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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환상의 수상 오페라,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

돈이 없어 하루 한 끼로 때우고, 정기 승차권 한 장을 여러 명의 친구와 돌려써야만 했던 가난한 유학 시절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내 감성의 자극제는 유수의 브로드웨이 공연이었다. 안 먹고, 안 입으며 악착같이 모은 쌈짓돈으로 보는 공연이었기에 하나를 예매하더라도 실패하지 않을 탁월한 선택이 굉장히 중요했다. 그래서 당시 공연을 보는 기준으로 삼았던 건 전통성과 규모. 몇 십 년 씩 이어져 내려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형 공연들은 결코 날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수많은 공연을 봤지만 내 선택은 늘 옳았다.



열정을 되찾게 한 사진 한 장

가난했지만 하루하루가 신나고 감성 충만했던 3년의 유학 생활을 끝내고 돌아 온 한국. 물질적으로는 훨씬 풍요로워졌 지만 감성적으로는 매우 지루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제와 똑같은 일과를 마친 후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에 올라오는 글과 사진을 훑어보는 게 감성 충전의 고작인 나날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의 사진을 놓고 싸이월드에서 흥미로운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그건 호수 한가운 데에 피어오른 듯 떠 있는 무대 위 공연을 찍은 사진이었다. 먼 하늘엔 붉은 노을이 지고, 드넓은 호수 가운데에 상반신을 내놓은 거대한 해골이 거대한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 해골이 펼쳐든 책의 한 페이지가 바로 공연의 무대였던 것이다.



마치 호수 깊숙한 밑바닥에서 일어난 해골 거인이 책장 위 공연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사진. 이 사진이 과연 실제인가, 조 작인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일었다. 며칠 후 사진은 조작이 아닌 실존하는 세트장 임이 밝혀졌다. 두 눈을 부릅뜨고 다시 봐도 믿기 힘든,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환상적인 무대 장치였다. ‘사진 속 무대의 공연을 직접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도대체 어딜 가야 볼 수 있는 거지?’ 진즉에 소진된 줄 알았던, 공연에 대한 그리고 나 의 잃어버린 영감을 되찾기 위한 뜨거운 열정이 다시금 솟구친 밤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연의 근원지를 찾지 못한 채 그날의 진실 공방은 점점 잊혀졌다.



죽기 전 반드시 관람해야 할 ‘브레겐츠 페스티벌’

그로부터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토록 갈망하던 공연이 오스트 리아의 ‘브레겐츠 페스티벌(Bregenzer Festspiele)’이란 사실을 안 건 이탈리아의 소렌토를 여행하던 중이었다. 배는 곯더라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공연 하나 는 반드시 보고 돌아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어떤 공연을 봐야 할지 수소문하던 중 누군가 호스텔에 떨구고 간 팸플릿 하나가 눈에 띄었다. 거기엔 몇 년 전 싸이월드에서 보았던 그 호수 위 해골 공연장의 사진이 있었다. 급히 팸플릿을 펼쳐 들고 공연 날짜부터 찾아보았고, 부지런히 달려가면 어쩌면 관람할 수 있는 일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신 중간 도시의 일정을 조금씩 줄여야만 했지만 무엇을 망설인단 말인가? 10년을 찾아 헤맨 공연인데!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아름다운 보덴호(Bodensee·콘스탄스호) 위에서 펼쳐지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등을 만날 수 있는 한여름 밤의 클래식 페스티벌이다. 그중에서도 2년에 한 번씩 작품을 바꿔 올리는 수상 오페라는 죽기 전 반드시 관람해야 할 공연으로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날 그곳으로 이끈 거대한 해골 무대는 1999년과 2000년에 공연되었던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였고, 내가 여행하던 2013년 당시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가 열리고 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우리는 브레겐츠를 향해 달리고 달렸다. 그러나 설레는 가슴을 안고 브레겐츠 시내로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우리 를 반기는 건 부슬부슬 내리던 가랑비였다. 호반의 도시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불안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야외 오페라인데 비 오면 취소되는 거 아냐?” 다짜고짜 티켓 판매소로 달려가 공연 진행 여부를 물었다. “괜찮습니다. 공연이 시작될 무렵에는 갤 것으로 예측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브레겐츠 수상 오페라는 30년 동안 기상 악화로 취소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직원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공연 10분 전까지도 비는 계속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설마, 그 30년의 기록을 깨는 날이 오늘은 아니겠지?”



