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실창가에서] 한 삼태기의 흙을 나르다

“애비는 농사 중에 가장 힘든 농사가 뭔지 아는감?”
 
“글쎄요, 아버지!” 
 
“그건 바로 인간농사라는 거여. 애비는 인간농사를 짓는 평생 농부임을 잊지 말고 궂으나 맑으나 애지중지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대해야 혀. 내 자식이 중(重)하면 남의 자식도 중한 법이여.”
 
농부의 마음으로 걸어온 30년

30여 년 전 첫 발령을 기다리는 내게 아버지께서 해준 말씀이다. 공자의 인생 과정 5단계에 의하면 나의 교직은 이제 ‘자신만의 삶의 과정에서 자신만의 원칙과 규범이 완성된 상태’라는 이립(而立)을 넘어섰다. 그러나 나는 애오라지 완성을 향해 나아갈 뿐, 여전히 서툰 발걸음만 내 딛고 있을 뿐이다.
 
농부들의 발걸음 소리를 따라 농작물이 커가듯 나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인생의 꿈을 설계하고 발현했을 나의 제자들, 그 중 전전반측 불면의 밤을 뒤척이고 있을 대한민국의 예비교사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나는 더욱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교육 현장의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교권침해 사례가 10년 새 3배나 증가했다. 소명(召命)의식을 갖고 임하는 교사들의 정체성을 흔들고 의기를 꺾음으로 인해 교육현장을 떠나는 교사들도 점차 증가 추세라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바른 길을 알려주고 교정하기 위해 묵묵히 길라잡이 역할을 다하는 교사의 행동이 외려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교사’라는 주홍글씨로 남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신의 권리만 바랄 뿐 상대방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운 마음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회복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향기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 21세기는 상생의 시대다. 사회라는 거대한 숲에서 서로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갈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그 시작은 바로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시작되며 그 중심에 숲을 가꾸는 농부 같은 교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학생들을 보면 행복하다. 그들은 내 교직 인생의 둘레에서 평생의 친구요, 연인이요, 동반자요, 나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어린 스승들이었음을 깨닫고 또 깨닫는다.

힘들지만 후회 없는 기쁨의 길
 
“교장 선생님 사랑해요”하며 뛰어와 안기는 학생들의 품이 참 따뜻하다. 학생들과 허물없이 대화하고 교감하면서 내 마음속에 머무는 조촐한 행복감, 30여 년 교직 생활이 주는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사는 부귀영화(富貴榮華)의 삶은 아니었지만 스승의 길은 한번쯤 도전하고 걸어가 볼 만한 길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제 1년 뒤면 쟁기를 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애지중지 갈고 또 갈던 땅에서 떠나야 하는 농부의 심정, 생각만 해도 아쉽고 두렵기까지 하다. 성현 선생님 수필의 글귀처럼 마지막 흙 한 삽을 멋지게 떠 나만의 길을 만들고 그 길 끝에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교직이라는 산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을 나르고 있는 중이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