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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꾀꼬리

말썽꾸러기들은 학교 뒷산의 꾀꼬리 집을 발견하고 샊띠들을 노리는데, 어미꾀꼬리는 안 빼앗기겠다고 목숨을 걸고 달겨둘고.......

멀리 바라보이는 한강 둑이 아슴푸레하게 가물거리고 질펀한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게으름에 지친 듯 불 듯 말 듯한 오후 2시 30분입니다.

하지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올 여름은 더위가 이리도 극성인지 싱싱하게 뻗쳐 오른 볏잎 마저도 축 늘어지고 뒷산의 매미 소리도 나른한 눈꺼풀을 주체치 못하고 턱을 괴고 있는 손바닥에 흥건히 고여 오는 침마저 느끼지 못한 채로 부드러운 꿈나라의 안락의자를 타고 서서히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두어 사람 건너편의 현일이도 공부시간마다 맡아 놓은 꾸지람 둥이 짝인 광선이가 슬금슬금 꿈나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흘끔흘끔 눈치를 해 보았지만 반응이 없자 심심하고 따분하여 덩달아 스르르 졸음 속으로 빠져듭니다.

언제나 처럼 이 시간이 체육이나 음악시간이었다면 떠들고 뛰노라고 졸음쯤은 멀리 달아나고 없겠지만, 오늘처럼 사회 시간에 선생님의 얘기가 계속 되는 시간은 어김없이 졸음에게 지고 맙니다. 꾸벅꾸벅 때 아닌 인사치레에 아이들의 한바탕 웃음보따리가 터지거나 선생님의 정확한 솜씨가 분필토막을 이마에 ‘스트라익’을 맞고서야 씨익 염치없는 웃음을 웃으며 정신을 가다듬곤 했습니다.

오늘도 꾸러기 짝꿍은 어김없이 선생님의 불호령을 듣고서야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모두들 앞에 나와 섰습니다. 아이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별로 신기해하지도 재미있어 않고 선생님께서도

“너희들 몹시 졸린 모양인데 세수라도 하고 오겠니, 아니면 문 앞에 꿇어앉아서 공부를 할거니?”

하고 조용히 타이르십니다.

두 아이들은 책을 펴들고 북도 출입문 앞의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꿇어 앉아 책을 폈습니다. 그러나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야 ! 점심시간에 꾀꼬리 집을 찾았다 !”

광선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으래? 이따 가 볼래?”

현일이는 눈이 번쩍 뜨이고 신바람이 났습니다.

“이따 공부가 끝나고 같이 가보자. 살짝 남아있어 응?”

“그래 !”

눈치를 살펴 가면서 둘은 굳게 약속을 했습니다. 다른 얘들 같으면 잊어버리기도 하겠지만 꾸러기 짝꿍에게야 이 약속은 성경의 말씀보다도 더 확실한 약속이 되었습니다. 단 둘만의 약속은 그만큼 잘 지켜졌고, 또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그들이었습니다.

방과 후 변소청소를 맡은 광선이는 쓸고 또 쓸어서 먼지가 내려앉아도 보일 만큼 깨끗하게 쓸어 놓고서 현일이가 맡은 계단 쪽으로 갔습니다. 현일이도 오늘만큼은 계단의 구석구석의 흙먼지까지도 막대로 파내어 가면서 정말 깨끗하게 계단을 쓸었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검사를 받고 나서도 두 사람은 친구들이 어서 돌아가기를 기다리느라고 뒤뜰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청소를 하는 것도 잊고 교실에서 나오자마자 집으로 달아나기도 하던 꾸러기 짝꿍이 오늘은 이상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교실에서 1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부터 시작하는 학교 뒷산은 밤나무, 참나무, 소나무가 어울려서 제법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 뿐 아니라 꽤나 큰 참나무의 가지에는 심심찮게 비둘기와 꾀꼬리가 작은 둥지를 매달고 있습니다. 또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갖가지 새들이 잠자리를 마련하느라 바쁩니다. 교실에서도 산새들의 집을 발견하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란이 일어나기도 하는 정답고 아기자기한 친구 같은 느낌을 주는 산이었습니다.

꾸러기 짝꿍은 다른 아이들의 눈을 피해 산을 빙 돌아서 반대쪽으로부터 슬금슬금 산으로 올라가 멀리 산 위쪽을 돌아서 드디어 새집이 있는 나무 근처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 이 나무 저쪽 끝쯤 가느다란 가지에 새 둥지가 보이지 않니?”

하며 광선이가 검지손가락을 곧게 펴서 나뭇가지를 가리킵니다. 무척 눈이 밝은 현일 이었고 또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났지만, 광선이의 손끝만 보고서 쉽게 새 둥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밝은 햇살이 바늘처럼 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엣취 ! 에이잇취!”

현일이는 재채기 만 두어 번 연거푸 하고선 돌아섰습니다.

“야, 너 여기 있어 ! 내가 올라가서 보고 올 테니까.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돼. 알겠지?”

하고 광선이는 다람쥐 같이 잽싸게 참나무를 부등켜 안고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제 키의 두 배쯤 올라가서야 가지가 갈라져 있건만, 마치 도마뱀이 나무를 기어오르듯 힘들어 보이지도 않게 손과 발이 날쌔게 움직여 단숨에 가지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가지에 걸터앉아서 나팔 손을 해 가지고 내려다보며

“야 ! 누가 오는지 잘 봐. 선생님한테 들키면 큰일이란 말이야 알겠어?”