호수에 전달되는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떨림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7,000여 명에 달하는 관객들이 객석에 앉아 걱정스레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때,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 사이로 서서히 비집고 나오는 한 줄기 빛. 그와 동시에 하늘은 순식간에 맑아졌다. 거짓말 처럼 말끔히 갠 하늘엔 붉은 석양까지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어두운 날씨에 짓눌려 있던 마음이, 포기할 뻔한 기억 한구석의 불안이, 찬란한 환희로 변한 것이다.


10년 전 사진 속에 놓여 있던 한 뼘 짜리 작은 무대가 이제는 나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도 넘칠 만큼 커져 있다니···. 다만 거대한 해골 대신 올해는 오페라 <마술피리>의 거대한 세 마리 용들이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듯 강렬하게 호수 위에 서 있었다. 하늘은 이제 완전한 어둠으로 뒤덮였고, 어둠 속에서 무대는 더욱 밝게 빛이 났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고 웅장하고도 섬세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내 온몸을 장악했을 때 너무나도 익숙한 노랫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밤의 아리아’, 최고의 실력을 요하는 곡. 그래서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소프라노가 세계적으로 10명도 채 안 된다는 그 명곡의 완벽한 떨림이 호수의 파동을 타고 나의 등줄기를 짜릿하게 쿡 찔렀다. 잃어버린 감성의 자극제, 나이를 먹을수록 높아지기만 한 내 자극의 역치를 건드린 것이다.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희열의 순간,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감동의 밤이었다. 유서 깊은 오페라 페스티벌답게 예술적으로 축적된 내공과 드넓은 호수 위에 거대한 무대를 안정적으로 구성해내는 검증된 기술력 등 이번에도 역시 나의 눈은, 나의 선택 기준은 틀리지 않았다. 여행 중 보았던 공연 중 단연 최고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세 단어로 알아보는 브레겐츠(오스트리아) 

1. 브레겐츠와 보덴호

알프스산맥의 남쪽 기슭, 오스트리아의 서쪽 끝에 평균 해발 고도 395m의 보덴(또는 나라에 따라 콘스탄스로 불리는) 호수가 하나 있다. 길이 63km, 폭 14km의 이 거대한 호수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호수의 수심이 가장 얕고 잔잔한 쪽에 오스트리아 포어아 를베르크(Vorarlberg)의 주도 브레겐츠가 자리 잡고 있다.


2. 브레겐츠 페스티벌

인구 3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 브레겐츠. 하지 만 매년 7~8월에만 20만~30만 명 이상의 관광 객이 방문할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바로 브레겐츠 페스티벌 때문.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오페라 축제는 1945년에 시작되었고 1948년부터 본격적으로 호수 위 플로팅 무대가 설치되었다. 이후 <투란도트>, <아이다>, <마술피리>, <토스카> 등의 수많은 작품이 올랐으며 작품은 2년 에 한 번씩 교체된다. 올해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7월 18일부터 8월 20일에 열리며, 수상 오페라 공연작은 비제의 ‘카르멘’이다(홈페이지 http:// bregenzerfestspiele.com 참조).


3. 브레겐츠 가는 길

인천에서 브레겐츠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브레겐츠와 가장 가까운 공항은 독일의 프리드리히스하펜 공항이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1 시간 50분,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리드리히스하펜 공항까지는 50분이 소요되며, 프리드리히스 하펜 공항에서 브레겐츠까지는 40km,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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