, 제가 그 아이들을 맡아서 졸업까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허락을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그 아이들을 맡아서 꼭 구제해야 할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성적은 별로고 말썽꾼이지만 이 아이를 반장을 시켜야 하겠습니다. 이것만은 허락을 해 주십시오.”
하고 강력하게 말씀을 하시자, 교장선생님도 정수는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쾌히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6 학년 때는 정수가 1 학기 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정수가 반장을 한다고 하자 모두들 웃어버렸습니다. 그 말썽꾸러기가 어떻게 반장을 하느냐고 따지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너희들은 모른다. 앞으로 정수가 어떻게 하는지 봐라.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두고 보도록 하자.”
하시면서 그날 오후부터 선생님은 정수를 붙들고 반장이 할 일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날부터 정수는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청소시간이 되면 앞장을 서서 청소를 하고, 다른 아이들이 안하고 놀고 있으면 같이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잘못을 저질러도 선생님은
“김정수 ! 반장이 되어가지고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하시면서 꾸짖으셨습니다. 숙제를 안 하고는 못 배기도록 해서 만약 안 해 온 날은 그 날 오후에 남아서 기어이 다 하고 검사를 맡아야 보내 주셨습니다.
정수는 조금 못 견뎌 하면서도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반에서 약간 부끄러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학교도서관에 두어야할 월간잡지의 부록으로 나온 만화책을 우리 교실에 두었는데, 이것이 조금씩 없어지더니 어느새 반도 넘게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여기 좀 보아라, 여기에서 여기까지 이 만화책이 각권마다 20권씩이 꽂혀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가량이 없어지고, 요것만 남았으니 이걸 누구 다른 반이나 도둑이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반의 너희들 집에 보려고 가져다 둔 사람은 내일까지 모두 가져다 두도록 하여라.”
하고,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겨우 다섯 권이 돌아왔을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책을 잊어먹은 것도 화가 나셨지만, 우리 반의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속이려고 한다는 것이 마음 상해 하셨습니다.
“너희들을 도둑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전번에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책이 안돌아오고 있으니, 이것은 도둑이 되는 것이다. 이젠 너희들이 이 책을 모두 찾거나 도둑으로 불리거나 한 가지를 해야 하게 되었다. 어떻니 너희들을 도둑이라고 해도 괜찮겠니?”
선생님이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 날 오후 공부가 끝나고 모두들 돌아가고 나자, 정수는 선생님에게로 다가가서
“선생님, 제게다 교실 열쇠를 좀 빌려 주십시오.”
하고,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의아한 눈으로
“무엇하려고 ?”
하며, 정수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제가 만화책을 찾아 놓겠습니다.”
“어떻게 찾는단 말이냐 ?”
“죄송하지만 사흘만 시간을 주십시오.”
“글쎄, 어떻게 하려고 그래 ?”
“다 찾아 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수는 한사코 말씀을 드리지 않고 열쇠만 달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하는 수 없이 열쇠를 정수에게 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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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후에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 우리들 중에 몇 사람은 정수에게 불려갔습니다.
“야, 영춘아, 우리 선생님이 내게다 열쇠를 맡기셨다. 이 열쇠를 줄 테니까 너 교실에 들어가서 만화책 세 권만 가지고 나올래. 그럼 우리 오늘 저녁 내내 공짜로 만화를 볼 수 있잖니 ? 너도 해봤지 ? 난 딱 한권 가지고 갔는데 ,우리 선생님은 그런 것을 모르시더라.....”
하고 달래니까, 영춘이는
“나는 두 권을 가져다 팔아먹었어. 아까는 아실까봐 무섭더라야.”
“뭘 네가 두 권만 가져가, 유건이가 봤는데 다섯 권이나 가져갔다고 하던
데....”
이때서야 영춘이는 ‘아차’하고 생각을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가져간 다섯 권을 가져다 놔. 만약에 안 가져다 놓으면 내가 친구들에게 모두 다 털어놔 버릴 테니까.”
