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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발가벗고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

“오늘도 잊지 말고 꼭 지킬 일은 무엇이지?”

“예. 수로에서 목욕하지 말자. 길에서 놀지 말자입니다.”

“좋았어. 꼭 지키는 거지?”

“예.”

우리들은 힘차게 대답을 하였고 선생님은 흐뭇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그래, 다 너희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기 위한 것이니까 잘 지키도록 알겠나?”

“예.”

우리는 마치 군대에서 하듯이 힘차게 대답을 하였다.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이지만 6학년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매일 이렇게 우리에게 주의를 주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학교 앞의 울타리와 나란히 지나가는 도로 바로 아래에 이 고장의 들판을 적셔주기 위해 한강에서 퍼 올린 물이 지나는 수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란 없다. 우리는 도도히 흐르는 수로의 물줄기를 보면서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씻지 않고서 집에까지 갈 수는 없었다. 더구나 집에 가보았자 이처럼 시원한 물줄기는 구경도 할 수 없다. 아무리 말려도 물 속에 풍덩 몸을 담글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다만 이 물줄기가 흐름이 빠르기도 하지만 학교 앞에 있는 곳은 시내와 만나는 자리에서 시내물의 밑으로 물이 흐르게 수로가 땅 속을 지나느라고 땅굴 속으로 물이 흐르게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만약이 거기 빨려 들어간다면 영락없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밖에 없는 위험한 곳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곳에 위험 표지판을 만들어 붙여 놓고 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날마다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들은 선생님들 몰래 거기서 멱을 감곤 하였다.

거의 날마다 듣는 소리이기 때문에 늘 하는 말씀이거니 생각하고 별로 조심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덕이3, 4리 아이들은 우르르 학교에서 나서는 길이 바로 그렇게도 가지 말라던 수로를 향하여 달려 나가게 되어있었다. 학교에서 말리면 말릴수록 더 하고픈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란 것을 모르는 것일까? 선생님은 날마다 되풀이해서 그 시원한 물놀이를 하지 말라고만 하신다. 그렇지만, 우리가 집에 들어가 보았자 물 한 바가지 끼얹을 수 있는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란 말인가? 땀을 듬뿍 흘리면서 뛰어 놀다가 젖은 옷을 입고 집에 가도 그 옷을 당장 갈아입을 처지도 못되는 농촌 아이들이란 것은 전혀 몰라주는 선생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지금은 생활에 여유가 생겨서 집집마다 수도도 놓고 살고 수돗물이 마을까지 들어와서 물을 마음 놓고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아직 마을 앞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러다가 먹고살았다. 우리들은 날마다 온 몸을 씻을 수 있는 곳이란 바로 학교에서 말리는 수로에서나마 멱을 감는 길 밖에 없었다. 농촌에서 사는 아이들이라서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자주 옷을 갈아입을 처지도 못된다. 아이들에게 좀 위험하기는 하다고 하지만 수로에서 멱을 감는 것까지 말리고 나서니까 정말 우리는 놀이를 할 것이 없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눈치껏 학교에서 나오다가 잠시 물에 들어가서 몸을 적시고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의 날마다 학교에서는 들어가지 말라고 말리고 위험 표지판까지 붙여 놓았지만, 그 수로에 들어가서 멱을 감곤 하였다.

오늘도 끝나고 나올 때 선생님이 확인까지 하였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날 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수로에 들어가 멱을 감고 싶어서 눈치를 살폈다. 몇 아이들은 학교에서 나오는 문 앞에서 놀이를 하는 척 하면서 혹시 선생님이 나오시나 살피기로 하고 먼저 나간 아이들은 옷을 벗어 던지고 수로에 뛰어 들었다.

이 수로는 한강 물을 퍼 올려서 송포면의 넓은 들판을 적시기 위해서 물을 보내는 것으로 가득 보낼 때는 깊이가 2m 가까이나 되고 물이 무척 빠른 속도로 흐르기 때문에 물에 들어갔다가 휩쓸릴 염려도 있었다. 그렇지만, 5, 6학년 정도라면 걱정을 할 만큼 빠른 것은 아니었다. 수로의 폭이 겨우 3m 안팎 밖에 안 되므로 조금만 움직여도 빠져 나올 수는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학교에서 여길 못 들어가게 하는 곳은 바로 학교 앞에서 조금 나온 자리에 있는 암거 때문이었다. 여기만 피해서 물놀이를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멱을 감기에 좋지 않다. 풀밭은 지저분하고, 씻고 나와서 다시 흙이 묻어버리니까 씻기가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암거가 있는 곳은 물을 시냇물의 아래를 통해서 흘려보내기 위해서 콘크리트로 물길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는 바닥이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서 흙을 묻히지 않고도 물놀이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걱정을 하는 것은 여기에서 놀다가 암거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 큰 일이기 때문이다. 암거로 끌려 들어가서 물 속으로 20여m나 지나는 콘크리트 굴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니까 위험 한 곳에서 물장난을 하다가 목숨을 잃을까 보아 우리들을 지켜 주려고 그러는 것이라는 것쯤은 우리도 잘 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멱을 감을 만한 곳이 없으니 우리는 한사코 여기서 물놀이를 하곤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한참 물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아이들은 자기들이 지켜야할 것을 잊고 그냥 달려와서 함께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 것도 모른 채 우리는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물장구를 치고 물싸움을 벌이느라고 왁자지껄한 수로에는 우리들 밖에 다른 아이들은 없었다. 벌써 오후 3시경이 되어서 어린 동생들이야 벌써 집에 갔을 것이다. 학교에서 늦게 끝난 우리들만 남았으니 들판까지 조용한 속에서 우리들의 물장난 소리만 온 들판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니 들판의 주인이 되어 무더위에 지쳐 낮잠이라도 자는 듯 나른한 더위 속에 게으른 들판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야 ! 덤벼 ! 네까짓 게 우리를 이기려고....”

