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현장

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교실에 들어간다

2018 교단수기 공모 금상 수상작

조용하기만 했던 교실, 그 시간 나와 함께 한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마치 잃어버린 시간처럼. 그 시절 나를 만난 아이들은 나로 인해서 일 년이란 시간의 행복을 놓쳤다. 
 
“드르륵”

교실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하는 환한 얼굴들. 방과 후 끝나고 피곤하고 힘든데 5층까지 올라와서 인사를 하고 가는 아이들. 내가 뭐라고? 고맙고 감사해서 인사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을 붙잡는다. “잠깐만”그러고는  초콜릿을 들고 나가서 따라온 친구들까지 한 알씩 달콤한 내 마음을 건넨다. 그럼 꽃보다 더 환한 웃음으로“감사합니다”란 인사를 쉴 새 없이 한다. 초콜릿 하나에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수도 없이 듣는 마음 끝이 찡하다.  
 
난 내가 선생님인 것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그러나 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한 순간의 착각으로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원래 내 책상 앞은 아이들이 문 열고 들어와서 가방 내려놓기 무섭게 달려와 어제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거리는 동네 복덕방 이야기 마당이었다. “하하”, “호호”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고학년을 맡아 수업이 많아지고 쏟아지는 업무가 부담되면서 이야기 복덕방의 문을 닫았다. 그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잠깐만 나중에”, “자리에 들어가”, “선생님 지금 너무 바빠, 이 근처에 얼씬도 마”라는 소리를 자주하게 됐다. 그런 말을 일일이 하는 것조차 일의 집중을 방해해 반 전체에 공지한 후 내 책상 주변에 접근금지의 붉은 줄을 쳤다. 
 
새 학년이 되면 의도적으로 규칙과 질서란 획일적인 도구로 아이들의 서로 다른 겉껍질을 사정없이 벗겨버렸다. 조용한 교실환경을 만들기 위해 개성 없는 조용한 인형들을 만들었다. 입력된 로봇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움직이는 아이들. 교실은 언제나 조용하고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공부만 존재하는 교실, 웃음과 대화가 사라진 도서관 같은 교실로 바꾸어 놓았다. 공부를 가르치는 것 외엔 개인적인 유대감을 가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질서와 규칙 속에서 움직이는 인형, 난 인형을 조종하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선생님 반은 한결 같이 조용하고 애들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지도하세요?”
 
내가 만든 편리한 교실의 상황을 만족하고 있을 때 교육청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나를 찾는 제자 돌이(가명)라고 하면서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는데 알려줘도 되는 지 물었다. 
 
그 짧은 순간 기억은 광속의 타임머신을 타고 두 번째 학교로 가서 내려앉았다. 새카만 얼굴의 웃음이 많았던 십몇 년 전의 그 이름이 기억났다. 학교에서 교사의 기억은 3초. 3초전을 묻는 것은 심각한 실례라고 할 정도로 바삐 돌아가는 일상이다. 그런데 내 기억에 저항 없이 돌이가 떠올라서 오히려 신기했다.  
 
만났다. 시간의 뻥튀기 속에서 튀어 나온 돌이, 아이가 아닌 어른의 모습으로 바뀐 것 외엔 환한 웃음까지도 그대로였다. 마주 앉아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선생님, 제가 정말 유명한 사람이 돼서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가 선생님을 찾아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선생님을 찾아와서 너무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한 돌이는 육사에 입학해 전공과에서 수석 졸업을 하고, 학교에 조교로 있으면서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를 하고 있는 정말 유능한 재원이었다.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고, 충분히 훌륭하게 장성했고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는 나를 찾아 준 것이 정말 고맙다고 했다. 특별히 보살펴 준 기억하나 없는 내 이름을 기억해서 와준 것만으로도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황송한 내게 돌이는 말했다.  
 
