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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동화 속의 트릭스터, 장난꾸러기? 심판자? 아니면 무엇?

신화 속에는 가끔 근엄하고 멋진 ‘신’과는 다른, 재미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장난을 치고, 신과 인간계를 오가고, 수시로 모습을 바꾸고…. 때로는 선한 역할을 하다 갑자기 죄의식 없이 나쁜 짓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이들을 우리는 ‘트릭스터(Trickster)’라고 부른다. 쉬운 말로 ‘트릭을 쓰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트릭은 꼼수 또는 묘수, 때로는 장난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트릭스터의 대표적 인물, 헤르메스

누가 있을까? 일단 그리스로마 신화의 헤르메스를 보자. 제우스와 요정 사이에서 태어난 이 장난꾸러기는 발에는 날개가 달린 신발을 신고, 여러 마리의 뱀이 꼬인 형상의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게다가 지하 세계의 왕인 하데스가 선물한 ‘순간적으로 모습을 감춰주는’ 모자까지 있다. 결국 있으면서 없는 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 있다가 또 없어지는 자 등 ‘트릭스터’의 이미지에 딱 맞는 인물로 묘사된다.


헤르메스와 어울리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복형인 태양의 신 아폴론의 소들을 훔쳐서 구워 먹은 이야기다. 형 몰래 소를 몰아내야 했던 꾀 많은 헤르메스는 소 발자국을 숨기기 위해 소들의 발에 갈대빗자루를 매단다. 그 덕에 소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빗자루가 쓸리면서 발자국을 지워주게 된다. 물론 후에 아폴론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지 만 그렇다고 콕 집어 범인이라고 지목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더 기막힌 것은 그 소들의 뼈와 가죽으로 현악기인 리라를 만들어 아폴론에게 선물했다는 것. 소를 잡아먹었다는 티를 묘하게 내면서 그렇다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직접 자백을 하지도 않는, 말 그대로 진짜 트릭스터다.


이런 캐릭터는 북유럽의 켈트신화에 나오는 여러 요정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에 나오는 코요테 등에서도 발견된다. 다양한 성격과 에피소드로 무장한 트릭스 터들은 신화 곳곳에서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백설 공주를 돕던 난쟁이도 트릭스터

트릭스터는 신화뿐만 아니라 구전민담이 정착한 전래동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서양의 동화에서는 ‘난쟁이’가 그런 인물이다. 물론 동화 속 요정들도 그런 트릭스터의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무래도 난쟁이가 눈에 띈다. 난쟁이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백설 공주’ 속 난쟁이들은 모두 일곱이다. 이들은 어른인지 아이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들의 ‘일’을 가지고 일정한 시간에 일을 나가고 또 일정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광부로 보이는 난쟁이들은 곡괭이 등을 들고 늘 무언가를 캐러 가며, 집으로 돌아와 특별히 친교의 시간을 갖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느낌 등이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난쟁이들은 백설 공주를 돕는 이들이다. 하지만 거저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백설 공주는 밥하고 빨래하며 바느질하고 청소하는 ‘여성의 일’을 해야만 그 집에 머물 수 있다. 즉, 백설 공주가 수행해야 할 ‘과업’과 난쟁이들의 도움이 교환되는 형태로 이뤄진다(이 ‘여성의 일’이라는 것은 고대부터 나뉘어 온 여성과 남성의 일종의 성장과업을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현대적 페미니즘 시선으로 보아서는 답이 안 나온다).


