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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역사 현장을 찾는 답사라면 사료나 유적이 제공하는 범위에서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이를 벗어나는 상상이나 특정 목표를 상정하는 해석은 종종 역사의 중요한 덕목인 합리성과 논리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리와 합리의 영역이 무색해지는 답사도 있다. 바로 신화의 현장을 찾아가는 답사다.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건국신화를 보면 대체로 믿을 수 없는 얘기가 많다. 알에서 태어나거나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인데 요즘은 아이들도 믿지 않는다. 그러니 역사 영역에서 신화란 무시받기 쉽다. 하지만 그 신화를 ‘거짓’이라고 단언하는 것도 무모한 일이다. 신화의 대상이 되는 실제 유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의 사실과 신화가 전하는 의미 사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끔 역사 기록을 보면 사실로 보이지만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조선왕조실록>만 하더라도 태종 때 작성된 ‘1차 왕자의 난’이나 세조 때 작성된 ‘계유정난’ 기록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 제대로 구색을 갖춘 글인데도 그렇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까. 역사 기록은 아니지만 연애시절 하늘의 별이나 달을 따준다는 허무맹랑한 말이 그렇다. 내용만 보면 추호도 사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다시 신화 얘기로 돌아가 보자. 신화가 사실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역사 속 상황이 담겨 있다. 신화가 살아남은 배경은 바로 신성함이다. 고대국가의 권위가 사라진 지금이야 이치에 맞는지 살펴보지만 당시에는 건드릴 수 없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그럼에도 전승이 된 것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가볍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물론이고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서 편찬된 <삼국사기>에도 건국신화가 실려 있는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그리고 부여까지 고대국가 성립 시기에 등장하는 건국신화는 다채롭다. 그 중 유적과 내용이 가장 풍부한 곳은 역시 경주다. 경주는 워낙 역사 유적이 많아 한 번에 보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여러 날 답사를 할 생각이 아니라면 주제를 잡거나 지역을 골라 방문하는 것이 좋다. 경주는 계절에 따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봄에는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린다면 정말 낭만적인 장소로 바뀐다. 눈이 내린 오솔길과 논을 걷는 경험이라니.
 
신화의 현장을 찾아가는 주제를 정했다면 첫 장소는 바로 오릉이 될 것이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거서간(왕)이 묻혀있는 곳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박혁거세거서간을 비롯해 알영왕비, 남해차차웅, 유리이사금, 파사이사금의 무덤이라는 것과 박혁거세거서간의 몸이 다섯으로 나뉘었는데 큰 뱀이 시신 모으는 걸 막아 그대로 다섯 무덤으로 장사지냈다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 속 공통인물은 바로 박혁거세다. 오릉의 주인공인 박혁거세는 나정에서 발견(!)되었다. 사로6촌 촌장 가운데 한 명인 고허촌 촌장이 천마와 함께 나정에서 붉은 빛이 도는 알을 발견했는데 거기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혁거세의 왕비인 알영부인 역시 알영정이란 우물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알영은 계룡의 갈비에서 태어났는데 처음에는 입에 부리모양이 있었지만 냇물에 씻어서 사라졌다고 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알과 말, 계룡과 우물이다. 알은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인데 존재의 신성함과 함께 출신을 밝히지 않으려는 의도가 포함됐다고 할 수 있다. 경주에는 선도산이 있는데 ‘선도성모’인 사소와 관련 있는 곳이다. 그런데 선도성모가 박혁거세를 낳았다고 하니 알을 낳았다고 해야 할 것인지 모르겠다. 말은 비교적 단순해서 기마민족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계룡은 나중에 등장하는 김알지 신화의 닭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부르는 존재인 닭은 신화에 곧잘 등장한다. 그리고 우물은 땅, 물과 관련이 있으니 생명을 낳아 기르는 의미를 품고 있다. 우물은 땅과 지상세계, 곧 하늘을 연결해 주는 의미도 있다. 우물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그곳은 하늘이고 우물을 내려다보면 그곳은 역시 물이 차 있는 땅이다. 그런 점에서 선덕여왕 때 세웠다고 알려진 첨성대 모습이 우물을 닮은 것도 신화 속 우물과 관련 있다고 보기도 한다.
 
