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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성공적인 공교육, 학부모 교육도 필수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한 학부모 상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을 맞는다면 그건 뭔가를 얻었을 때가 아니라 잃었을 때일 것이다." -알베르 카뮈


선생님, 우리 엄마가 학교에 전화한대요!


두 달 전 이야기입니다.

국어 시간에 '발가락'이라는 시를 공부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제 공부한 발가락 시 공부 어땠어요?"

"우리 엄마는 참 좋은 공부했다고 좋아하셨어요."

"우리 엄마도 재미있는 공부를 했다고 기뻐하셨어요."

"발가락 그림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한 학생이

"선생님, 우리 엄마는 쫌~"

"왜 그러니? 뭐라고 하셨는데요?"

"엄마가 화를 내셨어요. 네임펜으로 그려서 안 지워지면 학교에 전화 한다고 하셨어요."

순간, 황당했습니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보다 한 단계 높여 재구성해서 우리 반 아이들이 좋아하도록 설계한 수업이었는데....'발가락'이라는 시를 실감 나고 재미있게 공부하기 위해 노력한 수업인데. 양말을 벗기고, 발을 씻게 한 다음, 수건으로 닦고 학습지 위에 각자의 발을 그리게 했고, 자기 발가락이 얼마나 수고하는지 생각해 본 다음, 자기 발가락이나 발톱에 예쁜 그림도 그리게 했습니다. 직접 체험은 시 공부를 할 때도 매우 유익하니까요.


그리고 발가락이 하는 말을 들어보기도 하고 발가락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기, 발가락 그림 사진도 찍어주었습니다. 9쌍의 발가락들이 앙증맞게 모여 있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자기 몸의 소중함도 배우는 시간이어서 좋다고 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내깐엔 아주 행복하고 재미있는 수업이었습니다. 만약 전 날 수업을 복기하며 다시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학부모가 내 수업을 평하면서 아이 앞에서 담임을 험담하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솔직합니다. 우리 그릇처럼 투명합니다. 그러니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상처 받기도 쉽고 깨지기도 쉬운 게 아이들입니다. 나의 수업을 아이 앞에서 폄하한 학부모의 태도는 서운하지만 솔직하게 말한 아이 탓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냥 넘어가는 것 또한 찜찜하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점심 시간이 끝나고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오해를 풀지 않으면, 나의 진심을 알리지 않으면 원만한 교육도 안 될 것이고 나 역시 서운함이 깔려 있어서 아이에게 마음으로 다가서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00이 엄마, 안녕하신가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럽니다.  어제 국어 시간에 발가락 시  공부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 봉숭아 물들이기처럼 얼른 지워지지 않도록 네임펜으로 예쁘게 발가락에 그림을 그림 그리기를 했어요. 교과서에 발가락 시 공부가 나오는데 아이들이 직접 체험해야 좋은 공부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00이 엄마께서 화내셨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국가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더 창의적이고 재미있게 수업한다고 했는데, 드러난 결과만 보시고 그러신 것도 그렇고 불만이 있으시면 제게 직접 전화를 하셔야지 아이 앞에서 선생님 타박이나 험담을 하시면 아이 교육상 좋지 않으니까요. 앞으로는 꼭 제게 직접 말씀해주세요. 아이 앞에서 선생님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하시는 것은 결코 도윰이 안 됩니다. 어떤 말씀도 경청하고 존중해 드릴 것입니다. 부모님과 제가 한 마음으로 가르쳐야 00이를 훌륭하게 가르칠 수 있겠지요?"


아이 입을 통해서 들은 말은 두고두고 마음 한 구석에 남았었는데 솔직한 이야기를 하며 오해를 풀고나니 내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학부모님도 미안해하면서도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교사도 사람인데 사소한 실수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완벽한 교육을 100 퍼센트 하고  있다고 징딤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작은 틈이 생겼을 때 얼른 대처하지 않으면 불신으로 치닫는 불행한 사태를 맞기도 합니다. 현명한 부모라면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아이 앞에서 담임선생님을 존경까지는 못하더라도 험담하는 일만은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언제부턴가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이 도를 넘어서서 자존감마저 무너뜨리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 화살받이가 되고도 가르치는 제자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 할 교사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니. 마음으로 울고 우울감으로 지쳐가는 아픈 선생님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성인군자가 되어 좋은 말로만 가르치라고 합니다. 사소한 스킨십도 성추행이 될 수 있고, 칭찬으로 머리를 쓰다듬는 일마저도 잘못하면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식을 맡긴 담임선생님에게 감사는커녕 틈만 나면 들이대는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학교마다 몸살을 앓는 소리가 지축을 울리고 있습니다.


교사의 자존감, 스스로 지키자!


나름 온 마음을 다해, 온 생애를 바쳐 교단을 지키며 자존감 하나로 버텨온 무명교사였지만 한 순간도 교단에 선 것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노력했고 진심을 다했고 한 점 부끄럼 없도록 처신했다고 자부한 저였기에 울컥했는지도 모릅니다. 학부모에게 전화로 조곤조곤 상황을 설명하며 오해를 풀게 하고, 한 발 더 나아가 학부모 교육까지 했지만 한숨을 쉬었던 그 날의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교사로 삼아 더 숙고하며 가르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쓴 소리는 소금입니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준 00이도 더욱 세심하게 가르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학부모에게 보다 더 깊은 신뢰감을 심어주지 못함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바로 그 날 전화를 건 저의 용기에 스스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오해는 시간이 간다고 풀리지 않습니다. 눈덩이처럼 커질 뿐입니다.


지난 학예회 때 뭐든 똑부러지게 잘하는 00이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던 00이 엄마의 표정에서 느껴지던 행복한 모습이 좋았습니다. 자녀의 성장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마음은 선생님이 느끼는 가르침의 보람과 같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에 교정의 은행나무 이파리처럼 저도 노랗게 물들었던 학예회 날. 하마터면 잃을 뻔했던 전환점을 반전의 기회로 돌려막은 적극적인 학부모 상담 전화 한 통화는 이 가을에 수확한 최고의 열매였습니다.


교사의 권위는 아무도 세워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늘 공부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존감이 튼튼해야 날아오는 화살도 적극적으로 받아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날아오는 돌마저도 귀한 보석으로 만들어 되돌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학부모까지도 설득시킬 수 있어야 공교육이 성공합니다. 학부모는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시켜야 하고, 때로는 학부모 교육까지 해야 공교육이 성공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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