“뭐야? 어디 한 번 당해 봐라.”

서로 이기겠다고 소릴 지르고 한바탕 물을 끼얹으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을 때 난데없는 호루라기 소리가 우리 귀를 찢는 것 같았다.

“휘리릭, 휘리리릭, 휙, 흭”

언제 오셨는지 선생님은 이미 우리들의 옷가지를 몽땅 집어 들고서 우리들이 놀고 있는 수로의 둑 위에서 우리를 향하여 소릴 지르셨다.

“너희들, 오늘 여기서 멱을 감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지? 그런데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약 속을 어기고 여기 뛰어 들어?”

선생님의 이 말 한마디에 우리는 아무소리도 하지 못하고 쥐 죽은 듯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약속을 어긴 것은 너희들이고, 선생님은 너희들이 위험한 곳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말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제부터 옷을 찾으려면 학교로 와라. 알겠나?”

선생님은 우리들의 옷을 몽땅 싸안고 뚜벅뚜벅 학교를 향하여 가시고 있었다. 다행히 여기에서 학교까지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란 단 한 채 밖에 없고, 길에도 오가는 사람들이 없기는 하였다. 하지만, 옷을 안주고 저렇게 가버리니 우린 어쩔 수 없이 벌거숭이가 되어서 학교로 옷을 찾으러 가야할 형편이다. 우린 수로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학교 앞에는 수로와 학교 울타리 사이에 포장도 되지 않은 간신히 자동차가 비켜갈 만한 도로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학교 운동장으로만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뜨일 염려는 없기 때문에 여기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학교 옆문 앞에 이르기까지 도로에도 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고 학교에도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우리가 재빨리 수로에서 벗어나 학교를 향하여 뛰어 들어가자 교무실 앞의 계단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던 선생님이 우리를 향하여 소릴 지르신다.

“다 왔나? 아주 용감하군 그래. 남자다워서 좋다. 그렇지만 난 너희들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제 남자의 명예를 걸고 다시는 그 수로에서 다시는 멱을 감지 않겠다고 약속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이 앞으로 와 라. 그러면 옷을 줄 것이다. 오기 싫으면 그냥 발가벗고 집에까지 가고. 알겠나?”

선생님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듯 이렇게 말씀하시고선 우리들이 하는 냥을 지켜보고 계셨다. 우리는 어쩔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용서를 빌 수밖에 없으니 시키는 대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우리들은 운동장을 뛰었다. 발가벗은 우리들 여섯 명이 운동장을 뛰는 모습은 아마도 다시 구경 할 수 없는 웃지 못 할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 사람들이 없고 다른 선생님들도 우리가 뛰는 것을 모르고 계셨는지 아무도 내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가 운동장을 한바퀴 돌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달려서 교실에서 먼 쪽 운동장의 트랙을 돌아서 학교 앞의 트랙을 들어와 계단 앞을 달려 나갈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우리가 계단 앞을 달려 다시 돌아오려면 반 바퀴는 더 돌아야 하는 위치에 서 계시던 선생님은 우리가 가까이 가게 되자 내려오시면서 옷을 던져 주셨다. 우리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자기 옷을 찾아 꿰어 입었다. 이 모습을 보시던 선생님은

“다들 모여 ! 내가 너희들에게 너무 심한 벌을 준 것은 안다. 그러나 그곳이 위험하다고 그렇게 주의를 시켰는데, 우리 학교의 최고 학년인 너희들이 이렇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 너희들은 재수 없게 본보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곳 수로에서 멱을 감는 사람은 이렇게 혼을 내 줄 것이다. 앞으로는 절대 거기 들어가 멱을 감지 말도록 알겠지?”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예.”

하고 대답을 하였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았다.

“다시는 거기에서 멱을 감지 않겠지?”

“예!”

우리가 힘차게 대답을 하자 선생님은

“그래, 지금은 밉고 원망스럽겠지만 이게 너희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 걸 알면 고맙게 생각이 될 것이다. 빨리 집에 돌아가고, 또 물에 들어가지는 말아라.”

하시면서 우릴 돌려보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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