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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동물들 (2) 호랑이와 소에 담긴 몇 가지 상징들

김정금의 옛날 옛날이야기

아이들은 왜 그렇게 동물 이야기를 좋아할까? 옛이야기, 전래동화에는 왜 그렇게 동물 이야기가 많이 등장할까?


우선 동물은 사람이 아니면서 살아있는 존재다. 사람처럼 생명을 가졌고 움직이고 때로는 감정과 정서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동물은 아이들의 연령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수성의 정도가 다른데 어릴수록 정서적 동일시의 폭이 더 깊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동화 속 동물의 등장에 아이들이 진짜 환호하며 반짝이는 두 눈으로 몰입할 수 있는 진짜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물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 람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지만 결코 사람일 수 없다. 즉, 언제든 적당한 거리 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들이 동화 속 동물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특히 동화에 깊이 빠지는 나이 때의 아이들이 가지는 심리적 불안감, 죄책감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동물이라는 것이 흥미로운데 이는 본격적인 오이디푸스기에 들어가는 3세부터의 아이들이 드디어 동화의 재미를 알게 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때로는 엄마를 죽이고 싶다거나 아빠를 사라지게 했으면 하는 무의식적 욕망을 품게 된다. 물론 그것은 입 밖으로 뱉어지지 못하고 의식의 물 위로 올라오지도 못한다.


동생이나 손위 형을 둔 아이들 역시 매우 치열한 동기 간의 갈등을 느끼는 시기가 이때인 데 이 문제 역시 본격적으로 의식 위에 올리기에는 두려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때의 훌륭한 도피처가 동화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동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물들은 자신을 대신해 계모를(그러나 사실은 자신의 친모를) 혼내주기도 하고 또 때로 는 아무것도 못하는 주인공을(그러나 사실은 자신을)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산속의 왕으로 군림하는 호랑이를(사실은 자신의 아버지를) 성장한 주인공이 죽이는 역할을 대신해 주기도 하니 이보다 안전한 ‘복수’의 현장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래동화 속의 동물들은 이것 외에도 상당히 많은 상징적 의미들을 갖게 되는 데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의 ‘호랑이’는 특히 매우 다양한 의미로 읽히는 대표적 이야기 소재다.


먼저 ‘호랑이’는 맹수로서의 무서운 호랑이 모습도 있지만 보통 위험에 처한 인간을 도와주고 곤란을 해결해 주는 신격화된 모습부터 아예 인간처럼 욕심을 부리고 질투하고 남의 것을 뺏는 모습까지 나타내기도 한다. 국내의 융(Carl Gustav Jung) 연구자들은 호랑이 상징이 이 모든 것들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데, 대표적으로 ‘새로운 성장, 어머니, 시작, 창조와 파괴, 우주, 성장, 보살핌, 모성, 피난처, 태양, 신성성’ 등이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모성, 보살핌’ 부분인데 이는 신격화된 호랑이의 모습을 ‘도움, 양육, 생명력’ 등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무서운 맹수로 심판하고 징치하는 신의 모습 보다는 좀 더 자애로운 보살핌의 신으로 호랑이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요구하는’ 신의 모습이 무서운 존재에서 점차 따뜻하고 품어주는 존재, 의지하고 싶은 존재로 바뀌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우리 옛이야기 속에는 이렇게 보살피고 도움을 주는 호랑이 이야기가 아주 많다. 잠깐 들여다보자.


혼자가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 며느리도 전쟁에 나간 남편의 소식이 끊겨 과부로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는 다시 시집을 가라는 친정의 부추김에 솔깃해 시집을 갔다. 그러나 시집 간 날 밤 며느리는 예전 시아버지 걱정에 안절부절 못하는데 그때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호랑이를 타고 다시 돌아온 며느리는 어느 날 시아버지의 저녁상을 차리는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나 나가보니 밖에는 전사한 줄 알았던 남편이 있는 것이었다. 호랑이가 남편을 업어 온 것이다.


