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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복수, 누구의 수저가 더 금색인가

많은 사람이 한국 청년들의 물질적·정신적 독립 시기가 늦어지고 있음을 우려한다. 실제로 현재 한국 청년들은 대학 졸업은 물론 취업 이후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결혼하기 전까지 이른바 ‘캥거루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결혼 연령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의 경우 32.9세, 여자 30.2세다. 예전엔 30세가 되면 이립(而立)이라 하여 ‘마음이 확고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냥 ‘아기 캥거루’다.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독립의 시기는 늦어지는 추세다. 온라인 통계‧ 시장 조사 업체인 스테티스타(Statista)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유럽 각국 젊은이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연령은 상당히 높아졌다.

 


유럽에도 '캥거루족'은 있다
유럽 국가 중 가장 독립 시기가 늦은 국가는 몬테네그로다. 이 나라 청년들의 독립 연령은 무려 32.5세에 달한다. 한국 나이로는 33세~34세나 돼서야 독립을 한다는 의미다. 유럽 사람들은 스무 살만 넘어가면 착착 독립해서 멋지게 살아갈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서유럽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탈리아의 독립 연령이 30.1세, 그리스 29.4세, 스페인 29.3세 등이다. 그나마 영국은 24.4세, 프랑스 24.0세, 독일 23.7세로 상당히 양호한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경제 상황이 나쁠수록, 취업률이 낮을수록 독립 연령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식들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깥 세계로 내보내지 않으려는 부모들의 보호 욕구도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강해진다.

 

자식들은 점점 더 나약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그렇게 한 세대 전체가 온실 속 화초처럼 병약해진다. 도전정신이나 기업가정신은 사라지고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장에 가기 위한 대기열이 길어진다. 현시점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자체가 어마어마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도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미래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 이를테면 현찰이나 외모, 빌딩 같은 것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세태가 펼쳐진다. 멀리 갈 것 없이 2018년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바로 그렇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쇼핑하는 법을 모를 뿐이죠.”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 中)


우리 모두가 ‘금수저’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불운한 존재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이다. 우리 모두, 심지어 우리 중 가장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조차도 사실은 너무나도 좋은 시기에 태어난 셈이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출현한 것은 25만 년 전이다. 하지만 인류가 현재의 단계로 오기 위한 ‘발전’을 시작한 것은 최근 300년 사이의 일이다.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는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네 발로(엎드려서) 지낸 시간이 두 발로(직립보행) 지낸 시간보다 훨씬 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5만 년 전부터 1700년대까지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오세아니아 등 모든 대륙에서의 인류는 하루에 1달러에서 3달러 수준의 수입으로 빈궁하게 살았다. 인류의 역사를 1시간으로 요약한다면 그중 59분 59초 정도는 비참하게 살았다는 게 ‘불편한 진실’인 셈이다. 그러다가 1800년대 들어서 인류의 소득 수준은 미친 듯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금수저’라는 사실을 부정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시대를 잘 타고난 덕에 밥 굶는 일 없이 잘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사정은 더욱 훌륭한 편이다. 새벽에도 햄버거 시키면 집 앞까지 배달을 오고, 완벽한 건 아니지만 치안도 괜찮은 편이다. 한국인들은 오랜 기간 ‘미국·유럽 콤플렉스’를 앓으며 살아왔지만, 어느 틈에 그들과 동등한 수준이 됐거나 심지어 그들을 앞질러버린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경우 서유럽의 관광 명소로서 여전히 심리적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현시점 어떠한 통계자료를 갖다 대더라도 스페인보다는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다(물론 통계자료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도 많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되겠지만).


누구의 수저가 더 금색인가
인간 심리의 고약한 점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가지 않은 길, 갖지 못한 것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쪽을 택한다는 점이다. 배고픈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필연적으로 ‘배 아픈’ 문제가 부각된다. 서로서로 비교하면서 ‘누구 수저가 더 금색인지’를 자조하는 풍경은 자못 슬퍼 보이기도 한다.


현재의 1030세대는 ‘노오~력’만 하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식의 ‘착한 생각’에 전혀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부모의 재력이나 권력을 앞세워 편의를 취하는 금수저들에 대해서는 전에 없이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그들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너무 많은 것들을 공짜로 얻어간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지금의 청년들이 펼치고 있는 ‘금수저론’은 현실에 대한 자조이기도 하지만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노력의 영향력을 비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그들은 노력의 가능성에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다. 현재 상황은 비틀어져 있을지언정 앞으로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길 바라며, 캥거루는 오늘도 어미의 주머니 안에서 몸부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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