“아냐, 난 정말 세 권 밖에 안 가져갔어...... ”
“또 거짓말, 아깐 두 권이라고 했는데 이제 왜 세 권이니 ?”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불려갔던 아이들은 모두다 몇 권씩을 가져다 두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단 하루만 시간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무소리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자기가 가져다 팔거나, 바꾸어 버린 책보다 한두 권을 더 가져오라고 하여도 이젠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영춘이,상수,종식이,춘식이,종갑이,윤숙이,상미 그럭저럭 열명 가까이 된 아이들이 모두 걸려서 할 수 없이 책을 사와야 했습니다. 물론 한두 권은 더 맡았을는지 몰라도 자신이 한 일이 있으니까, 아니라고 버틸 수도 없었습니다. 정수는 우리가 가져다 판 책방의 단골이었으니, 만약 아니라고 했다가 아저씨하고 직접 대면을 하면 자신이 곤란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책방아저씨에게 물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하나 찾아서 꼼짝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사흘 만에 책장에는 만화책이 거의 다 돌아 왔습니다. 우리들도 놀랐지만 선생님도 깜짝 놀라신 눈치였습니다.
이렇게 책을 거의 다 찾아다 놓고서 정수는 또다시 책을 읽기에 골몰하였습니다. 며칠동안이나 책읽기에 정신을 팔던 정수가 선생님께로 다가서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선생님, 나도 선생님 댁에 공부하러 가면 안 됩니까 ?”
“왜, 정수가 공부하러 다니려고 ?”
“네, 저도 밤공부를 하고 싶어요.”
“좋아. 네가 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오너라. 난 못 오게 하지만 다른 학교 애들이 몇몇이 와서 하니까, 같이 해보렴. 네게는 돈을 안 받을 테니까. 그렇지만 곧 그만 둘 것이면 안 오는 게 좋아.”
이 무렵에는 선생님 댁에 가서 모자란 공부를 더 배우는 것이 유일한 과외 공부였기 때문에 선생님이 불편하시다고 대문을 걸어 잠궈도 가만두지 않고, 담을 넘어서라도 쫓아다니면서 과외 공부를 시켜 달라고 조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딴 아이들은 집안이 넉넉하여 선생님께 조금씩 돈을 내고 다녔지만, 정수는 그럴 형편도 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정을 알고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정수는 그 날부터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선생님 댁으로 달려갔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하던 아이들은 눈이 둥그레 가지고 정수를 바라보면서
“선생님, 정수도 공부하러 오는 거예요 ?”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 지금까지 정수가 공부를 하지 않고 말썽을 피웠지만, 이제부터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착한 어린이가 되겠다고 약속을 하여서, 오늘부터 여기서 함께 공부하기로 하였으니, 너희들도 모두 함께 잘 지낼 수 있었으면 고맙겠다.”
“정수도 오늘부터 이곳에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나 동생들도 모두 한
형제처럼 지내도록 해야 한다. 알겠지 ?”
선생님이 다짐을 하자 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이미 정수네 패들에게 한번쯤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두 정수를 싫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서워서 감히 싫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뒤에 숨어 앉아서 눈짓으로 서로 싫다는 표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 이제 정수가 이 아이들에게 앞으로는 잘 하겠다고 약속을 해야지 ?”
하고, 말씀을 하시자 정수는
“친구들아, 이제 나도 나쁜 짓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아마 너희들은 나를 아직도 나쁜 짓만 하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이제부터는 착한 어린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단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희들에게만은 절대로 나쁜 짓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너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도록 보호를 해주도록 할 것이니 아무 염려도 말아라.”
제법 의젓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친구들에게 꾸벅 절까지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그 소리에 너무 반가웠던지 박수까지 쳤습니다. 이렇게 되니 방안의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지고, 더구나 아이들은 이제 동네에서 무서운 것이 없게 되었으니, 한시름을 던 셈이 되었습니다.
“야, 이제 나도 정수형이 말려 준다고 해야지.”
“딴 아이들이 때리면 정수형 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아이들이 떠들자, 정수는
“야, 이제부터 누가 건드리면 나한테 말만 해.내가 혼을 내어 줄 테니까.”
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신이 보호자가 되어 주겠노라는 결심을 말하자, 아이들은 정말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수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부터 아주 싹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공부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발표를 하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이 못 푸는 문제를 정수는 자신 있게 풀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니 학급에서 아이들도 정수를 다시 보게 되었고, 반장으로 할 일도 꾸준하게 잘 하였으며,전체 아이들이 반장의 말을 잘 듣게도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아이들이나 학급이나 모두 조용하고 차분하게 잘 운영이 되었습니다.