이외도 호랑이가 어느 효자를 등에 태워 다니며 그의 거동과 시묘살이를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팥죽할멈과 호랑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등에서 나타난 호랑이는 약탈, 강탈, 욕심, 죽임, 잔인, 교활 등으로 부정적 의미의 호랑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사회학적 관점에서는 당시의 지배자, 탐관오리 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정신분석적 측면에서는 일부, 강함, 지배, 절대자 등의 의미로 법과 질서를 대변하는 ‘부성(父性)’으로 읽히기도 한다.


또 주목해 볼 부분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에서의 호랑이다. 이 호랑이는 지금 아이들이 자주 접하는 전래동화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1927년부터 ‘신민(新民)’이라는 저널에 ‘조선민족설화의 연구’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채집 설화들을 소개한 손진태에 의하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를 넘어서서 치마, 저고리, 바지, 속적삼 순으로 모두 뺏기고 나신으로 남은 어머니가 결국 팔과 다리까지 차례대로 잡아먹히는 장면이 나온다(日 月傳說). 이것은 성적 착취자인 호랑이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체 분해’라는 과정을 통해 힘겨운 자신의 상황을 벗어나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설명도 있다. 다시 말해 어린 네 아이를 키우는 간난신고의 삶 속에서 자신을 옭아매던 현실을 벗어나 또 다른 자신으로 태어나고 싶은 어머니의 소망이 담긴 것이 바로 호랑이라는 이야기다. 동화 속에서 어머니를 죽이고 아이들을 찾아와 어머니 흉 내를 내는 호랑이를 아이들이 계속 ‘어머니’라고 부르는 장면이나, 실제 아궁이 앞에 앉아 밥을 하는 호랑이를 계속 ‘어머니’로 지칭하는 동화 속 화자를 보면 이 부분에 대한 나름의 이해가 가능하다.


전래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동물은 소다. 특히 아이들이 거의 모두 알고 있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에도 소가 등장한다. 여기게 등장하는 소는 특히 ‘암소’로, 주인공인 신데렐라나 콩쥐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타나 밭일을 돕는 등 곤란을 이겨내는 도움과 힘을 주는 존재다. 보통 전래동화 속 ‘소’는 우직함, 성실함, 신뢰, 평화, 제례의식 등의 상 징으로 사용되는데 특히 주목할 것은 ‘암소’라는 부분이다. 콩쥐팥쥐에서도 보이지만 이 암소는 보통 죽은 어머니의 환생적 존재로 얘기되고 실제로도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소’ 또는 ‘암소’는 모성, 생산력, 어머니 등으로 직접 상징되기도 한다. 또한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는 특별히 ‘태모’로서 더 근원적이고 원형적인 의미로 소 상징을 바라보고 있다.


무엇보다 전래동화 속 ‘소’는 여자아이들의 발달단계를 돕는 존재로도 많이 나타나는 데 신데렐라나 콩쥐가 새엄마에 의해 강요받는 ‘노동’들이 보통 밭을 갈고, 콩이나 잡곡을 골라내고, 물을 기르는 등 전래로 여성의 노동을 표현하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동화 속 주인공들 중 남자아이들의 성장이 보통 집을 떠나 갖은 모험과 위험을 이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결론지어지는 데 반해 여자 주인공들은 콩쥐, 신데렐라의 경우처 럼 힘겨운 가사 노동을 하나하나 이겨내는 줄거리들로 채워져 있다.


실제로 그림동화 중 ‘홀레 아주머니’ 속 주인공이나 우리나라의 바리데기 이야기에도 대부분의 여주인공들은 빵을 굽고, 빨래하고 물을 기르는 노동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때문에 이런 과정을 돕는 존재로 태고 때부터 생산력과 모성의 존재로 상징되는 ‘소’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전래동화는 물론 신화, 민담 등에는 이 외에도 매우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다루지 못한 물고기는 우리나라에서 ‘수신(水神)’으로 얘기되는 용을 다룰 때 다시 한 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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