다음 장소는 경주 동천동에 있는 탈해왕릉이다. 박 씨와 함께 초기 왕실을 구성한 시조인 석탈해가 묻힌 곳으로 전해진다. 석탈해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신라에 온 건 바다를 통해서다. 바닷가에 사는 아진의선이란 할머니가 궤에 있던 탈해를 발견해 길렀다고 한다. 궤에서 나왔다고 해서 ‘탈해’란 이름을 얻고 근처에 있던 까치를 뜻하는 작(鵲)에서 새를 뜻하는 부분을 빼고 ‘석’을 성씨로 삼았다. 석탈해가 신라 왕실에 진입하는 과정은 어려웠고 그래서 공격적이었다. 토함산 자락에 살던 석탈해가 월성에 사는 호공(瓠公: 왜인이라고도 하고 표주박을 뜻하는 이름이 왕족이었을 것이라고도 한다)의 집을 계략으로 빼앗았다. 대장장이 집안이었던 석탈해가 호공의 집에 몰래 숯과 숫돌을 묻어놓고 소송을 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해차차웅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고 향후 왕위에 오르는 기반을 만들었다. 석탈해(나중에는 석탈해이사금)는 <삼국유사>를 보면 가야의 김수로왕과도 실력을 겨뤘다고 한다. 하지만 김수로왕에 졌다고 하니 그 다음에 신라로 왔던 것은 아닐까. 더구나 박혁거세는 조상을 거의 알기 어렵지만 석탈해는 출신지인 용성국이나 다파나국이란 이름도 남아있어서 신화의 영역에 남아있는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탈해왕(이사금)릉을 보았다면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거창한 바위를 찾아보자. 표암, 또는 박바위라고 한다. 이 장소 역시 특별하다. 경주 건국 신화 속에서 사로6촌의 촌장이 등장하고 또 그들이 회의를 해 박혁거세를 왕으로 올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바로 그 장소로  다시 생각해보면 신라가 태어난 곳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의미 깊은 장소다.
 
원래 이곳은 사로6촌의 하나인 알천 양산촌의 근거지로 경주 이씨의 시조인 알평공이 태어난 곳이다. 알평공도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아기였을 때 목욕을 했다는 흔적이 남아있다. 나중에 여섯 촌장은 6두품이 돼 밀려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신라, 그러니까 사로국의 지배자였던 것이다. 이들 역시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니 이주해 온 세력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경주 지역에는 원래 살던 사람, 그리고 사로6촌 세력, 마지막으로 박, 석, 김 세력이 옮겨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최종적으로 권력을 잡은 집안의 신화는 크게 신성시되고 남았지만 사로 6촌의 내력은 근근이 전해졌다.
 


마지막 장소는 계림과 대릉원 일대다. 계림은 닭과 관련이 있다. 탈해이사금 때 호공이(또 등장하셨다) 지나다가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밝게 빛나는 황금 궤가 나무에 걸려 있었고 그 궤에 아이가 있었다. 궤가 황금빛이라고 해서 성씨를 김으로 하고 아기란 뜻의 알지를 이름으로 삼아 김알지로 불렀다. 다른 성씨의 시조와 달리 김알지는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6대 손이 미추이사금이 됐고 내물마립간부터는 신라에서는 오로지(신라 말에 일부를 제외하고) 김씨가 왕위를 이었다. 계림 옆 미추왕릉이 있는 대릉원 일대 거대한 고분은 바로 이들의 무덤이다. 
 
경주에 남아있는 신라 건국신화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은 흥미롭다. 분명 신화이니 역사 답사가 될 수 없겠지만 오히려 그 흔적은 뚜렷하다. 건조한 문장으로 건국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메시지가 그 안에 담겨있다. 번잡한 문자로 자신을 숨기려고 한 후대의 역사 현장보다 매력적인 이유다. 여행이야기 박광일 대표, 심미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