서양 동화에 제법 많이 등장하는 난쟁이들은 분명한 ‘남성’인데도 그 성성(性性)을 정확히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저 남성으로 느껴지거나 짐작될 뿐이며 심지어 그들이 어른인지 아이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동화 속 난쟁이는 실제로 더 이상 ‘크지 않는 존재’, ‘성장이 멈춘 존재’로 보는 것이 옳다. 특히 북유럽신화에 서 많이 보이는 난쟁이는 대체로 ‘땅의 존재’, ‘땅의 요정’ 등의 별칭을 갖고 있으며 보통 광물을 캐는 광부로 등장하는 일이 많다. 또 키가 작은 이들이기에 ‘땅에 속한 이들’로 형상화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땅 = 지하’라는 이미지로 인해 때로는 지하 세계와의 연결통로, 이승과 저승의 연결자로 등장하는 일도 많다. 백설 공주의 난쟁 이들이 곡괭이를 들고 일하는 광부로 나타나는 것이나, 일곱 명이라는 것도 이런 배경과 연결된다. 특히 숫자 ‘7’은 단순한 행운의 숫자 의미를 넘어 안식일까지 일해야 하는 일주일의 의미와 태양 주변을 도는 일곱 행성의 의미까지 담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특히 몇몇 정신분석학자들은 난쟁이를 일종의 ‘남성의 함축’, ‘작아져 있는 남성’ 등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며 이 때문에 성장기 이전 모든 성적 욕망이 잠들어 있는 시기로 보기도 한다.


백설 공주에서는 그저 조력자의 역할만 했던 이 난쟁이들이 다른 신화나 동화에서는 제법 장난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트릭스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금을 녹여 머리카락을 만드는가 하면, 멀쩡한 사람을 죄의식 없이 죽이는 악당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좋은 솜씨로 마법적인 물건을 만들어 여신들을 유혹하는 역할도 담 당해 도저히 그 일관된 캐릭터를 규정할 수가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을 합쳐 보면 난쟁이는 선과 악 어느 한 곳에 속하지 않고 매우 다층적인 성격으로 이야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인물로 등장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땅의 요정’, ‘지하로 가는 길목’, ‘광물’ 등의 이미지는 공통으로 동화 속에서 차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트릭스터, 도깨비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이런 트릭스터 역할을 할까? ‘도깨비’다. 특히 우리나라의 도깨비는 약간은 어수룩하면서 요술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가늠하지 못하고 마구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고, 자신의 커다란 보물과 인간의 하찮은 물건을 의심 없이 교환하는 행위를 자주 보인다. 때로는 일종의 심판자 역할로 선한 사람에게는 복을,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는 역할도 담당한다.


우리나라의 도깨비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생활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물건·빗자루·절굿공이·부지깽이 등이 도깨비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물에 사람의 혼이 깃들 수 있다는 일반적 무속신앙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깨비를 매우 친근한 존재로 생각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우리 구전동화 속에서 만나는 도깨비는 사람을 놀리고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는 있어도 실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이것은 앞서 살핀 서양의 트릭스터 난쟁이와는 또 다른 부분으로 주인공의 조력자·심판자 역할을 넘어 일종의 소원풀이 대상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프로이트가 꿈 이론에서 말한 ‘일종의 소원 성취(wish fulfilment)물(物)’로 도깨비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프로이트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소망했던 것 또는 최근 강렬히 소망하는 것들을 여러 은유와 환유를 섞어 꿈으로 꾸고, 그것으로 일종의 대리만족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즉, 가장 일반적인 ‘꿈의 기능’이 바로 ‘소원성취’인 셈이다.


또 하나 살펴볼 부분은 우리나라 도깨비와 비견되는 일본의 ‘요괴’다. 여기서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귀(鬼)’인가, 아닌가이다. 한국의 도깨비와 일본의 ‘요괴’는 모두 일상 생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변해서 나타나지만, 일본 요괴는 보다 근원적이어서 자연물 자체가 변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 동화와 일 본 동화는 트릭스터를 다루는 태도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우리 민족이 도깨비를 더욱 가까운 존재로 생각하는 것에 반해 일본 요괴는 조금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공포스런 귀’ 즉, 귀신인가 아닌가의 차이가 크다. 일본의 요괴와 기담, 그리고 그것을 뿌리 깊이 간직하고 만들어지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몇몇 캐릭터 들을 한번 살펴보면, 더 깊은 일본의 정신·민속적 사상 등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이처럼 각 나라의 신화와 동화 속의 트릭스터를 보면 문화적 차이만이 아니라 그들 각각이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을 은유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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