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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진실한 기도

5학년 사회시간에 미신과 종교 토론수업 때문에 진실한 기도가 무엇인가 토론이 벌어지고 이 수업 때문에 목사님 학부모와 신앙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우리 나라의 옛날 종교 생활은 어떠했을까요 ?”

“옛날에는 미신을 믿고 살다가 우리나라에 종교 생활을 시작 한것은 고구려시대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부터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럼 그 뒤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미신을 믿지 않게 되었나요?"

“아니요 ! 아직도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럼,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

“교회를 나가는 사람 등 종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그런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만이 미신을 믿지 않을까요?”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미신을 믿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라고 생각하지요 ?”

“교회나 성당엘 나가서도 자기 자신에게만 복을 내려 달라고 비는 사람들은 미신을 믿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민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길이가 벌떡 일어서면서

“아니, 뭐라고?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이 미신을 믿는 것과 같다고?”

하며, 따지고 덤볐습니다. 그러자 영민이는 차분하게

“그럼 뭐가 다르단 말이야? 정말 훌륭한 종교인이 되려면 나에게만 복을 내려 달라고 빌어서야 되겠어?”

“그럼 기도란 뭐야 ? 자기의 소원을 비는 것이 기도가 아니겠어?”

“소원도 소원 나름이지.”

“그럼 빌어서 좋은 소원과 빌어서 미신이 되는 소원이 어떻게 다른데?”

수길이가 아주기분이 좋지 않아서 따지고 들자, 영민이는 이런 수길이가 우습다는 듯이 빙긋이 웃음까지 머금으면서

“나도 기독교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우리 아저씨는 정식으로 신학대학을 나오셔서 목사가 되신 분이야. 그런데 우리 아저씨는 참으로 진실한 기도란 자기 자신이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고 남에게 베푸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빌어야 한다는 거야.”

“그럼 자기의 자신이 잘되기를 비는 것은 미신이란 말이지?”

“그래, 자기 자신이 잘되기를 빈다는 것은 성당에 가서 비나. 교회에 가서 비나, 절에 가서 비나, 마을앞의 정자나무에 비나, 뒷산의 바위에 비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야.”

“그럼 교회에 가서도 자기를 위해 무얼 빌 수도 없겠네?”

아이들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제법 열기를 뿜고 계속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듣고서 종합하여 결론을 지어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야기는 더 오래 계속 되었을 것입니다.

“아주 좋은 이야기가 되었어요. 그런데 지금 영민이가 이야기 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비는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그것도 ‘정말 진실하게 살게 해주세요’ 라던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종이 되어 사회에 봉사할 수 있게 해주세요.’하는 기도를 한다면 참다운 기도가 될것 같군요. 자기 자신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비는 것이 아니겠어요? 앞으로 모두 진실한 기도를 하도록 노력해 보세요.”

“더구나 기도만 하면 무엇이나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비록 하느님께 비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흔히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바위나 고목에 비는 것과 별로 다르다고 할 수 없어요.”

영민이네 반에서 이런 공부가 이루어진 이튿날이었습니다.

“θθ국민학교죠. 5학년 8 반 선생님 좀 바꿔 주세요.”

“누구신지요.”

“예, 학부형인데요. 지금 좀 통화 할 수 없습니까?"

“지금 수업 중이니까 전화번호를 알려 주시면 전화를 하시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럼 여기 수길이네 집이라고 해주세요.”

하고,‘짤까닥’ 전화를 끊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너무 자기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전화예절이 몹시 신경이 날카로와 졌습니다. 둘째 시간이 끝나고서 5학년 8반 담임 선생님이 통화를 하였습니다.

“여보세요. 수길이네 집이지오? 여기 학교 수길이 담임인데요. 전화를 하셨다구요?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 담임선생님이시군요? 수길이 아빠입니다. 선생님! 어제 공부시간에 무슨 말씀을 그리하셨어요?”

“무슨 말을요?”

“선생님이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면서요? 선생님이 남의 종교까지 그렇게 마음대로 할수 있는 건가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제가 아이들의 종교 생활을 어떻게 했다구 하시는 건가요?”

“우리 수길이는 뱃속에서부터 기독교 신자로 자라온 아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그러셨다고 기도를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여태 부모의 말을 어겨본 일이 없는 아이였는데 말입니다.”

“그럼 제가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뭡니까? 선생님이 왜 남의 종교까지 간섭을 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해요? 그럴 권리가 있는 겁니까?”

