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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현실이 되어버린 서남대 폐교

지난 2월 28일 결국 서남대학교가 폐쇄됐다. ‘결국’이라 말한 것은 그 동안 명지의료재단⋅예수병원컨소시엄⋅서울시립대⋅삼육대⋅부산온병원 들이 잇따라 정상화 계획서를 제출하는 등 회생 논의가 있었음에도 폐교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학교 구성원과 지역주민들이 나서 시위와 소송 등을 벌이며 안간힘을 썼지만, 허사였다. 1991년 3월 개교한 서남대학교이니 27년 만에 오명을 뒤집어쓴 채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서남대 폐교의 후유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휴학생을 포함한 학부 및 대학원생 2000여 애먼 학생들은 의붓자식 취급 받아가며 이웃 대학으로 옮겨가야 했다. 학생들과 달리 정부의 아무런 구제 대책이 없는 교수 등 교직원들은 실직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게다가 교직원들이 못받은 체불임금은 200억 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구 8만 5천 명 정도의 남원 지역도 직격탄을 맞았다. 무엇보다도 27년간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작동한 서남대학교였기에 폐교로 인해 생계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 고통이 가장 크다. 학생이나 교직원들이 겪는 고통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가볍지 않은 막막함이다. 일부에서 벌이고 있는 국립 공공보건의료대학 남원 유치활동이 결실을 맺는다면 그나마 위안이 될까.

서남대가 폐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설립자 이홍하 전 이사장(이하 이씨) 비리 때문이다. 이씨는 서남대 교비 333억 원을 포함해 본인이 설립한 4개 대학에서 1,000억 원 넘는 돈을 횡령한 죄 등으로 지금 감옥에 가 있다. 이씨가 선고받은 형량은 9년이다. 1938년생 고령일망정 이씨의 수감생활은 당연한 죄값 치르기라 재론의 여지가 없다.

서남대 폐쇄에는 판사와 정부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서남대 사례로 본 비리사학 흑역사’(시사인 524호, 2017.10.2.)에 따르면 이씨는 1997년 10월, 교비와 국고보조금 426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징역 3년 2개월을 선고받았다. 1998년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났고, 불과 2개월 만에 사면⋅복권되기까지 했다.

2007년 2월에도 서남대 교비 횡령 혐의로 기소됐지만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2012년 교비 횡령 혐의로 또다시 구속됐지만, 2013년 2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이쯤되면 이씨의 교비 횡령은 거의 중독에 가까운 수준이라 할만하다. 관대한 처분의 판사와 관리⋅감독에 소홀한 정부 모두 서남대 폐교 참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사학비리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씨가 세운 학교는 자그마치 고교 3개, 대학 6개다. 그중 광주예술대학교 2000년, 서울제일대학원대학교 2017년, 서남대학교가 2018년 2월 각각 폐교됐다. 그의 족적을 살펴보면 무슨 건학가치가 뚜렷하고 교육가적 신념이 있어 학교를 세운게 아니다. 학교를 순전히 장사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집념이 엿보일 뿐이다.

사실은 나도 서남대 폐쇄의 피해자다. 이씨의 교비 횡령 범죄가 터지기 전이긴 하지만, 일반대학원을 졸업한 서남대 출신이어서다. 서남대 대학원 석사학위가 최종 학력인데, 이제 그 증명서를 발급받을 모교가 사라졌으니 이 황당함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이 어찌 개인만의 일이겠는가. 27년 동안 서남대를 졸업한 수많은 동문이 모두 피해자인 것을.

죽은 아들 뭣 만지는 격이지만, ‘교비 횡령 등 범죄사실이 맨처음 드러났을 때 단호하고 무겁게 처벌만 했어도 이 지경에까지 이르진 않았을지도 몰라’ 하는 아쉬움이 생겨난다. 물론 이씨의 교비 횡령이 거의 중독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요컨대 사학 비리에 너무 관대한 사회가 아니냐는 것이다. 어설픈 법이 사학 비리의 상습화, 대형화를 부추기거나 돕는 꼴이라 할까.

설립자 개인 비리로 인해 학교가 폐쇄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당하는 현실의 실제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그것 못지않게 기가 막힌 일이 있다. 8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학교의 잔여 재산이 이씨 일가에게 돌아갈 것이란 보도가 그것이다. 대한민국이 여러 가지로 미숙함을 드러내는 초보 국가도 아닌데, 무슨 그런 법이 다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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