“전 선생님 때문에 공부를 시작했어요. 4학년 때까지 전 한 번도 칭찬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말썽쟁이였습니다. 4학년 때 선생님은 제 빰을 때리면서 내 평생에 너 같은 놈은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선 똑같은 말에도 늘 웃으시면서 돌아, 넌 너무 창의적이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 정말 놀라워라고 하셨죠. 전 처음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습니다. 언제나 말이 많아서 선생님들께 꾸중 듣고 구제불능이란 말만 듣다가 선생님의 칭찬은 제 인생에 처음이었어요. 전 너무 신났습니다. 제 인생은 5학년 때부터 새롭게 시작됐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제 자아를 회복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육사에 들어갔고요. 지금 제 모습은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다. 졸업을 하고 제일 먼저 찾아오려고 했는데 여건이 되지 않아서 지금 찾아왔습니다. 정말 더 훌륭한 사람이 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돌이는 자신의 마음에 살아 있는 선생님, 나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잘못해서 선생님 앞에 서면 선생님은 긴 회초리를 양손으로 잡고 위로 번쩍 치켜들고선 ‘힘이여 솟아라’하고 장난스럽게 기합을 넣었어요. 그 심각한 상황에서 선생님이 그러시면 모두 긴장감이 무너지고 웃었습니다. 몇 대 맞을지 네가 정해라. 너에게 유리하도록 정해라. 단 0대는 안 된다. 그럼 대부분은 1대라고 말했죠. 좋아 1대. 다음엔 강약을 정해라. 엄청 약하게, 엄청 세게 중 하나를 골라라. 그럼 모두 엄청 약하게를 골랐어요. 정말 선생님의 매는 위에서 힘 있게 내려와서 엄청 약하게 손 바닥위에 살포시 내려앉았고 선생님은 다음부턴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선생님은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 주시고 유머 감각도 있으시고  개성대로 우리를 이해해 주셨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이었고 전 선생님이 정말 좋았습니다.”
 
돌이는 그 사이에 변해버린 나를 앉혀 놓고, 자신의 추억 속에 있는 좋은 담임 선생님에 대해 자랑을 했다. 그 시절 내 기억들의 먼지가 털리면서 행복했던 그 당시의 시간들이 빛을 발하며 눈부시게 되살아났다.
 
아이들에 대해 어떤 기대나 잣대를 갖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해했다. 모두 예뻤다. 개성대로 다 예뻤다. 이래서 예쁘고 저래서 예쁘고 모두 내겐 예쁜 꽃이었다.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꽃들이 내 화단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날마다 물을 주어야 하는 꽃, 며칠에 한 번 씩 물을 주는 꽃, 한 달에 한 번씩 물을 줘도 되는 꽃, 저마다 살펴서 내 화단에서 잘 자라도록 보살폈다. 
 
발표력 없는 어린이는 발표력 신장, 친구가 없는 어린이는 친구와 잘 놀기, 고집이 센 어린이는 고집 내려놓기, 거친 어린이는 부드러움 배우기 등 그 어린이의 장점을 살려주고 단점을 옅어지게 하는 화단의 거름 종류도 다 달랐다. 거름을 만들기 위해서 두 귀를 열어놓고 어떤 이야기든지 다 들어주었다. 심지어 짝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게 초콜릿을 전해 주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 남학생이 조금 잘못하는 것을 빌미로 오후에 남겨서 그 초콜릿을 내가 전해주기도 했다. 
 
언젠가는 좋아하는 남학생과 한 번도 한 반이 되지 못한 아이가 이제 같은 반 될 기회는 영영 없다고 하루 종일 운다는 학모님의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다. 봄방학 때 그 아이와 만나 대학교정에 데려가서는 기회는 없는 것이 아니고 그 남학생이 가는 대학교에 꼭 같이 가면 된다며 위로하기도 했다. 토요일에는 희망하는 애들을 데리고 어린이 뮤지컬을 보고 밤에 집집마다 데려다 주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돌이와 보낸 짧은 일 년의 시간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내가 얼마나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냈는지, 내가 버린 아름다운 시간들이 먼저 내게 다가오려고 기억들끼리 부딪혔다.  
 
내가 그랬지, 내가 그랬었지…. 그 사이 변해버린 내 교실은 조용하고 말이 없다. 내가 원하는 네모상자에 아이들을 모두 가둬 놓았다. 내 귀는 닫혔고 성적의 키만 재고 마음은 가두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못질을 해 놓았다. 
 
“선생님, 선생님의 좋은 마음은 절대로 변하지 마세요. 공부는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는 순간 언제든지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 것, 이해 받는 거예요. 재미있고 유머 있는 선생님의 모습은 절대로 변하시면 안됩니다.”
 