말썽꾸러기 정수라고 읍내에서는 모두 다 알만큼 소문이 난 아이였습니다. 오죽하면 파출소, 경찰서에서도 가끔씩 학교로 전화를 해서 정수를 찾아가라고 전화를 할 만큼 말썽을 피우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정수가 이제 이렇게 변해서 착한 아이라는 소문이 나돌게 되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변화라고 해야 할일 이었습니다.더구나 이젠 공부도 제법 잘해서 우등상을 받을 만큼 성적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중학생이 되자 우리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습니다. 그래도 정수는 가끔 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아마 나는 영영 나쁜 아이로 자라고 말았을 것이야. 난 그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어.”
하고, 그때를 이야기 하곤 하였습니다. 중학생이 된 정수는 1학년 때 우리들의 추천을 받아서 반장이 되었고, 다른 반에 지지 않기 위해서 저녁 늦게까지 환경정리를 하기도 하고, 우리 반의 아이들이 다른 반 아이들에게 얻어맞았다고 하면 가만두지 않고 기어이 혼을 내어주기도 하여서 우리들은 정수를 무척 남자답고 고마운 아이라고 생각을 하며 자랐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할 무렵에는 아이들이 조금만 공부를 잘해도 모두 큰 도시의 유명한 학교로 진학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등생의 실력을 가지면 충분히 좋은 학교로 진학을 할 수 있는데도 정수는 한사코 읍내에 있는 농고로 진학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집의 형편이 자기가 대학에 진학을 할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어머니가 생선을 머리에 이고 다녀야 하는 처지에 자신이 대학에 진학을 한다는 것이 너무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정수야, 네가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만 가면 내가 생선 장수를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럽겠다. 대학을 가게 공부만 열심히 해라.”
어머니가 이렇게 당부를 해도 정수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제가 공부한다고 집을 떠나면 어머니 혼자서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어머니 일을 도와드리지 못한다고 해도 내가 집에서 집안을 돌 봐야 하지 않겠어요?”
하고, 말하는 정수의 결심은 굽힐 수가 없어 보였습니다. 정수는 중학생이 되어서 학교에서 돌아가면 집안일을 거의 다 해왔습니다. 집이 높아서 물을 길러다가 먹던 시절이었으니까, 물을 길러다 두는 것은 물론 집안 청소며 연탄 갈기나 조그만 집안의 손볼 곳은 스스로 다 손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정수가 없다면 어머니가 여간 일이 많을 것은 물론입니다. 정수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생선을 이고 시장이나 골목골목을 헤맬 때 자신은 편안하게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만도 죄송스럽고, 어머니께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처지여서 정수는 절대로 대학엘 가지 않기로 마음을 다졌습니다.
정수는 자기의 생각대로 농고에 진학을 하여 근로장학생으로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녀서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또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농협이나 지도소등의 농업지도기관에 취직도 할 수 있어서 가까이 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머니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정수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면서는 아주 샌님과 같이 학교일을 하는 것과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일에만 매달려서 친구들과 놀러도 가지 않고 시계추처럼 학교와 집 사이를 오가기만 하였습니다. 아무리 친구들이 놀러를 가자고 하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느 가을날 정수 어머니는 역 앞에서 그렇게도 고마우신 우리 선생님을 만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선생님을 보자 너무 반가워서 비린내 나는 손인 것도 잊고 달려가서 선생님의 손을 덥썩 잡았습니다.
“선생님 ! 정말 오래 간만입니다. 어디로 가셨는지 영 뵐 수가 없더니, 오
늘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저를 모르시겠지요? 제가 김정수 애미입니다. 늘 우리 정수가 우리 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도 못 잊어 하고 있습니다.”
하고, 선생님의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몹시 반가우면서도 얼른 생각이 안 나신다는 듯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선생님, 이리 오세요. 약주 한잔만 하시면서 우리 정수 얘기 좀 들어 보
세요. 우리 정수가 선생님 덕분에 아주 효자가 되었답니다.”
하고,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그때서야 선생님은 말썽꾸러기 시절의 정수ㅡ를 떠올리면서
“그럼, 저기 시장 가는 길목에 살던 김정수 어머니시란 말씀이시군요?”
“예에. 이제야 생각이 나셨나 봐요.”