“수길이 아버지! 무슨 얘긴지 알겠습니다. 그건 잘못 전해들은 얘기구요. 제 말씀을 들어 보세요. 교과서에서 우리 종교에 대한 것이 나왔는데, 아이들끼리 토론이 벌어져서 미신과 종교에 대한 의논이 있었어요. 여기에서 어느 목사님의 조카 되는 아이가 ‘ 참다운 기도와 비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삼촌의 말씀을 전하길레, ‘자신이 정말 하느님의 종이 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회에 봉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야 말로 참된 기도이겠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어서 아이들이 미신적인 ‘비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고, 결국 자신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미신적인 ‘나무, 바위, 산’에 비는 것과 별로 다를바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잘못 전해서 그런 오해를 갖게 되었나 봅니다.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으시면 학교로 한번 오십시오. 언제라도 수업이 끝난 다음이면 환영하겠습니다.”

“아, 그랬습니까? 이거 죄송합니다. 언제 한번 찾아가서 뵙고 이야기 듣기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전화가 끝나고 나서도 수길이 아버지는 담임선생님이 종교에 대해 간섭을 한 것이 못마땅하고 부아가 끌어 올랐습니다.

이 날 오후 4시가 조금 넘어서 수길이 아버지는 학교로 선생님을 찾아 뵙기 위해 학교로 향했습니다. 속으로는

‘분명 선생님은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하였다는데? 그럼 어떤 다른 종교를 믿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그런 건 아닐테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여간 기분이 좋지를 않습니다. 기어이 만나서 단단히 한번 따져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가는 길이니까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수길이 아버지는 이곳에 교회를 개척하여 이제 교회가 아주 건실하게 잘 운영이 되고 있으며, 신자들도 날로 늘어나고 신도들 사이에 매우 믿음을 받는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분의 아들인 수길이가 어제 저녁식사가 시작될 때 온가족이 둘러 앉아 기도를 올리려는데 느닷없이

“아버지, 난 나와 우리 집을 위한 기도는 올리지 않겠어요.”

하고 기도를 거부하고 나선 것입니다. 세상에 목사님의 아들이 기도를 안 하겠다니 이것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온 가족이 달래보았으나, 어제 공부 시간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하면서 참다운 기도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와 내 식구들을 위해 하느님이 복을 내려주시고 건강을 내려 주십시오.’

하는 기도는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바위나 나무에 비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했어요. 우리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잖아요? 우리가 교회의 십자가에 절하고 기도 한다면 그것은 우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집은 다른 집과 달라서 정말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목자의 집안이라고 늘 아버지가 말씀 하셨잖아요? 우리라도 하느님의 종이 되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드려야 해요.”

하고 수길이가 이야기를 하자 집안은 갑자기 분위기가 쌀쌀하게 바뀌고 식사도 즐거운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모두 말없이 자기 밥그릇을 비우기에만 열심인 것 같았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수길이의 아버지가 그냥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어서 학교로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이들이 종교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을 듣고서 수길이가 그렇게 판단을 했다면 오해를 한 것은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수길이가 자기보다 더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아까 전화는 대충 들었습니다만, 아이들에게 그렇게 종교문제까지 간섭을 하셔서는 안되는 게 아니겠어요?”

“수길이 아버지가 오해를 하신 것이에요. 어제 우리 반의 아이들은 여태까지 어른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얘기를 하였어요. 어쩜 그 얘들의 얘기가 우리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선생님은 우리 수길이가 한 일이 옳다는 말이군요?”

“전 수길이가 취한 행동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수 없습니다. 그건 자기가 공부시간에 아이들의 토론을 듣고서 자기 자신이 내린 결론이니까요. 난 단지 아이들이 한 토론을 정리하여 우리나라의 전래로 내려오는 기복(비는 것)이 지금 현대화된 교회에서 그냥 그대로 계속되는 것 같아서 참다운 기도를 하고 더욱 종교인다운 길을 갈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주었을 뿐이니까요.”

이제 이런 이야기를 선생님에게서 확인을 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을 하여 보았습니다.

‘어쩜 수길이의 이야기는 성경의 말씀과도 통하는 바른 이야기인 것 같다. 우리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복을 내려 달라고 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 집안이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우리 아이가 대학에 합격하게 해주십시오.’

‘우리 사업이 잘되게 해주십시오.’ 이 모두가 오직 자기만을 위해 달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수길이 아버지의 생각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꽉 찼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너무 종교인으로써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배고프고 고달픈 사람들에게 이 교회의 힘이 닿는데 까지 도움을 주어왔는가? ‘무거운 짐 가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며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던 그리스도의 정신을 나는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여기까지 생각을 한 수길이 아버지는 긴 한숨을 쉬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마주 잡고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조용한 소리로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이제까지 어린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실천하고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어제 오늘 우리 어린 자식에게서 하느님의 가르치심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잘못을 용서 하시고, 이제부터 어린종이 참다운 하느님의 종이 되어 이 사회에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이끌어 주시고 도와주시옵기 간절히 바라나이다.”

수길이 아버지가 이렇게 간절히 빌고 있을 때, 수길이는 교실에서 어제에 이어서 종교인이 가야할 길에 대해서 활발한 토론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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