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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5월에 다시 찾는 영원한 스승

'공자 속의 붓다, 붓다 속의 공자'를 읽고

정신의 밑거름이 필요할 때

스승의 목소리를 찾다

삶의 특별한 왕도는 없으나 길은 있다



이 책은 가장 아끼는 책 10순위에 안에 두고 가끔 들어가 쉬는 안식처 같은 책이다. 마치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참 좋은 도반이다. 새 책을 구할 수 없어서 애를 태운 책이라서 더 소중히 하는 책이다. 책이건 사람이건 그것이 어떤 사물이건 간에 마음이 가는, 특별한 대상이 가까이 있음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사람보다는 책이 더 좋은 벗임을 알게 한 책이라서 더욱 아끼는 책이다. 높은 곳에, 깊은 지혜의 대가임을 잊게 하며 곁에서 조곤조곤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진솔하고 쉬운 언어로 세상의 상처를 아물게 했던 두 성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속삭여준다. 세상에서 만난 나의 어버이와 스승에게서는 듣지 못한 천상의 언어들이 이랑마다 서너 줄씩 들어앉아 고구마 줄기를 캐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다. 공자와 붓다가 남긴 언어는 완전한 문장을 넘어 불굴의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고전을 연구하는 작가 박민영의 해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원문을 해석해내는 해박한 지식에 놀라고 방대한 수집력에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책이다.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깨달음이 반가운 벗을 만나는 기쁨처럼 조용히 밀려온다. 작가는 공자의 논어와 초기 불교의 잡아함경을 중심으로 두 성인의 깨달음에 이르는 시각의 공통점을 알기 쉽게 비유적으로 풀어냈다.


지나간 것은 쫓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직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관찰해야 한다. -42쪽 『중부경전』131, 일야현자경


공자 역시 초자연적 현상이나 귀신이 개인에게 복이나 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공자의 시대는 미신의 시대였다. 공자의 시대에는 주나라의 왕권이 무너지고 군웅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며 전쟁과 살육을 일삼는 무도의 시대였다. 인간성이 말살당하는 극한 시대에서 공자가 선택한 것, 그것은 주술과 미신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였다. -44쪽


많은 재물을 지니고 금은을 모으고 넉넉한 음식을 실컷 먹고 그것도 혼자서 미식을 즐기는 것, 이는 패망에 이르는 문이다. 자신은 부유하게 지내면서 늙으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봉양하지 않는 것, 이는 패망에 이르는 문이다. 내 아내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러 유녀(遊女)를 사귀고 또 남의 처자를 찾는 것, 이는 패망에 이르는 문임을 알아야 한다. 무사(武士) 집안에 태어난 자가 재물은 적은데 갈애는 커서 이 세상의 왕위를 바라면 이는 패망에 이르는 문임을 알아야 한다. -51쪽『패망경』


자기가 의지할 곳은 자기뿐이니 그 밖의 어디에 의지할 데 있으랴!

자기가 잘 조어(調御)될 때, 더 없는 의지처를 얻게 되리. -161쪽 『법구경』


공자의 제자 자로는 어느 날 공자에게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해 물었다. 자로는 예를 중시하고, 예의 가장 대표적인 의례인 제사를 중시하는 스승이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여기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도 아직 섬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다시 한 번  죽음에 대하여 묻는 자로에게,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 " 공자는 인간이 죽은 뒤의 유토피아를 말한 적이 없으며, 삶의 문제를 죽음의 문제 때문에 미루지 않았다. -49쪽


공자의 군자는 붓다의 바라문과 상통


공자와 붓다는 귀한 사람을 일컫는 군자와 바라문에 새로운 도덕적 관념을 부여했다. 그리고 태생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에 반대했다. 사람은 태생에 아니라 그 행위의 도덕성에 따라 평가되어야 했다. 공자에게 그 도덕성은 '어짊'으로 표현되었고, 붓다에게는 '자비'로 표현되었다. 공자와 붓다는 세간의 신분 개념을 뛰어넘어 높은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구현한 자만이 고귀한 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는 금수저, 흙수저에 이어 무수저까지 동원되어 현대판 신분 개념이 판을 치고 있다. 공자나 붓다의 시절 보다 더 참담한 신분 개념이 아닐 수 없다. 물질문명은 발전을 거듭했을지 모르나 정신문명은 퇴보하지 않았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랴! 어질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기엔 현실이 녹록치 않으니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눈을 가리는 일쯤은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으니 어쩌랴. 오죽하면 명문대생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설문조사에서 "10억이 생긴다면 감옥에 가서 몇 년쯤 살고 나올 수 있다"는 대답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는 웃지 못 할 얘기가 회자될까.


가난과 실업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강심장은 없으니 누가 탓할 수 있으랴!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일을 정당하게 열심히 일을 하고 일상의 행복을 누릴 만큼만 살 수 있다면 안반낙도까지는 아니어도 인간임을 자부하며 살기를 바라는 것은 최소한의 자유가 아닐까? 어쩌면 소시민의 삶에서 군자와 바라문은 바라볼 수 있는 우러름의 대상일 뿐, 실현하기 어려운 덕목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살기 어려울수록 바라볼 대상을 찾아 삶의 희망이 되어줄 빛을 찾아나서는 것은 인간만이 지닌 특권이기도 하다. 희망이 없는 삶은 너무나 비극적인 일이므로. 일상에서 착한 마음으로 사는 일, 누구에게도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면 우리는 이미 군자이고 바라문이다. 군자와 바라문은 멀리 있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내가 실현시킬 아름다운 삶의 지표이기에 공자와 붓다는 고전이라는 책 속에서 걸어 나와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영원한 스승 공자와 붓다가 전하는 깨달음의 보석을 캐내며 다시 길을 나선다.


공자와 붓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류의 스승이었음에 놀라고,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스승이자 철학자일 것만 같은 친근함을 느끼도록 당시의 상황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 쓴 작가의 필력은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마치 먹고 싶지만 질겨서 먹을 수 없는 귀한 고기를 숙성시켜서 부드럽게 갈무리하여 감탄을 자아내며 한 입 베어 무는 미식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요리사의 손재주를 느끼게 한다.


언어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발효시켜 독자를 감동시키는 문장을 담아내는 힘은 아무나 하기 어려운 숙련된 노동의 대가이리라. 선반 위에 올려놓은 두 성인이 차려준 음식을 먹기 좋게, 알아듣기 쉽게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차려낸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5월 스승의 날을 앞두고 인류의 영원한 스승의 목소리를 들으니 다시 힘이 솟는다. 선생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