돌이는 내가 얼마나 변해버렸는지 내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을 버렸는지 알려줬다. 내가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시간은 암흑기였다. 조용하기만 했던 교실, 그 시간 나와 함께 한 아이들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마치 잃어버린 시간처럼. 그 시절 나를 만난 아이들은 나로 인해서 일 년이란 시간의 행복을 놓쳤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아무런 행복도 주지 않았다. 그 시간들이 뒤늦게 미안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모두 잘 되길 엎드려 기도했다.   
 
여름방학 때 돌이가 나를 육사에 초대했다. 육사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줬다. 교수실에서 커피를 직접 내려 줬다. 돌이는 시간만 나면 내가 얼마나 좋은 선생님인가를, 내가 잃어버린 기억들을 꺼냈다. 좋은 커피 향내가 진할수록 잃어버린 나의 시간들이 아프고 나로 인해서 행복하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이제는 더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더 사랑한다. 생일이 되면 생일 노래를 다 같이 불러 주고 두툼한 초콜릿을 건네주면서 너스레를 떤다.
 
“이건 선생님 마음이야. 엄마, 아빠도 드리면 안 되고 동생도 안 되고 친구도 안돼. 오로지 너만을 위한, 너만 먹고 살쪄야 하는 초콜릿이야.” 
 
모두 웃지만 자신의 생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생일 달이 되면 생일이 언제라고 와서 알려주고 칠판에 적어두기도 한다. 그리고 한 번도 선생님에게 생일선물을 받은 적이 없는데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2교시를 마치면 카페를 연다. 크래커 하나, 뻥튀기 하나, 옛날 과자 하나, 사탕하나, 초콜릿 하나는 간식이 아니라 피곤한 뇌에 에너지를 보충하고 2시간 공부하느라고 수고한 마음에 휴식과 기쁨이었다. 에이스는 커피에 찍어 먹는 맛이라고 조를 땐 안 된다고 하면서 벌써 커피 한 잔 타서 책상 위에 올려 두고 한 번씩만 살짝살짝 찍어가라고 말한다. “엄마에게 비밀”이라고 괜한 손가락 약속도 걸었다. 2교시 마치고 먹는 크래커 한 조각이 너무 맛있어서 집에서 한 봉지를 먹어봐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단다.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먹는 2교시의 과자 한 조각 맛은 흉내 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상담하러 오신 어머님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선생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고 한다. 우리 선생님은 긍정의 여신이라고 말한단다. 선생님은 나를 잘 이해하시는데 나를 낳은 엄마는 왜 자신을 이해를 못하느냐고 따진단다.  
 
난 오늘도 내 교실이 좋다. 세상의 교육적 목표에 휘둘리지 않고 내 방법으로 아이들을 사랑한다. 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려고 나는 광대가 되기도 하고 성우가 되기도 하고 연극배우가 되기도 한다. 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교실에 들어간다. 해마다 학년이 끝나고 받는 편지엔 “선생님, 저도 꼭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에요”라고 적어준다. 
 
벌써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교사 아내를 둔 돌이는 내 암흑기에 나타난 천사였다. 그 때 돌이가‘5학년 때 담임’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면 난 교실 속의 행복을 영영 잃어버린 채 인형의 집을 여전히 짓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돌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듯이 돌이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난 돌이에게 그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선생님이고 싶어서 내 얼굴이 바뀐 가면을 말하지 않았다. 

----------------------------------------------------------------------------------------------------------------
[2018 교단수기 공모 금상-수상 소감] 

"난 행복한 선생님"

“선생님, 전지현 같이 예뻐요.” 
"선생님, 미스코리아 같아요.”

나를 사랑하는 아이들은 지나치게 왜곡된 표현으로 나를 추켜세운다. 나름 뻔뻔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차마 수용할 수 없어 “너무 갔어. 우리 반의 비밀”이라며 쑥스러워 하면 아이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아이들의 그 고마운 눈빛에 마음을 붉히며 이 나이에도 이런 사랑을 얻는 나는 교실에서 행복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꿈은 처음에도 선생님, 지금도 선생님, 마지막에도 선생님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가장 먼저 교실 문을 여는 것을 좋아한다. 
 
교실 문을 열 때, 오늘도 교실 문을 열수 있는 건강함을 주심에 감사한다. 또 선생님으로, 참다운 어른으로, 이해와 배려로 아이들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교실로 들어간다.   

퇴근 할 때는 곧게 자라도록 처방한 쓴 약, 달콤한 약이 아이들의 마음을 달랬는지, 아이들과 행복한 교실을 만들었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닫는다. 
배너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