하고 다짐을 받습니다.

“걱정 마 ! 누가 오면 나 혼자서 저리로 가만히 갈 테니까 넌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있으면 될 거 아냐?”

하고 조그만 소리로 대꾸를 합니다.

광선이는 살금살금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발을 옮겨서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있는 곳을 손으로 살짝 젖히니, 정말 나뭇가지 사이에 앙증맞게 꾸며진 새둥지가 드러났습니다.

“와, 거기 있었구나!”

현일이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치자

“조용히 해. 들켜!”

하고 광선이도 마주 소리칩니다.

“야, 새끼가 아직 털도 안 났어. 우리 며칠만 더 기다려야겠다.”

하면서 광선이는 밧줄을 타고 내려오듯 주르르 쉽게 땅으로 내려섰습니다.

“네가 어떻게 알아서 며칠을 기다리라고 그러니?”

현일이가 다그치자

“응, 아직 털도 안 났으니 두 주일쯤 지나면 조금씩 날을 수 있게 될 거야. 그 때쯤 꺼내 야지. 그렇지 않으면 살릴 수 없고, 미리 만지거나 하면 어미 새가 죽이고 말 거야.”

광선이는 자기가 조류학자라도 되는 것처럼 의젓하게 타이르면서 그 동안 절대로 말을 하지 말라고 다짐을 받습니다.

목이 마르게 기다리던 두 주일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틈틈이 지켜보았지만 아직도 나는 기색은 없었고, 어미 새가 한층 바쁘게 먹이를 물어 나르는 것으로 보아 새끼가 상당히 자란 듯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꾸러기 짝꿍에게 새로운 도전자가 생겼습니다.

이제 겨우 4학년인 식이네가 어떻게 알았는지 꾀꼬리 새끼를 잡는다고 여기저기 나무 위를 뒤지고 있는 것을 발견 광선이 와 현일이는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쫓아가서 외쳤습니다.

“야, 임마 ! 자연보호도 모르냐 ? 임마, 너 선생님한테 들키면 얼마나 혼나는 줄 아니? 산에 새집을 달아 주고 있는데 새집을 뒤져서 새끼를 꺼내려고 하면 가만 둘 것 같애?”

형들의 선생님까지 동원한 윽박지름에 그만 기가 죽은 식이네들은 아무 소리도 못한 채 어슬렁어슬렁 산을 내려오면서

“흥, 자기네들끼리 새를 잡으려고 그러지 뭐. 누가 그걸 모를까 봐!”

하고 혼잣소리를 합니다. 광선이 와 현일이는 아무래도 오늘을 넘길 수 없다고 판단을 하고 아이들이 돌아가고 조용해지면 나무에 올라가 새끼를 꺼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광선이가 나무에 올라가고 현일이는 밑에서 내려주는 새끼를 받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광선이는 어느 때보다도 더 빠르고 잽싸게 나뭇가지를 기어오르고, 현일이는 침이 꼴깍 넘어가도록 고개를 젖힌 채 광선이의 손발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서 있었습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오르면 새둥지에서 새끼를 꺼낼 수 있을 만큼 올라갔을 때 둥지에서 노란 털을 보송보송하게 달고 까뭇까뭇 날개깃이 나기 시작한 새끼 한 마리가 후두둑 날개 짓을 하며 더 높은 가지로 달아나 앉았습니다.

이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미 꾀꼬리가 날아오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광선이의 얼굴을 덮칠 듯 덤비곤 했습니다.

광선이는 아찔아찔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한 손으로 새 둥지를 꺼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어미 꾀꼬리는

“꽤액, 꽤애액!”

소리를 지르며 광선이에게 달려들어서 정신을 빼어 놓고 멀어져 갔습니다. 광선이의 손이 둥지에 닿을 듯 가까이 가자 어미 꾀꼬리가

“괘액, 꽥 !”

하며 광선이의 얼굴에 덥석 부딪혀 왔습니다.

“앗!”

광선이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나무 아래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손을 놓은 순간 귓속은 찌잉 울리고 몸은 솜털처럼 가볍고 풍선처럼 둥실둥실 떠오르면서 먼 꿈나라에서 꾀꼬리 엄마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꾀꼬리는 곱고 포근한 털로 포근히 광선이를 감싸고서 마치 자기 새끼 마냥 두 날개로 꼬옥 싸안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광선이는 어린 시절 엄마의 젖가슴에 포옥 파묻혀서 소록소록 잠들던 때처럼 포근하고 아늑하기만 하였습니다. 자신이 꾀꼬리 새끼인 양 한 없이 꾀꼬리 엄마의 품이 포근하고 아늑하여 그냥 그대로 끝없이 안겨 있고 만 싶었습니다. 광선이는 자신도 모르게

“엄마!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품에 안겨 있으니 세상의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요.”

하고 중얼거리면서 주르르 눈물을 흘렸습니다.

“광선아! 광선아!”

현일이가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흔들어대자 광선이는 살며시 눈을 뜨고 현일이를 쳐다보면서 입가에 웃음을 띠었습니다.

“괜찮겠니 ? 아픈 데는 없니?”

현일이가 다시 소리를 지르자

“걱정 마, 조금 놀랐을 뿐이야.”

“이제는 나무에 올라가 새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하며 광선이는 부스스 일어나 옷을 툴툴 털었습니다. 7월의 따가운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눈부시게 비쳐들고, 나무 위에선 어미 꾀꼬리가 이직도 겁에 질린 채 ‘꽤액 꽥’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맴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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