하자, 선생님은 반가이 어머니를 따라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막걸리 한 잔을 시켜 놓고서 정수 어머니는 선생님의 손을 다시 거머쥐면서
“선생님 , 우리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정수는 사람 노릇하지 못
했을 것이에요. 나는 벌써 그때 내 자식이지만 포기를 하고 있던 때였으니까요. 애미가 머리에 이고 생선장수 나갈 돈까지 몽땅 가지고 나가서 써버리고 나서야 집에 돌아오는 그런 자식을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지요. 그런 망나니 같던 정수가 선생님께서 바로 잡아 주셔서 지금 농고에 다니면서 장학금을 받고 다니고, 학교에서도 칭찬이 대단하답니다. 그뿐이 아니에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일을 어찌나 잘 하는지 이 애미가 저녁에 집에 가면 밥상을 다 보아 놓았다가 저녁을 차려 주고, 어머니, 다리 아프시지요 ? 하면서 팔다리를 주물러 주는 아주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자가 되었어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우리 정수를 사람 만들어 주셨는데 보답도 해드리지 못하고 정말 죄송합니다.”
넋두리를 하듯이 정수 어머니의 말씀은 계속 되었습니다.선생님은 너무나도 변해버린 정수의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한없는 기쁨을 맛보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교사로서 가장 보람찬 순간을 경험하고 있으시는 것 같았습니다.선생님은 반가움에 얼굴에 발그레 홍조를 띄시면서
“어머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우리 정수를 저도 한번 보고 싶습니다만,
지금 서울로 올라갈 차표를 가지고 막 떠나려던 참입니다, 무엇보다 말썽꾸러기 정수가 그렇게 착한 아이가 되었다는 게 저도 한없이 고맙고, 반갑습니다. 부디 더 착하고 부모님을 위해드리는 효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도 더 건강하셔서 정수가 성장하여 훌륭한 젊은이가 되는 것을 지켜보시도록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술 잘 마셨습니다.”
하고, 딱 한 잔의 술을 드시고는 미안하다는 말씀을 거듭하면서 자리를 뜨셨습니다. 정수 어머니는 따라 나와서 대합실의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를 거듭하셨습니다. 대합실의 많은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채 우리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모두들 머리를 기웃거렸습니다.

 
피노키오의 편지
선생님 제 이름을 잊지 않으셨겠지요. 선생님의 제자 김정수입니다. 선생님이 주신 피노키오를 읽고 오늘의 제가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그때 선생님께서 제게 읽히셨던 피노키오 책은 지금도 저의 책상 위에 단정히 꽂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읽히기 위해서 일부러 그 책을 놓고 가셔서, 저는 그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고, 그 책을 읽었던 그날부터 저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신 선생님은 저를 더욱 더 확실하게 붙들어 놓기 위해서 저를 반장을 시켜주셨고, 그래서 저는 난생 처음으로 학교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고, 저는 그때부터 학교생활이 그렇게 신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그 많은 아이들이 우글거리는 선생님 집에서 밤공부를 하면서도 선생님이 저를 그렇게 감싸 주셨기 때문에 아이들이 나를 따르게 되었고, 나는 그 아이들을 돌보아 주므로 해서 동네에서 다들 이젠 아주 얌전한 학생이 되었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되니 저는 더 이상 나쁜 짓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한번 착한 아이라고 칭찬을 받고 보니 더 착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고, 나쁜 짓은 할 수가 없어졌지요. 저는 그 덕분에 아주 착한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선생님을 생각하며, 더 착하고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여서 그럭저럭 우등상을 받을 만큼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큰 도시로 진학을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어머니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농고로 갔습니다. 아직도 충분히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고 생각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나쁜 아이라는 말은 이제 듣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오직 선생님의 인도로 그 조그만 책 피노키오 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께는 정수라는 이름보다도 피노키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말 피노키오 처럼 착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후 지금까지 그런대로 잘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좀더 자라고 성인이 되어서 선생님을 찾아 뵐 때 그때도 이처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을 하겠습니다.
선생님, 어머니께서 선생님을 만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져서 이 편지를 씁니다. 선생님 더욱 건강하시고 더 좋은 가르치심으로 저와 같은 아이가 있으면 늘 저보다 더 잘 이끌어서 좋은 아이로 가르쳐 주십시오.저는 또 다른 피노키오 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저 같은 아이가 있다면 모두 저와 같은 피노키오 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1980년 8월 21일
선생님의 은혜로 새사람이 된 피노키오 김정수 드림
편지를 손에든 선생님은 멀리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아련히 떠오르는 그날을 생각하시면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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