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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아는 것이 밝음

-참 자아의 발견


남을 아는 것이 지혜(智)라면,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明)입니다.

남을 이김이 힘 있음(有力)이라면,

자기를 이김은 정말로 강함(强)입니다.


족하기를 아는 것이 부함(富)입니다.

강행하는 것이 뜻있음(有志)입니다.

제자리를 잃지 않음이 영원(久)입니다.

죽으나 멸망하지 않는 것이 수(壽)를 누리는 것입니다.

 -오강남의 『작은 도덕경』 118쪽에서 인용함.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존재이다.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게 주어진 숙명이 공부하는 일일 것이다. 어찌 인간만이 공부를 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으랴!  길 가의 민들레 한 송이도, 잎은 다 떨구고 서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도 지금 공부하는 중일 것이다.  그들도 인간처럼 살아 남기 위해 단풍잎을 만들고 빈 나무로 서서 겨울을 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만이 공부를 한다고 , 인간만이 지상에서 가장 유능한 존재라거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생의 도로에서 멀리 지나와 보니, 이제 어렴풋이 안개 덮인 삶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냄을 느끼는 중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가장 지혜롭지 못한 생명체가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긴 출생, 홀로 서지 못하는 오랜 보육과 교육 기간을 생각하면 인간의 존재는 가성비가 낮은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미의 태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자기 발로 일어서는 동물들을 보면 경이로움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태생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이기적 유전자 덕분이겠지만. 그에 비하면 홀로서기까지 엄청난 배움과 교육 기간을 거치고도 제대로 된,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기 힘든 인간의 생애를 대비시켜 보는 버릇이 생겼다. 겨울 탓인가 보다.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면 그가 살아온 여정이 훤히 보인다. 굽은 삶을 살았는지, 직선으로만 달렸는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보여준다. 그렇게 풍성하게 보인 나무가 잎을 떨군 뒤의 모습이 초라하거나 병든 나무인 경우도 있고, 볼품없는 나무인 줄 알았는데 잎이 지고 난 모습이 아름다워서 놀라게 하는 나목도 있으니.


사람의 겨울도 나무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떤 분은 현직에 있을 때는 빛이 나다 못해 야단스러울 정도였는데 퇴직한 뒤의 모습은 촌로와 같거나 병들어 지쳐서 병고에 시달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욕심을 버리지 못해 교직자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삶에 찌든 모습을 볼 때면 참으로 안쓰러운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적어도 교원이라면 현직을 떠난 뒤에도 품위 유지는 의무사항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때로는 생계가 어려워서인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사업장의 명함을 들이밀거나 학교를 방문하여 거절하기 힘든 부탁을 하는 분도 여럿 보았다. 선생도 사람이니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분 앞에서 비정규직이건 외판원이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것만은 어찌할 수 없으니. 때로는 후배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줄도 모르고 처신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퇴직을 앞둔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저렇게 살지는 말자고 다짐하게 하니 반면교사가 분명하다.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불확실한 사람의 내일을.


교직은 선비의 삶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생 공부를 가르치는 자로 살아 왔으니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공부하는 모습을 견지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중이다. 한 순간도 자기를 아는 밝음(明)을 놓지 않기를 염원하며 시간을 소금처럼 귀하게 쓰고 싶는 요즈음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새벽잠이 없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 시각에 깨어나 책을 보거나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이를 먹을수록 밝아지라는 자연의 섭리가 분명하다.


겨울에는 나목처럼 깊은 사색으로 살아갈 일이다.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친 제자들이 자기만의 열매들을 안고 하나 둘 떠나가는 모습을 기꺼이 응원해주며 다시 새 봄을 기다리는 나무처럼 준비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나는 사계절 중 겨울을 시리게 사랑한다. 빈 가지로 서서 살아온 삶을 반추하는 나무가 되어 다음 봄을 기약하며 동면에 들어가는 겨울방학을 사랑한다.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서점의 한 코너에서 맛있는 양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죽어간 나무들이 다시 활자로 살아서 손짓하며 춤추는 언어들의 속삭임을 깊이 사랑한다. 해를 거듭하며 침침해지는 육신의 눈을 점점 밝아지는 마음의 눈으로 겨울방학을 기다리는 중이다. 성탄절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자기를 아는 밝음으로 눈을 감고도 세상을 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새벽 달님에게 비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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